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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탱볼 Oct 17. 2023

Ep.01 화풍 앞에 독자적인 사람들

라울 뒤피와 마리로랑생, 그리고 기욤 아폴리네르



우리는 자기 색이 강렬한 사람들을 보면 큰 매력을 느낀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서일까? 나도 그렇길 원해서일까?

둘 다인 것 같다.



여기 두 화가 라울 뒤피마리로랑생이 그렇다. 그들의 작품은 그들의 인생과 닮아있다.

시간이 삶의 과정에 따라 화풍들이 변화하며 자기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완성해 나갔다.






경쾌하고 밝고 아름다운 찬란한 색채의 화가 라울 뒤피(1877-1953)


그는 인상파, 야수파, 입체파 화풍의 작업을 거쳤지만 그 어느 화파에도 속하지 않고

자신의 그림 속 재료로 사용했다. 또한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삽화작업과 직물(태라피스트), 패션일러스트, 도자기 작업을 통해 다양하게 자신의 예술세계를 보여줬다.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했던 에밀리엔과의 결혼은 패션과 직물로의 활동 확장을 가능케 했다. 그는 에밀리엔의 초상을 여러 점 남겼는데 시기에 따라 달라지는 화풍을 확인할 수 있다. 둘은 1930년대 말까지 함께한 뒤 별거했다. 뒤피는 별거 후 간호사 베르트 레이즈를 만나 말년까지 함께했다.


뒤피는 수채화를 사랑했다. 빛이 투과되는 투명한 표현을 위해 애썼는데 그의 친구였던 화학자 자크 마로제가 마로제 용액을 만들면서 가능해졌다. 뒤피는 말년에 '검은 화물선' 시리즈를 남기는데 뒤피의 고향 바다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완전히 파괴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검은색은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지는 않는 것 같다.

"제일 고점에서의 태양은 검은색이다. 정오의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보면 눈이 부셔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_<라울뒤피: 행복의 멜로디> 전 도록, 지엔씨미디어(2023), p167
"삶이 나에게 항상 미소 짓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삶에 미소 지었다."_이소영, 이것은 라울 뒤피에 관한 이야기, 알에이치코리아(2023), p15


아드레스의 해변 1904 / 분홍색 옷을 입은 여인 1908 / 에스타크의 나무들 1908
르 테니스 직물 1919 / 전기요정 1952-1953 / 검은 화물선2 1954






라울 뒤피와 마리로랑생 둘 사이에 흥미로운 연결고리가 있는데

그는 바로 '기욤 아폴리네르'이다.

뒤피는 아폴리네르의 [동물 시집]의 삽화작업을 맡기도 했다.


마리로랑생의 작품 아폴리네르와 그의 친구들 1909


20세기 프랑스의 가장 위대한 시인이자 소설가, 미술 비평가이기도 한 기욤 아폴리네르(1880-1918)

그와 마리로랑생과 연인사이었다. 마리로랑생은 그의 뮤즈였고 그녀도 작품에도 여러 번 그가 등장한다. 기욤은 마리를 무척 사랑했는데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도난 사건에 연루되면서 마리는 독일인 남작과 결혼하게 되고, 실연의 아픔을 담아 세계의 명시로 꼽히는 작품을 남긴다.


미라보 다리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이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간다
허나 괴로움에 이어서 오는 기쁨을
나는 또한 기억하고 있나니

밤이여 오라 종은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있다

손과 손을 붙들고 마주 대하자
우리들의 팔 밑으로
미끄러운 물결의
영원한 눈길이 지나갈 때

밤이여 오라 종은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있다

흐르는 물결같이 세월은 지나간다
세월은 지나간다
사랑은 지나간다
삶이 느리듯이
희망이 강렬하듯이

밤이여 오라 종은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있다

날이 가고 세월이 가면
흘러간 시간도
사랑도 돌아오지 않고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만 흐른다

밤이여 오라 종은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있다






몽마르트의 뮤즈 마리로랑생(1883~1956)


마리로랑생은 파리화가들의 공동작업실 '세탁선'에서 피카소, 아폴리네르 등 수많은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몽마르트의 뮤즈로 불렸다. 뛰어난 작가임에도 여성이기에 조명받지 못한 화가들이 많은 반면,

당대에 성공한 여류화가로 인정받았으며 최초로 경제적으로 자립한 여성작가이다. 또한 야수파와 인상파, 많은 남성작가들과 교류하면서도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 냈다. 코코 샤넬과 헬레나 루빈스타인 등의 유명인의 초상화는 물론 북 디자인과 실내 장식, 발레 의상에까지 영역을 넓혔다.


'핑크 레이디'라고 불리는 그녀는 분홍과 보라, 파랑, 회색, 녹색이 어우러진 신비롭고 부드러운 색채를 담아냈지만 실제 그녀의 삶과 사랑은 비극적이었다. 아폴리네르와의 이별, 적국 독일귀족과의 결혼과 프랑스 해방, 이혼과 귀국 금지 등 그녀의 작품들을 통해 사랑과 예술의 역사가 되었다. 연인과 남편에 많은 영향을 받은 그녀의 삶이 고스란히 작품에 묻어나지만 남성에게 영향을 받는 여성상이 아닌 자신의 여성성이 강조된 화풍으로 사랑받았다.



자화상 1905 / 어린 소녀들 1910-1911 / 마드모아젤 샤넬의 초상 1923



리허설 1936 / 세명의 젊은 여인들 1953 / 세 명의 소녀 1955



마리로랑생의 작품을 가장 잘 만나볼 수 있는 곳은 의외로 일본이다.


도쿄 그린캡 택시의 창업자인 다카노 마사히로 회장은 1970년대 프랑스를 방문해 마리 로랑생의 작품을 보고 감동하였다. 마리 로랑생의 가정부였다가 양녀로 입양된 수잔 모로는 마리 로랑생의 유지를 받들어 작품을 외부에 판매하지 않았고, 모로가 사망한 직후부터 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하여 평생 수집한 결과 그가 남긴 작품 대부분인 6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1983년 마리 로랑생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나가노 현 다테시나 고원에 리조트인 아토란 호텔에 전용 전시실로 시작하여, 이후 컬렉션을 추가해 마리 로랑생 미술관을 오픈하였다. 마리 로랑생 미술관과 다테시나 고원 예술의 숲 조각 공원을 함께 운영되었는데, 2011년 모두 폐관되었다. 2017년 도쿄 뉴 오타니 호텔의 가든 코트 층에 마리 로랑생 미술관이 재개관하였고, 2017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공식 인증을 받았지만 2019년 1월 14일 1년 반 만에 마리 로랑생 미술관은 폐관하였다.


“97세의 이사장이 마지막 꿈으로 추억의 집을 매각하면서까지 재개했지만 개인 표창 미술관의 운영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한 일을 반성하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의 마리 로랑생 재평가나 새로운 연구자들의  많은 컨택트, 로랑생에 관한 새로운 저작이나 논문 발행 등, 세계적으로 많은 반향이 있었다고 생각한다.”라고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폐관의 이유와 그동안의 성과를 전했다. 또한 공식 트위터를 통해 “컬렉션이 앞으로도 유지되므로, 또한 여러분들이 보실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라고 전했다.



관장이 진행하는 뮤지엄 토크와 마리로랑생 뮤지엄 전시관 모습







2023년 라울 뒤피


2023년 5월부터 9월까지 <더현대서울 프랑스국립현대미술관전 라울 뒤피> 전과 <예술의 전당 라울 뒤피 : 색채의 선율> 전이 개최되어 많은 관심을 받았다. 아쉽게도 전시의 막이 내렸지만

12월부터 내년 4월까지 제주도립미술관에서 앙리 마티스와 라울 뒤피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앙리 마티스와 라울 뒤피: 색채의 여행자들> 이 개최된다고 하니 라울 뒤피의 작품을 만나볼 기회가 남아있다.


라울 뒤피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밀리의 서재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2023년 마리로랑생


2023년 현재 마리로랑생 뮤지엄의 재개관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오랑주리와 마리로랑생 뮤지엄 컬렉션으로

1883년 태어난 동갑내기 마리로랑생과 샤넬 두 예술가의 탄생 140주년을 맞이하여 시대를 초월한 그들의 창작의 현대적 의미와 진가를 조명하는 <마리로랑생과 모드> 전이 4월까지 시부야 분카무라 뮤지엄과 6월까지 교토시 교세라 미술관 등에서 순회 개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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