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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shformation
Jan 06. 2020
중년남성 조르주는 사슴가죽 재킷을 중고로 구입합니다. 딱 1년만 깨끗하게 입었다는 100% 사슴가죽 블루종. 원래 메이드 인 이태리 딱지가 붙어있었는데 따가워서 판매자가 딱지를 떼버렸다고 하네요. 그러거나 말거나, 조르주의 시선은 가죽재킷에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모릅니다. 마치 수천년간 그려왔던 사랑을 만난 것만 같은 그의 표정. 재킷에 매료된 그는, 곧이어 재킷을 입은 자기 자신의 '죽여주는 모습'에 매료됩니다. 그의 자뻑은 이 세상에 재킷을 입은 사람은 오직 나 하나여야만 해! 라는 망상으로 이어지고,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기발한 방식으로 계획을 실행에 옮깁니다. 이 영화는 그 기이한 촌극을 풀어낸 블랙 코미디 물이고요.
디어스킨은 '니들이 예술을 알어?' 하면서 자기만의 세계에 심취해 있는 예술가들을 시원하게 돌려까는 영화입니다. 사실 영화 속에 나오는 사슴재킷이 그렇게까지 기깔나는 잇템은 아니에요. 보기에 따라서는 촌스럽기도 하고, 철지난 유행 같기도 하고, 영화적 상상력을 열심히 발휘하고 문화적 차이를 고려해봐도, 글쎄요, 그리 부러운 아이템은 아닙니다. 하지만 조르주는 마치 운명처럼 재킷과 사랑에 빠지죠. 재킷에 인격까지 부여하면서요. 세상에서 중요한 건 자기 자신과 재킷 뿐이고, 다른 사람이나 세상을 대하는 태도는 그냥 될대로 되라, 에라 모르겠다 식으로 일관합니다. 그래서 조르주가 하는 짓만 놓고 보면 또라이도 이런 또라이가 없어요.
여기서 가죽재킷을 '그만이 빠져있는 자뻑 예술' 정도로 치환해 보면 영화의 메시지가 선명해집니다. 조르주는 여기저기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내 재킷 끝내주지? 나 재킷 입은 거 완전 죽여주지? 라는 메시지를 대놓고 뿌리고 다니죠. 나 예술한다고 자뻑에 빠져 있는 사람들처럼요.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과 본인이 행하고 있는 예술행위 뿐이고, 나머지는 별 가치 없고 의미 없는 것으로 취급합니다. 돈, 예의범절, 타인과의 관계, 공중도덕, 심지어는 사람들의 목숨까지도요. 남들이야 세상이야 어찌되건 나는 그냥 이 끝내주는 사슴가죽 재킷 세트 풀구성만 갖추면 되는 거거든요. 이런 관점에서 이 영화 속에는 수많은 은유와 비유, 메시지들이 가득합니다. 디어스킨이 주는 재미의 대부분은 이런 은유적인 요소들을 찾아보는 것과, 그걸 정말 너무나도 뻔뻔하게 연기하는 두 배우 장 뒤자르댕과 아델 하에넬의 하드캐리에서 온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아요.
자뻑 예술가 돌려까기라는 메시지는 얼마든지 더 확장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좀 진지하게 들여다 보면 물질주의 자본주의 세상 속에서 타인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편익만 추구하는 행태에 대한 비판으로 넓혀볼 수도 있고, 조금 더 비틀어 보면 100% 사슴가죽 아이템을 통해 사회화로 길들여진 인간세계를 벗어나 원초적인 동물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도 있을 거고요. 감독이 무엇을 의도하고 만들었든, 해석의 여지는 다양합니다. 어차피 영화는 만든 사람의 손을 떠나 보는 사람의 렌즈를 통해 재해석되는 것이니까요. 디어스킨은 블랙 코미디라는 재킷 속에 들어있는 다양한 본질을 '기꺼이' 생각해 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영화였어요. 감독의 다른 영화들도 찾아보고 싶네요.
8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