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2. 비교와 체면에서 벗어나는 법

보이는 특별함과 은밀한 특별함의 차이

by 김지영


쇼펜하우어의 말 3 : 남들과 다른 옷을 입고, 다른 말을 하고, 법을 어기고, 정부를 무시한다고 해서 특별해지는 것은 아니다. 특별함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법이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은밀하고 개인적인 일상 속에서만 특별함이 갖춰지는 것이다.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특별해 보이기 위한 순간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회의에서 강하게 발언하고,
리스크를 짚어내고,
남들이 망설이는 사안을 먼저 제안한다.


그 순간 나는 ‘리더십을 보였다’고 느낀다.
하지만 말은 양날의 검이다.


내가 던진 문장이
결과로 증명되지 못하면
그 말은 곧바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그때 밀려오는 패배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때보다 더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예 드러나지 않는 태도는 또 다른 위험을 만든다.


존재감이 없으면
평가의 테이블에서도 조용히 사라진다.


그래서 나는 안다.
보이는 노력과 어필은 현실적으로 필요하다.


다만 그것이 특별함의 본질은 아니라는 점을
요즘 들어 더 자주 생각하게 된다.


쇼펜하우어가 말한 특별함은
아마 ‘비교 불가능한 영역’에 가까울 것이다.


남보다 앞에 서는 것은
항상 비교의 대상이 된다.
비교의 대상이 되는 순간
그 특별함은 경쟁의 재료로 소모된다.


그러나 은밀한 축적은 다르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알고 있는 영역.
타인이 간파하기 어려운 사고의 깊이.


예를 들어 러닝 열풍을 보자.
“요즘 아무나 다 뛰지 않느냐”는 냉소도 있다.


그러나 새벽 5시에 일어나
비가 와도 뛰어본 사람은 안다.


그 반복 속에서
자신의 한계와 마주하는 감각은
트렌드로 설명되지 않는다.


당사자에게 그것은
은밀한 도전이고,
작은 실패의 연속이며,
스스로를 확장하는 시간이다.


나에게 업무상 사용하는 AI가 그렇다.


회사가 공식적으로 권장하는 환경은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사비로 200만 원을 들여 장비를 마련했고
업무에 적극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누군가는 말한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


그러나 내가 느끼는 몰입과
사고 속도의 확장은
타인의 평가와 무관하다.


보고서 한 장을 쓰는 방식이 바뀌고,
아이디어를 정리하는 구조가 달라지고,
생각의 깊이가 달라지는 경험.


그것은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만족에 가깝다.


나는 점점 이렇게 생각한다.


특별해 보이는 것보다
스스로 특별하다고 느끼는 영역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쇼펜하우어의 말 4 : 사람이 체면을 중시하는 까닭은, 내세울 인간성이 직분에서 얻은 명예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서다. 능력이 없으니 사람들의 존경을 받지도 못하고, 그런데 또 권력은 욕심나고, 그러니 스스로 자기 이름에
금칠을 해버리는 것이다.


이 문장을 읽고
‘명함 뒤에 숨은 직장인’이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회사 이름, 직책, 직함, 소득을 모두 빼고
자기소개를 해보라는 질문을 들은 적이 있다.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가진 외부 표식을 걷어내면
무엇이 남는가.


체면은 어쩌면
자아의 공백을 덮는 얇은 도금일지도 모른다.


사유가 부족할수록
사람은 지위로 자신을 설명하려 한다.


이 구조는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도 반복된다.


자녀의 직업과 성취를
자신의 성취처럼 말하는 장면을 볼 때마다
나는 묻게 된다.


왜 그것이 나의 체면이 되는가.


물론 자녀의 성장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마음은 자연스럽다.
문제는 자녀를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나의 연장선으로 소비하는 순간이다.


사회적 성공을 직업과 부로만 환원하는 사고 속에서
자녀의 성취는 곧 나의 명예가 된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그 아이는 무엇을 생각하며 사는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꿈꾸는가.


나는 내 자녀와
직업이 아닌 사유로 대화하고 있는가.




체면은 외부의 눈을 의식하지만
존엄은 내부 기준에서 시작된다.


나는 회사 없이도 나를 설명할 수 있는가.
자녀 없이도 나를 설명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설명은
지금의 나를 충분히 납득시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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