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랑으로 사는가, 아니면 공포 속에서 선택하는가
쇼펜하우어의 말 5 : 인간은 어디까지나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사물이기에…
사랑이야말로 한 사람의 일생을 추락시키는 가장 근원적인 불행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는 조금 과격하게 느껴졌다.
사랑이 불행의 근원이라니.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쇼펜하우어가 겨냥한 것은 사랑 그 자체라기보다
사랑이 만들어내는 동일시였다.
우리는 흔히 자녀를 사랑의 결실이라고 말한다.
부부의 사랑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 순간 자녀는 종종
부모의 사랑을 증명하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부모는 말한다.
자녀의 성공이 곧 나의 기쁨이라고.
그러나 조금만 더 솔직해지면
그 말은 종종 이렇게 번역되기도 한다.
자녀의 성취는 곧 나의 명예가 된다.
나는 이 지점이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부모와 자녀는 분명 서로 다른 개인이다.
부모의 유전적 속성을 물려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 사람이 동일한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자녀를 통해 자신의 삶을 연장하려 한다.
내가 이루지 못한 것을
자녀가 대신 이루어 주기를 바란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자녀가 대신 살아주기를 바란다.
그 순간 자녀는 하나의 독립된 인간이 아니라
부모의 욕망이 투사되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쇼펜하우어의 이 문장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사랑이 불행의 원인이라기보다
사랑이 인간에게 착각을 만들기 때문이라고.
사랑은 때때로
타인을 하나의 개인으로 바라보게 하기보다
나의 일부처럼 느끼게 만든다.
그러나 인간은 어디까지나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존재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사랑을 불행의 원인이라기보다
삶의 여러 고통을 촉발하는 강력한 트리거라고 생각한다.
특히 결혼과 출산, 육아라는 삶의 사이클은
인생에서 매우 큰 폭발력을 가진 사건이다.
충분한 사유 없이 접근한다면
사랑은 축복이 아니라
불행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
쇼펜하우어의 말 6 : 우리는 자살을 결심한 사람들을 용감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죽음이 두려워 삶을 선택한 우리들도 용기가 없기는
자살을 선택한 자들과 다를 바 없다.
이 문장은 읽는 순간 잠시 멈추게 만들었다.
우리는 흔히 말한다.
그래도 사는 것은 용기라고.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정반대의 질문을 던진다.
정말 그럴까.
자살은 삶이 두려워서 하는 선택일 수 있다.
그렇다면 삶을 계속 살아가는 것은
죽음이 두려워서 하는 선택은 아닌가.
이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 나는 법률 개념 하나를 떠올렸다.
작위와 부작위다.
작위는 어떤 행동을 직접 실행하는 것이다.
부작위는 행동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겉으로 보면 자살은 작위이고
삶을 계속 살아가는 것은 부작위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높은 건물 옥상에 서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는 뛰어내릴 수도 있고, 계단을 내려갈 수도 있다.
뛰어내리는 것은 분명한 작위다.
그러나 뛰어내리지 않는 것 역시 하나의 선택이다.
그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뛰어내리지 않겠다를 선택한 것이다.
이 생각은 최근 내 개인적인 고민과도 묘하게 연결되었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는 이른바 '코스피 6000' 시대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주식 투자 이야기가 일상적인 대화가 되었고
너도 나도 시장에 뛰어드는 분위기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도 참여해야 하는 것 아닐까.
지금 참여하지 않으면
어쩌면 뒤처지는 것 아닐까.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투자를 하는 것만이 선택은 아니었다.
투자를 하지 않는 것 역시 하나의 선택이었다.
주식을 사는 것은 작위다.
하지만 사지 않는 것 역시 부작위가 아니라
또 하나의 선택일 수 있다.
우리는 흔히 행동하는 사람만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가만히 있는 사람도 선택하고 있다.
그래서 쇼펜하우어의 문장은
삶과 죽음을 용기와 비겁함의 문제로 나누지 않는다.
그는 인간이 얼마나 쉽게
자신의 선택을 미화하는지를 드러낸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사는 것은 용기라고.
그러나 어떤 순간에는
단지 죽는 것이 더 두려워서 사는 것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어떤 선택은
용기 때문이 아니라
공포 때문일 수도 있다.
사랑도, 삶도
우리는 아름다운 언어로 설명하고 싶어 한다.
사랑은 숭고한 감정이 되고
삶은 용기의 증거가 된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욕망과 공포가 함께 섞여 있다.
사랑은 타인을 나의 일부로 만들고 싶은 욕망을 낳고
삶은 죽음을 피하려는 공포와 맞닿아 있다.
쇼펜하우어의 문장은
이 불편한 진실을 조용히 드러낸다.
우리는 정말 사랑으로 사는 것일까.
아니면 단지 공포 속에서 선택하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인간의 삶은
그 두 감정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과정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