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의 소비자, 기준의 생산자
쇼펜하우어의 말 7 : 인간은 스스로 판단하기보다는 누군가의 말을 믿고 싶어한다. 그러므로 논쟁이 시작되었을 때 사람들이 주로 선택하는 무기는
누군가의 권위다.
이 문장은 인간의 사고 습관을 정확하게 짚는다.
논쟁이 시작되면 사람들은 사실을 검증하려 하기보다
누군가의 말을 가져온다.
어떤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전문가가 그렇게 분석했다.
어떤 기관이 그렇게 발표했다.
논쟁의 무기는 논리가 아니라
권위가 된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일상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행동한다.
우리가 전문가를 찾는 이유도 같다.
스스로 판단하기보다는
누군가의 판단을 빌리고 싶기 때문이다.
토드 로즈의 『집단착각(Collective Illusion)』에서도
이 문제를 지적한다.
전문가의 존재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전문가에 대한 맹신이다.
인간이 판단을 전문가나 타인에게 외주화하는 것은
어쩌면 매우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우리는 자신의 판단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불확실성은 불편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판단 자체를 누군가에게 맡겨버린다.
그러나 이런 습성이 반복될수록
집단 지성은 오히려 약해진다.
논쟁과 분쟁의 과정에서
사람들은 스스로 기준을 만들려 하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로 참여하기보다
누군가의 판정을 기준으로 삼는다.
토론은 사라지고
권위의 인용만 남는다.
나는 이 현상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인데
지금 우리의 분쟁 과정에는 도덕도 토론도 없고
법만 남아 있는 것 같다.
이 질문은 나에게도 단순한 철학적 문제가 아니다.
나는 자동차 회사에 부품을 공급하는 회사에서
영업 조직을 맡아 일하고 있다.
고객과 일을 하다 보면
보이지 않는 권위와 힘의 구조를 자주 경험한다.
완성차 기업이 가진 영향력은 매우 크다.
구매 조직의 한 결정이
공급사의 사업 기회를 바꾸기도 한다.
고객이 만들어 놓은 설계 구조와 프레임 안에서
생각하고 협상할 수밖에 없다는 무기력감을
느낄 때도 있다.
왜 이런 구조가 만들어질까.
나는 그 이유를 이렇게 생각한다.
그들은 기준의 생산자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산업은 매우 복잡한 산업이다.
시장 변화, 소비자 취향, 마케팅 전략,
매출과 수익 구조, 그리고 까다로운 법규까지
수많은 변수들을 동시에 관리해야 한다.
완성차 기업은 이 복잡성을 관리하기 위해
기준을 만든다.
그리고 부품 공급 회사들은
그 기준 안에서 움직인다.
그래서 공급사는 종종
이미 만들어진 판 안에서 싸우는 존재가 된다.
그들은 기준을 만든다.
우리는 그 기준 안에서 싸운다.
물론 현실적으로
그 구조를 완전히 뒤집는 것은 쉽지 않다.
공급사가 갑자기 기준의 생산자가 되겠다고 나서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판단을 외주화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전문가의 권위를 거부해야 한다는 뜻일까.
모든 문제에 대해
나만의 지식 체계를 처음부터 구축해야 한다는 뜻일까.
아마 그것은 현실적인 답이 아닐 것이다.
판단을 외주화하지 않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최소한
문제 해결의 주체로 참여하겠다는 태도일 것이다.
누군가의 판정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이 문제를 직접 해결해내겠다는 의지를 갖는 것.
갈등과 논쟁의 과정에서
판단의 책임을 스스로 떠안겠다는 자세.
어쩌면 판단을 외주화하지 않는다는 것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요즘
다른 방식의 질문을 던져보려 한다.
누가 말했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관찰되었는가.
누가 결정했는가가 아니라
어떤 기준으로 결정했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나는 기준의 소비자인가, 기준의 생산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