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10. 의지로 살아가는 인간의 조건

권태와 고통 사이에서 삶은 움직인다

by 김지영
쇼펜하우어의 말 15 : 의지뿐인 인생은 야만이다… 의지라는 토대에서 발생하지 않은 인식은 조건 없는 수용에 불과하다.


쇼펜하우어는 의지와 인식을 서로 대립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둘 사이의 순서를 말한다.


인식이 먼저가 아니라
의지가 먼저라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한다.


먼저 알게 되고
그다음 행동하게 된다고.


하지만 삶을 돌아보면 대부분 그 반대다.


먼저 움직이고
그다음 이해한다.


내가 대학 졸업 후 첫 회사를 1년 만에 그만두고
다른 회사로 옮겼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세 번째 회사로 이직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독립을 결심했다.


그때의 감정은 단순한 경제적 독립이 아니었다.


부모라는 큰 존재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충동이었다.


“이제는 나를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다.”
“부모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면 나는 존재할 수 없다.”


지금 돌아보면 꽤나 야만적인 의지였다.


하지만 바로 그 경험 이후에
나는 자유와 책임이 무엇인지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독립은 인식의 결과가 아니었다.
인식을 만들어낸 의지의 사건이었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의지 없는 인식을 경계한다.


교육이나 권위에 의해
강제로 받아들여진 생각은


내 지식일 수는 있어도
내 인식은 아니다.


그 안에는 자아가 없다.








쇼펜하우어의 말 16 : 인간이 아무리 애를 써도 삶은 기껏해야 두 종류뿐이다.
권태에 시달리든지, 고통에 시달리는 것이다.


이 문장을 읽고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그렇기 때문이다.


삶을 돌아보면
우리는 대부분 두 상태 사이를 오간다.


고통이 있거나
아니면 권태롭거나.


무언가 부족할 때 우리는 고통을 느낀다.
그래서 그 부족함을 해결하려 한다.


하지만 그것을 얻고 나면
이번에는 권태가 찾아온다.


그래서 다시 자극을 찾는다.


삶은 결국
이 두 상태 사이의 반복이다.


어쩌면 우리는
삶을 살기 위해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할 경험을 만들기 위해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권태를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회사에서 신규 사업을 맡고
교회를 다니고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도


어쩌면 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나만의 방식일지 모른다.


우리는 그것을 도전이라고 말하고
삶의 의미라고 말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권태를 견디지 못하는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말한다.


차라리 고통을 사랑하라고.


기쁨은 잠깐이다.
행복도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하지만 고통은
언제나 나를 움직인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생산적인 고통을 선택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운동일 수도 있고
도전일 수도 있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일 수도 있다.


그 고통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것은 루프가 된다.


처음에는 의지로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몸이 기억한다.


그리고 그 루프가
권태로운 삶을 조금씩 밀어낸다.




삶은 결국 단순하다.


권태를 피하려 하면
고통을 만나게 된다.


고통을 피하려 하면
권태가 찾아온다.


그래서 인간은
이 두 상태 사이에서 끊임없이 움직인다.


어쩌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고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고통을 선택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어떤 고통을 선택하며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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