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0개의 노트 속에서 찾은 나의 지지대
2,300개의 노트 속에서
어젯밤, 10년 전 블로그를 노트로 옮기다가 멈칫했습니다.
"방황은 노력의 증거."
'시골 의사' 박경철 작가의 말을 옮겨 적은 글이었습니다.
그 문장을 옮기다 손이 멈췄습니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다시 마주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때의 나는 무엇을 방황하고 있었을까?
그리고 지금의 나는 무엇으로 지탱되고 있을까?
2025년 5월부터 지금까지 쌓인 2,300개의 노트.
대학 시절 블로그 글까지 모두 옮겨 담은 이 기록들을 뒤지며 답을 찾아봤습니다.
내가 어떤 말을 들었고, 어떤 말로 살아왔는지를.
그 속에서 발견한 몇 개의 문장들이 지금 나를 지탱하고 있었습니다.
방황은 노력의 증거다
'시골 의사' 박경철 작가의 말입니다.
이 문장을 그때는 위로로 읽었지만, 지금은 태도의 정의로 읽고 있습니다.
경영학과로 전과했던 것, 금융사 인턴을 했던 것, 미국 교환학생을 다녀온 것, 금융사 취업에 실패한 후 화학회사 영업직으로 취업한 것, 영어 과외 사업에 도전했던 것, 그리고 지금 자동차 분야에 종사하는 것.
이 모든 것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불안과 궁금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찾아 나선 여정이었습니다.
방황한다는 것은 작은 유혹에 흔들리는 게 아닙니다.
삶을 진지하게 마주한다는 태도이자 노력입니다.
내 가치는 내가 정한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주인공의 말입니다.
"내 가치를 네가 정하지 마. 내 인생 이제 시작이고, 난 원하는 거 다 이루면서 살 거야."
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정말 공부를 안 했습니다.
고3이 되어서야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대학에 가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상위권 대학을 다시 목표로 하느니, 여기서 최고가 되겠다고.
이때부터 용의 꼬리가 되느니, 뱀의 머리가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게 지금 내 삶에도 적용되고 있습니다.
집안, 학벌에 대한 콤플렉스는 갖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안정은 위치가 아니라 상태다
'Mind Miner' 송길영 작가가 한 말입니다.
작년 여름, 동종업계 타 사의 포지션 제안이 왔습니다.
연봉은 지금보다 높았고, 직급도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나는 거절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커리어에서의 '안정'은 절대 없다는 것을.
사회는 변하고, 모든 것이 상호작용하는 관계 속에서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것은 없습니다.
결국 '안정'이라는 것은 위치로 담보되는 게 아닌, 상태로써만 가능합니다.
"내 마음의 상태가 어떠한가?", "내 커리어는 현재 어떤 상태인가?"
이 질문에 답하는 것.
항상 움직이고 변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나는 불안하지 않은 마음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가.
나에게 안정은 지금의 위치일까, 아니면 스스로 유지할 수 있는 상태일까
이 질문 앞에서 저는 한동안 쉽게 답하지 못했습니다.
연봉이나 직급, 회사 이름 같은 것들은 비교적 명확하지만,
그것들이 과연 나를 안정적으로 만들어 주는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디에 속해 있는지가 아니라,
환경이 바뀌었을 때도 내가 다시 나를 설명할 수 있는지.
그 질문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어디서든 필요한 사람’이 비로소 안정인 셈입니다.
나는 그래서 어디든 가도 쓸 수 있는 능력을 갖기 위해
주도적으로 어젠다를 선점하는 회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나 = Σ(과거의 선택 × 반복 × 시간)
2012년 27살, 첫 회사를 그만두고 재취업 준비를 하던 때였습니다.
자기소개서를 쓰며 문득 깨달았습니다.
지금의 나는 과거 내가 했던 선택의 합이라는 것을.
진로 고민, 타협보다는 내 의지에 주목하기, 결혼과 커리어에 대한 관점.
이러한 고민과 생각에 대해 나는 그동안 어떤 선택을 해왔기에 지금 이렇게 살고 있을까?
그때 나는 진부한 산업을 떠나 세련되고 빠르게 변화하는 역동적인 산업을 찾아 나섰고,
실력을 키우자는 일념으로, 41살이 된 지금까지도 실천하고 있으며,
추종하고 따르는 것보다는 주도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리더십을 항상 실천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정리 중인 사람이다
노트를 쌓고, 일을 통해 검증하며,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 나온 질문이 떠오릅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명백히 나는 그것을 증거 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나'가 현재의 '나'를 도왔고,
살아있는 나에게 그 생동감과 활기가 이어져 와 마치 '나'를 지금 살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사소한 일을 위대하게 하라
책 『밤과 나침반』에 나온 말입니다.
지난주 화요일, 동료가 보낸 이메일을 세 번 읽었습니다.
주어도 없고, 무엇을 요청하는 건지도 불명확했습니다.
결국 전화를 걸어 다시 물어봐야 했습니다.
사소한 일을 사소하게 하면, 하찮은 결과만 남습니다.
사실 사소한 일은 없습니다.
사소해 보이는 일이 있을 뿐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회사에서 '사소해 보이는 일'은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이메일을 작성하거나 회의를 할 때 사람들은 주어, 목적어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읽는 사람, 듣는 사람'을 고려하지 않고, '쓰는 사람, 말하는 사람' 위주로 작성합니다.
나는 길이가 길어지더라도 모호성을 피하기 위해 글을 늘려 씁니다.
하지만 서두에는 Summary를 적어둡니다.
사소해 보이는 것이지만, 의사소통은 상대방을 위한 것입니다.
철학자 최진석 교수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문제는 나이가 아니라 깨어있으려는 의지다."
나는 대학 시절부터 최대한 깨어있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깨어있으려는 의지가 지금의 나를 지탱해 온 것 같습니다.
내가 안다고 하는 것을 다시 점검해 보는 것.
내가 모르는 것을 겸손히 수용해 보는 것.
하지만 그 속에서 나만의 관점을 갖는 것.
나는 적어도, 스스로 깨어있다고 믿는 순간을 계속해서 의심하며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