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당할 만큼 산다

욕망의 크기가 아니라 책임의 반경을 선택하는 일

by 김지영

감당할 만큼 산다는 말은,
내 삶의 모든 시간공간, 그리고 관계
내가 책임질 수 있다는 오만하지 않은 자신감이다.


그것은 욕망의 다이어트가 아니다.
책임의 최적화다.




더 하지 않기로 한 것들


나는 불필요한 인간관계나 물건을 정리한다.


내 사무실 책상 위에는 PC와 모니터가 전부다.
마치 당장이라도 회사를 그만두면 마우스와 키보드만 들고 가면 될 정도다.


직장 동료 간 술자리도 1년에 3번 이하로 줄였다.
더 중요한 것이 있기에 우선순위를 정한 것이다.
그리고 내 체력과 인내의 한계를 안다.


나는 3년간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있다.
이제는 한계가 보인다.
내 타고난 체형과 근력으로 더 이상 들 수 없다는 것을.
그래도 처음 스쿼트를 시작했을 때 40kg 10개도 못했지만, 지금은 100kg 7개 한다.
이게 딱 나의 한계 무게다.


이 욕망은 정말 내 것일까


유치원생인 두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서로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 보인다.
한 아이가 재밌게 장난감으로 놀고 있으면 다른 아이가 관심이 없다가도 빨리 달라고 재촉한다.


내 욕망은 내면으로부터의 욕망인가?
아니면 타인의 욕망을 좇는 것을 내 욕망이라 착각하는 건가?


『미움받을 용기』에서 용기는 감정이 아니라 선택 능력이라는 통찰이 있다.
타인의 평가는 내가 통제할 범위가 아니라고 결단하는 것이다.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을 알면서도 스스로 옳다고 판단한 삶의 태도를 선택하는 능력이다.


분리를 실행할 수 있는 힘이 바로 용기다.


'미움받을' 용기는, 타인의 기대에 맞추지 못하면 필연적으로 누군가는 불편해지고,
그 불편함을 제거하려다 보면 자기 인생의 주도권을 포기하게 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래서 용기란 미움받고 싶어 하는 태도가 아니라, 미움받을 가능성을 감수하는 태도다.


배우기로 한 불안


모르는 것이 주는 불안을 감당할 수 없는 영역에 발을 들이는 것은
용기가 아니다.
무모함이거나 허영이다.


다만, 배움으로 해소할 수 있다면
학습하는 능력은 지적 탁월성을 높일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나는 배울 때 머리와 몸을 같이 쓴다.
머리만 쓰게 되면 '도전의식'이라는 미사여구만 남고,
몸만 쓰게 되면 '왜 하는지' 모르게 된다.


나는 회사에서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을 때, 과감히 선택했고 학습했다.
머리로 먼저 익히고 공부한 후에, 필드에 나가 실험했다.


그리고 여러 차례 피드백을 통해 불안을 제거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그릇을 아는 일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나의 그릇을 알고,
내가 감당할 수준을 알 수 있을까?


나는 두 가지를 통해 알게 되었다.


하나는, 충분히 많이 시도해 보는 것.
어린아이들은 무모해 보이지만 시도하듯,
어른인 우리도 실패를 피하려 하기보다
실패를 통해 경계를 확인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정체성을 확장해 보는 것.
나는 기존 영업 역할에 머물러 있을 때보다
신규 사업 리더를 경험하며
내가 무엇에 끌리는 사람인지,
무엇까지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배웠다.
상대와 경쟁하거나 따르기보다
온전히 '내 게임'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가족 안에서는 가장이자 아버지이고,
사회에서는 직원이자 리더이며,
사적인 시간에는 사유하고 기록하는 사람이다.


어느 하나에 과도하게 매달리면
나는 나를 잃는다.


그래서 요즘 나는,
더 많이 가지는 대신
무엇까지 책임질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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