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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교달 Oct 01. 2021

망모전서(亡母傳書)-4

엄마 나 아직 할 말이 남았어


엄마가 죽은 지 이틀이 되던 날.



 장례식장 첫날밤 엄마의 사진이 있는 방에 나는 덩그러니 홀로 남았다. 그렇다. 홀로...


아빠는 조용히 침실로 들어가셔서 주무셨다. (평소에도 아빠 별로였는데, 이 대목에서 남편은 남의 편이구나 싶더라..). 누구인들 장례식장에 자주 가고 싶으랴. 몇 번 가보지 않은 장례식장에 방과 샤워시설이 있는 줄 어찌 상상이라고 했을까. 평생을 함께 살았어도 삶과 죽음이 갈라놓으면 그저 그렇게 담담하게 누구는 침대에 누워 잠을 자고 누군가는 생을 마감해야 하는 공간을 떠돌아야 하는 걸까. 


인생이 별로다. 

누군가는 사랑이 다라고 하는데 아닌 것 같다. 

가끔 들리는 앰뷸런스 소리와 옆 장례식장에서 들리는 사람들이 들고 나는 소리 외에는 적막 같은 고요함이 자연스러운 공간에서 엄마와 마주 앉았다.


집이 가까운 가족은 각자의 집으로 쉬러 가고 나는 외국에 사는 딸이라는 이유와 집이 없다는 이유로 장례식장을 홀로 지켰다. 나라고 어디든 가서 쉴 곳이 없었을까. 그런데 내가 아는 장례식장은 사람들이 모여 밤새 술도 마시고 여럿이 함께 장례식장을 지키는 모습이었기에 칼퇴하는 직장인처럼 집으로 가는 가족이 정말 낯설었다. 엄마는 내 속상함을 아셨을까? 엄마의 영정 사진을 물끄러미 보고 있으니 이런저런 엄마와의 추억이 몰려온다. 엄마는 이미 하늘로 가셨을까? 아님 내 옆에 앉아 평소처럼 다독여 주시고 계실까? 아들 같은 딸이라 좋아해 주시던 엄마를 아들 같지 않지만 씩씩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딸로서 엄마와 마주 앉았다. 


 


"엄마, 난 그 공간이 무서운데 무서워하기엔 엄마에게 미안하고, 누운다고 잠이 올 것 같지도 않아 그냥 쪼그리고 앉아 엄마 사진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어. 원래 장례식장이란 곳은 덮을 이불이라도 기대하기엔 불효가 되는 곳인가 봐. 엄마, 엄마 사진 맘에 들었어? 그 증명사진 별론데.. 아빠가 그걸로 골랐어. 난 엄마가 처진 눈 수술하기 전 얼굴이 더 친근한 엄마 같아서 좋았는데..(말하지 말라고? 알았어.. ) 사진 속 엄마는 너무도 당차고 씩씩하고 우아한 모습이었어. 그 옛날 명문여대를 수석 졸업하면 뭐해? 독설가 아빠를 만나 평생을 외롭게 살았어. 딸만 낳았다고 갖은 구박을 받고 자식 먼저 하늘에 보낸 아픔을 감추고 살다 병든 엄마라고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엄마의 증명사진이었어. 사진 속에선 웃고 있는데 난 엄마가 웃지 않았다는 걸 알아."


동생이 죽던 날 동생 영정 사진을 내가 골랐었다. 누가 그 나이에 영정사진을 미리 준비해두겠는가. 엄마는 그 사진을 정말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너무 쓸쓸해 보인다고. 어쩌겠는가. 어떤 사진을 갖다 놓는다고 해도 그 사진은 괜찮다고 할 사람이 있을까. 환하게 웃는 사진마저도 쓸쓸하게 느껴질 쓰라린 공간. 가슴에 동생을 묻은 엄마는 그때부터 서서히 죽기 시작했다. 


"지금은 엄마 혹시 동생이랑 같이 있어? 동생에게 잘해주지 못해 미안했다고 전해줘. 난 좋은 언니가 못 돼서 동생에게 본을 보이는 삶을 살지 못했다고. 불혹의 나이에도 허우적대며 인생을 살아내고 있다고. 혹시 내가 천국이라는 곳에서 엄마랑 동생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된다면 거기선 잘해볼게. 언니, 딸 노릇. 나 한번 살아봤잖아."




쭈그리고 앉았다가 벽에 기대어 봤다가 나도 모르게 바닥에 누워서 자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화들짝 일어났다 졸기를 반복했다. 자는 내 모습이 엄마에게 미안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세상을 떠나는데 너희는 자는 거냐고 화를 내실 성품도 아닌데, 나는 엄마에게 죄짓는 기분이 들었다. 다들 자고 있는 가족을 대신해 나라도 엄마를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이승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해줄 수 있는 씩씩한 딸

의 모습이라 생각했다.

엄마의 영정 사진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는데 정적을 깨는 문자 메시지 알람 소리. 

문득 아빠의 충전 중인 핸드폰이 눈에 들어왔다. 이 시간에 누가 팔순 노인에게 메시지를 보낼까 궁금했다. 가족들이 아빠의 이상한 점을 눈치챈 건 엄마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이었다. 가끔 병실을 나가실 때면 핸드폰을 꼭 챙겨서 나가시고 누군가와 통화를 다정하게 하시는 모습을 목격한 언니들의 이야기가 사실이었던 것을 꼭 나 혼자 있던 그 장례식장에서 확인했어야 했을까.

아빠의 핸드폰을 열어본 순간 나는 " 누군데? "라고 물어보시는 엄마의 영정사진을 올려다볼 수 없었다. 

응 아니야. 광고 문자. 이 시간에도 광고 문자가 오네...라고 변명을 했겠지. 



아니다. 엄마는 이미 알고 계셨다.

엄마의 표정을 보니 엄마는 평생을 알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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