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아직 할 얘기가 남았어.
엄마가 죽은 지 이틀째 되던 날
엄마가 죽고 나서 제일 감당하기 어려웠던 순간이 언제였을까?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혹은 엄마 화장할 때? 아니다. 돌아가신 요양 병원에서 엄마를 봉고차에 태우고 장례식장에 도착해서 영안실로 옮기는 순간이었다. 엄마가 하늘로 떠났어도 내가 평생 사랑한 엄마의 몸은 내 옆에서 아직 따뜻한데, 꼭 다시 일어나서 집에 가자고 할 것 같은데 일말의 감정의 요동도 없이 엄마를 들것에 옮겨 차디찬 냉동고에 넣어버리는 그 순간이었다. 혹시 살았어도, 살아서 그 안에서 살려달라고 소리를 질러도 들릴 것 같지 않은 그 공간에 엄마를 두고 떠날 수가 없었다. 난 막내라서, 철없는 딸이어서, 엄마 말 안 듣고 산 불효녀라서 그런지, 엄마를 영안실 냉동고에 넣는 순간을 본 체 만 체 하고 장례식장 사무실에서 꽃이며, 음식이며 이야기를 하는 가족이 그저 낯설기만 했다. 남 같았다. 남이 아니라면 이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산 사람은 무섭게 사는구나..
엄마 혹시 그날 기억나? 이십 년 전 어느 저녁, 엄마와 라면을 끓여 먹고 드라마를 보던 평범한 날, 아빠한테서 전화가 왔었어. 엄마는 아무 말도 안 해주고 나더러 옷 챙겨 입으라고 했었어. "네 동생이......" 엄마는 딱 한마디 했었어. 분주하지만 심심한 우리 가정에 늘 걱정거리를 안겨주는 동생 이름에 난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는데 이 밤에 꼭 가야 하냐며 짜증을 부리면서 엄마를 따라나섰지. 엄마는 나더러 운전도 하지 말고 가자고 했어. 엄마는 창 밖을 보고 계셨었던 것 같아. 트로트를 흥얼거리는 택시 기사님의 택시를 타고 병원 앞에 도착해서 병원으로 걸어가는 그 길에서... 엄마가 나와 다른 길로 걸어 들어가는 걸 보고 내가 물었었어. " 엄마 왜 그리 가? 엄마? 엄마?"
시공간이 다른 두 곳 중 시간이 멈추어진 사람들이 인생의 여정을 마치려 3일을 대기하는 그곳으로 향하는 엄마를 보며 나는 악몽에서 깨어나고 싶었다. 병원의 왼쪽과 오른쪽이 생사의 갈림길이라는 걸 알게 된 순간 나는 저승과 이승의 교차로에 서있는 신호등처럼 깜박이기만 하고 한동안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엄마, 엄마가 죽은 날 장례식장도 그러더라. 들어가서 오른쪽은 영안실, 왼쪽은 엄마의 사진이 엄마 대신 손님을 맞는 산자들의 공간. 인터스텔라 영화처럼 엄마는 다른 공간에서 살아 있는 것 같은데, 시간은 절대 쉬는 법이 없이 성실하더라. 모든 게 척척 기다렸다는 듯 준비되고 가족은 검은색 옷을 배당받았어. 너무나 낯선 장례식장에 검은 한복을 입고, 머리에 핀을 꽂았어. 엄마도 그 핀 꼽은 적 있지? 리본 모양이라 예쁠 줄 알았던 그 핀. 왠지 부모 잃은 여린 꽃사슴처럼 여리여리하게 보여주는 것 같은 그 핀. 엄마, 그 핀을 꽂는 게 난 너무 싫었어. 난 내가 죽을 땐 내 딸에게 핀 꼽지 말라고 할 거야. 그걸 머리에 꽂는 그 순간 누가 봐도 엄마를 잃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니까... 그리고 엄마가 있는 영안실 앞에 서서 혹시 엄마가 다시 일어나서 문을 열라고 두드리는 소리가 나지 않을까 마냥 서성거리며 기다리기만 할 수 없이 바빠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