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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비 Mar 21. 2016

자작나무 처녀

자작나무가 심겨진 산책로를 걷고 있었는데 아들 녀석이 말했다. 
"아빠, 마뜨료쉬까를 이 자작나무로 만든대요."

"마뜨..뭐 라고?"

"마뜨료쉬까요. 인형속에 또 작은 인형이 계속 들어있는 러시아의 특산품요"

그제서야 마뜨료쉬까가 여자 모양을 한 겹인형을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기특한 것, 그런 것은 어찌 알았을까?

자작나무를 볼 때마다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은 하얀 나무의 색깔이다. 차랑차랑 소리는 내는 나뭇잎도 일품이지만 순결해 보이는 나무의 색은 나를 정화시키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저멀리 여러 나무들과 어우러져 군락을 이루고 있는 자작나무 숲은 바라보기만 해도 정겹다. 
사람으로 표현하면 피부가 고운 아가씨와도 같은 나무라 하겠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북아시아 설화집'이라는 책에 [자작나무 처녀]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약간 각색하여 여기에 적어본다. 


자작나무 처녀

옛날에 사형제가 살고 있었는데, 큰 형은 숲에서 나무를 하러 다니고 그 다음 두 형제는 가축과 재산을 관리하고 막내는 사냥을 하러 다녔다. 
하루는 큰 형이 숲에서 나무를 하다가 커다란 자작나무 한그루를 베게 되었다. 처음에는 장작으로 쓰려고 하다가 나무의 색이 희고 너무 아름다워 그렇게 하지 못하고 그 나무를 깍아 사람크기만한 여자 인형을 만들었다. 
나무 한짐과 이 인형을 갖고 집에 내려왔는데, 이 인형을 본 둘째는 아름다운 옷을 지어 인형에게 입혀주었고 세째는 비록 먹을 수은 없지만 인형 앞에 음식을 차려놓고 따뜻한 우유를 입에 적셔주었다. 
저녁이 되어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막내는 집안에 앉혀져 있는 그 여자 인형을 보고 얼마나 아름답게 느껴지는 마치 아가씨라고 생각하고 그 인형의 입술에 키스를 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인형이 갑자기 생기가 돌더니 흐믓한 미소로 막내를 살포시 안아주는 것이었다. 

이 광경을 지켜본 형제들은 난리가 났다. 서로 자기의 공이라며 아가씨로 변해버린 그 인형을 차지하려고 싸움이 일어났다. 

큰 형은
"내가 그 인형을 자작나무로 직접 만들었으니 이 아까지는 내 소유야!"
라고 말했고, 둘째는
"막대기에 불과한 인형에 옷을 지어 입힌 것은 바로 나란 말이야!"
라고 말했다. 세째도 이에 질세라
"먹을 것을 준 것은 나거든..."
라고 말했다. 막내는 세 형과는 달리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잠잠히 그 아가씨 옆에서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 

싸움이 점점 격해지자 큰 형이 이렇게 제의를 했다. 
"이렇게 싸움만 할게 아니라, 이 아가씨한데 직접 누가 자기를 위한 공이 제일 큰지 가려달라고 하자. 그 아가씨가 선택한 사람이 바로 그녀의 남편이 되는 거야!"

그 자작나무 아가씨는 한동안 묵묵히 생각을 하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큰 형님은 자작나무로 저를 만들어 주셨으니 아버님 같은 분이고요, 둘째 형님은 옷을 입혀주셨으니, 어머니 같은 분이고요, 세째 형님은 먹을 것을 주었으니 오빠와 같은 분이랍니다. 하지만 막내께서는 마치 신랑이 신부에게 하듯이 저를 대해주시고 키스도 해줬어요. 그러니, 제 남편은 막내이시랍니다."

이 말을 들은 형제들은 그 아가씨의 지혜로운 답변에 놀라며 그녀의 결절에 따르기로 했다. 한편 만내와 결혼식을 올린 이 아가씨는 더 늙지도 않은채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고 한다. 



아무리 많은 것을 주어도 마음을 얻지 못하면 무엇하랴?
사람을 얻으려면 먼저 마음을 얻어야한다. 
마음의 교감이 있지 않고서는 오래 지속될 관계를 이어가기는 어렵다. 
이 이야기에 나오듯이 온갖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다 준다해도 
그 것이 사라지는 순간 그 관계는 물거품이 될테지만, 마음 깊이 새겨진 따듯한 진심어린 사랑은 오래오래 지속될 것이다. 

잔잔한 여운을 남기고 내 맘에 적혀진 연애편지는 누구라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을 것이다. 

주변을 돌아보라!
그들은 나의 따뜻한 말 한마디를 기다리고 있다. 
내가 내민 손을 붙잡고 그들이 치유되는 경험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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