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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비 Mar 22. 2016

유혹에 빠져 봅시다

긴잎끈끈이주걱 Drosera anglica Huds.

어느 날 아이들이 생명과학 활동 시간에 배웠다며 풀 한 포기를 들고 왔다. 
푸른 줄기에 열매처럼 수없이 달린 돌기와 그 끝에 매달린 물방울들을 보면 한 번쯤 달려들어 맛을 보고 싶게 만드는 풀이다. 
파리든 모기든 한번 이 풀에 앉기만 하면 절대로 살아남기 어렵다. 이 샘털 끝의 끈끈한 액체에 붙잡히면 그 속에 들어있는 효소에 의해 벌레는 완전히 녹아서 식물에 흡수되고 만다. 

이 세상에는 보암직도하고 먹음직도 한 게 너무 많다. 
섣불리 취했다가는 분명 어떤 해가 있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저 '나는 남들과 달라서 헤어 나올 수 있을 거야'하면서 그 길에 접어들곤 한다. 

내가 처음 차를 사고 한 달쯤 있다가 눈이 많이 내린 적이 있었다. 아침 일찍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섰는데 약간의 경사가 있는 짧은 오르막길에 사람들이 웅성웅성 거리며 여럿이 서 있는 게 보였다. 그쪽으로 차를 몰아 조심조심 가고 있는데, 그 사람들이 손을 마구 흔들어대면서 차를 돌리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나는 차가 새차라서 타이어 상태도 좋고 늘 다니던 작은 경사로라서 그 말을 무시하고 그냥 직진을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내 차가 갑자기 미끄러지기 시작하더니 방향도 제멋대로 틀어지고 결국은 옆에 세워져있는 차의 범퍼에 쾅 하고 부딪히면서 멈춰 서 버렸다. 이 일로 새 차를 공업사에 맡겨 수리를 하였고 돈도 꽤 들었었다. 

끈끈이주걱을 향해 날아가는 곤충들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우리가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다가서지 말아야 한다. 물에 빠지는 게 두려운 사람은 물가에 가지 말아야 하는데, 발로 첨벙 첨벙거리면서 
'여기는 얕으니까 아무 일 없을 거야'
라고 자만하다가 물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끈끈이가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한번 입에 넣으면 사르르 녹을 것 같고 몸에도 좋을 것 같은 아담의 사과가 여기저기 도사리고 있다. 
'까짓것 남들도 다 하는데 나도 한번 해 볼까?'
이런 무모한 생각이 우리를 병들게 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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