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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비 Mar 21. 2016

왕 앞으로 나아가는 길

길 위에서 진짜가 되자

비가 내리는 어느 날 저녁, 나는 동료와 함께 덕수궁을 찾았다. 
이곳 중화전은 조선의 국호를 버리고 대한 제국이 되면서 지은 궁궐이다. 
안타깝게도 기울어져가는 국가의 운명에 따라 이 궁전은 제대로 사용해보지도 못하고 그 역할을 마쳤다. 
처음 황제의 나라가 되어 보기 좋게 나라를 강대하게 세워보려 하였지만, 1905년 일본이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빼앗아버린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다. 이 조약은 덕수궁 내 중명전에서 이루어졌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구한말 몰락해가는 대한 제국의 마음을 읽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앞마당에 수많은 대신들이 늘어서 있고 왕의 행차는 근엄해야 했을 텐데 외세에 나라가 흔들거려 비통함만이 감돌았을 궁궐이 아닌가.

중화전 앞마당에는 세 개의 길이 나 있다. 하나는 왕이 다니는 길로 어도라 하며 그 좌우엔 신하들이 지나다니는 길이 있다. 그 길에는 울퉁불퉁한 박석이 깔려있는데, 길을 매끈하게 못 만들어서 그런 게 아니라 한걸음 한걸음 걸을 때 몸가짐을 바르게 가지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해 놓았다고 한다. 
왕 앞에 나가는 신하가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얼마나 신중하게 예의를 갖춰 움직였겠는가?

중화문을 지나 궁전을 향해 걸어가 보았다.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며 왕을 보좌하는 충신들이 목소리 높여 '통촉하옵소서!'를 외치던 그곳을 묵묵히 한 걸음씩 내디뎌 본다. 
왕께 나아가는 길이 순탄치만은 않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떼면서 곧 다가올 왕을 뵙는 영광스러운 시간을 기대해본다. 

나는 왕께 어떤 사람일까?
자신의 성공만 바라보고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경쟁에서 이겨 살아남으려는 간신인가? 아니면 왕과 나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이라도 바칠 결연한 의지를 가진 충신인가?
그 발걸음에 그 마음이 녹아있다. 
그 충정을 다른 사람이 알아보는 이유는 진실함에 있다. 
가짜가 아닌 사람의 걸음걸이는 아무리 울퉁불퉁한 돌길이라도 흔들림이 없다. 
사람들은 우직하게 내딛는 그 걸음을 보며 감탄을 자아낸다. 

그 길 위에서 진짜가 되자!


중화전: 1902년 중층으로 지었으나 화재로 전소되어 1906년 단층으로 재건축함.
조정; 궁궐 정전 앞마당, 삼도와 품계석이 있다.
삼도: 어도: 가운데 국왕이 지나가는 길, 좌우 양쪽: 신하들이 지나가는 길.
울퉁불퉁한 박석: 미끄러지지 않게, 걸을 때 몸가짐을 바르게 가지도록
월대: 계단, 답도(국왕의 가마가 지나는 길), 두벌이며 당상관 이상의 관리들만 오를 수 있다. 봉황(상월대), 용(하월대)이 새겨져 있다.
중화전의 용도: 왕의 즉위식, 가례식, 외국 사신 영접 의식, 조하례 의식 등 공식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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