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기인 척 하면서 사실은 복 받았다고 자랑하는 글
본래 이번 포스팅은 내 병에서 아주 중요한 원인인 PNH 단백질에 대해 다루려고 했다. 어느 한 문헌에 쓰여 있던 “발작성 야간헤모글로빈뇨 환자의 35%는 5년 이내 사망합니다.”라는 말에 팍 쫄아서 정보를 무지하게 찾아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검색창에 ‘PNH 단백질’이라고만 쳐도 이미 너무 훌륭하게 정리해 둔 글들이 많이 쏟아져 내리길래 그리고 솔직히 의학 정보 이야기만 또 하자니 별 재미가 없어서 이번 글에서는 처음 병을 진단받고 주변에 알렸을 때 어떤 반응들이었는지 적어보고자 한다. 먼저,
아빠: 나의 유일한 동거인인 아부지는 자식들에게 한없이 다정하나 어쩔 수 없이 베이비붐 세대의 보편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인물로, 처음 내가 동네 내과에서 대학 병원으로 연계되었을 때 그런 거 다 연계해주고 돈 받는 거라고 의심부터 했다(아이고 아부지). 그런데 검사 결과가 자꾸 요상하게 나오고 무엇보다 내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거나 손에 힘이 풀려 물병을 놓치는 등의 증상을 보이는 것을 몇 번 목격하고 나자 지금은 그래도 생각보다 심각한 병이구나라고 인지하신 것 같다. 시간이 되시면 나를 병원까지 왕복으로 태워다 주시는 등 그래도 가족들 중에서 가장 신경 써주고 계신다.
엄마: 우리 엄마는 좀 독특한 인물로, 둘째 동생이 성인이 된 순간 엄마로서의 역할에 파업을 선언한 뒤 독립을 한 사람이고 그 후 실제로 자식들의 생일을 포함해 일 년에 세, 네 번 정도 밥을 차려주는 일 외에는 일절 돌봄 노동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내 병에도 별로 관심이 없다. 암벽 등반, 스키 등을 주축으로 다양한 운동을 섭렵한 운동광이라 운동을 열심히 하라는 말 한마디만 내게 남겼다. 엄마가 나보다 오래 살게 분명하다고 농담하고는 했는데 이 병에 걸리면서 현실화 가능성이 높아졌다.
동생들: 남동생이 둘 있는데 당연히 관심 없다. 나도 자세히 말 안 했다.
할머니: 올해 88세이신 것 치고는 앉은자리에서 빨간 소주 두 병을 올킬하는(...) 실력의 소유자로 정정하신 편이지만, 그래도 나이가 있으신지라 다리 등이 불편하신데 내 병을 알았다가는 난리 나실게 뻔해서 말 안 했다.
친구들: 나에게는 세 번째 직장에서 만나 둘도 없는 사이가 된 네 명의 친구들이 있다. 나의 진단 소식을 듣자마자 난리가 났고, 정확한 원인을 모른다고 설명했음에도 그런 게 어딨냐며 각종 건강식품을 한 아름 사서 안겨 주었다. 그리고 꽃과 무알콜 칵테일과 마라탕과 정성 어린 네 통의 손편지가 함께하는 질병 축하 파티도 열어주었다. 요즘 기운이 많이 없어 카톡 답장을 잘 못하고 있는데 그것과 상관없이 수시로 톡이 온다. 몸은 좀 어떤지, 오늘 달이 예쁜데 보고 있는지 같은 따뜻한 관심들이 카톡함에 소복이 쌓인다. 난 참 행복한 사람이다.
직장 동료들: 진단 이전부터 몸 상태가 이상해서 휴직을 막 시작한 참이었다. 그런데도 나의 착한 동료들은 나를 잊지 않고 여러 방법을 통해 걱정해주고 응원해 주었다. 회사 메일로 보낸 병원 진단서를 보고 궁금한 게 많았을 텐데도 연락해서 캐묻거나 하지 않고 조용히 휴직 연장을 처리해주고 내가 먼저 연락을 하기를 기다려준다. 난 참 복 받은 사람이다.
○○언니: 피는 안 섞였어도 누구보다 내 친언니 같은 ○○언니. 본 투병기 1편에서 내 건강의 이상을 감지한 애인 분을 둔 바로 그 사람이다. 우리는 약 3년 전 모 친목 모임에서 만났다. 그저 느슨할 수도 있었을 인연인데 우리는 서로가 같은 종자인 것을 첫눈에 알아보고 말았다. 하필 사는 동네도 가까워 수시로 만나 어울리며 좋은 게 있으면 나누고 좋은 게 없으면 사서 안겨주며 삼 년을 보내고 나니 이제는 언니 없는 삶을 상상하기 힘든 가족이 되었다. 처음 여러 가지 검사를 위해 대학병원을 들락날락하던 때, 골수 검사에 같이 갈 시간이 되는 보호자가 없어 난감했는데, 언니가 검사 후 잘 걷지 못하는 나를 케어해야 하는 보호자 역할을 당연하다는 듯이 나서서 해주었다. 거의 하루를 다 쓰고, 운전까지 해줘야 하는 일이었는데. 그리고 나서도 수시로 연락해서 괜찮은지 물어봐준다. 나는 진짜 복 받은 사람이다.
정신과 선생님: 사실 이 ‘주변 사람 반응’ 이야기를 적어야겠다고 결심한 결정적 계기는 5년째 다니고 있는 정신과의 원장 선생님이다. 이미 환자를 진심으로 대하는 좋은 분인걸 알고 있어서 오래 뵙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오늘 내 병을 처음 말씀드렸을 때 누구보다 안타까워하셨다. 선생님의 가까운 사람이 혈액암 투병 중이어서 더 감정이입이 된다고 말씀하시기는 했지만, 병에 걸린 이후 이렇게 나의 증상에 따른 어려움을 정확히 이해하면서 진심으로 안타까워 해준 사람은 처음이라 깊은 감동을 받았다. 혈액과 관련된 병이란 게 장기적으로 치료를 해야 하고 어떤 때는 멀쩡한 것 같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이나 활동을 해야 할 때 제약이 따라서 어려운 병이라고 말씀하시는데 그 정확한 분석이 마음에 위안이 많이 되었다. 슬프게도 어려운 병에 걸리는 바람에 다들 고마운 걱정을 해주는 것과 별개로 병에 대한 이해와 공부는 나 혼자서만 해나가야 해서 꽤 외로웠던 것 같다. 그것을 오늘 선생님의 반응을 보고 깨달았다. 선생님은 안타까워서 한숨을 푹푹 쉬시는데 나는 그 앞에서 어쩐지 마스크 아래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선생님은 이미 나를 여러 번 살리셨는데, 이번에도 이렇게 큰 힘을 주셨다. 부담되실게 뻔해 표현은 안 하지만 나는 선생님을 참 좋아한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괴롭힐 예정이다.
만콩이: 나의 동거 고양이 만콩이는 당연히 내가 투병 중인걸 모르지만, 어쨌든 한결 같이 나를 사랑해준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 그냥 만콩이 자랑이 하고 싶었다.
이상 쉬어가는 느낌의 글이었다. 겨우 세 번째 글만에 방향을 바꾼 나란 인간, 스스로도 웃기지만 이런 기록도 남겨두면 좋을 것 같았다. 그래도 양심상 투병 이야기를 좀 하자면, 2회에서 밝힌 대로 현재 2주째 스테로이드와 면역 억제제를 복용하고 있으며, 주저앉거나 물건을 놓칠정도로 팔다리에 힘이 풀리는 증상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데, 약 복용 일주일 정도 경과하였을 때 3일 정도 가슴 부근의 근육이 결린 것처럼 아파서 잠을 설칠 정도였다. 한 문헌에 본 병이 적혈구 파괴로 인한 근육통을 동반할 수 있다고 적혀있었어서, 3일 뒤에 있을 진료 때 의사에게 이야기해볼 예정이다. 그리고 이 병의 증상 중 하나로 여성의 경우 월경과다가 있을 수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일주일째 월경 중이나(원래 평균 5일) 피가 모자라서 그런 건지 뭔지 양이 살짝 비치는 정도이다. 이것도 진료 때 이야기하려 하고 있다. 참, 2주 전 진료 때 혈소판 수치가 계속 18000이라 혈소판만 긴급 수혈을 받았는데 이걸 이야기 안 했다. 전혈 수혈은 2팩 맞는데 5시간이 걸렸는데 혈소판은 1팩 맞는데 30분도 안 걸리더라.
드디어 다음 주 월요일,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피검사의 결과가 호전으로 나오면 계속 약물 치료만, 호전도가 낮으면 주사제 치료를 위해 입원을 해야 하는 기로에 놓이게 된다. 입원 정말 하고 싶지 않다. 돈도 돈이지만 불편하기는 좀 불편한가. 제발 검사 결과가 잘 나오기를 바라고 또 바라면서 약을 엄청 열심히 챙겨 먹고 있다.
매주 한 편씩 제 투병기를 올리고 있습니다. 저도 처음 겪는 일이라 얼떨떨하고 조금 무섭기도 하지만, 일기로 기록해가며 이겨 내보고자 합니다. 다소 특수한 정보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겨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