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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Apr 19. 2023

소희는 왜 스스로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을까?

다음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 (feat. 영화 다음 소희)

"근데 그거 알아? 그래도 영화는 현실보다 낫다는 거? 소희가 예쁘잖아."

"맞아 그리고 형사가 배두나지. 정의감 넘치는..."


이 얘기를 하면서 우린 침울했다.  

'다음 소희'는 2017년 전주 LG유플러스 고객센터에서 상담사로 일하던 특성화고등학교 현장실습생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생각이 많아졌다. 이런 문제에 대해 무관심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이 컸다.   

영화가 풀어내고 있는 이야기들은 지독한 현실이지만 우린 현실의 불편한 얘기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곧잘 외면하게 된다.


영화를 보고 난 뒤 한 가지 물음이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소희는 왜 스스로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을까?"


영화 첫 장면에서는 옆 테이블에서 빈정대는 성인 남성 2명을 상대로 어떤 고등학생이 그대로 돌진한다.

"보태준 거 있어요?" 당황한 남성들은 뒤로 주춤 물러선다.   

그렇게 할 말은 하고 사는 성격의 고등학생이 소희다.


소희는 특성화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현장 실습을 나가게 된다. 담임 선생님이 대기업이라고 추천해 준 콜센터였다. 콜센터는 고객들이 해지를 하지 못하도록 계속 방어하는 작업을 하는데 그 속에서 온갖 욕설과 짜증. 모든 감정들을 쏟아내는 고객들을 상대해야 한다.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소희에게 그 상황도 감당하지 쉽지 않았겠지만 더한 것은 회사의 부당한 요구들이다.


'개인이 품행이 방정하지 못해서, 사회생활은 원래 다 그런 것인데 그런 사회생활에 적응을 못해서'라는 이유들로 소희의 선택이 설명되긴 어렵다. '견뎌내라.' '참아라.'라고 하는 주변의 이런 말들은 스스로를 '견디지 못하는 참지 못하는 나약한 사람'으로 치부하게 만들어버린다. 자기 할 말은 하고 살던 소희도 그랬다.


이전 팀장님 사건으로 회사에서 발설 금지 각서를 받을 때 끝까지 서명을 미루던 소희는 휘갈기듯 자신의 이름을 쓰고 각서를 던져버린다.

그리고 그때부터 미친 듯이 콜을 받기 시작한다. 아이가 죽어서 계약을 해지해야 되겠다는 고객에게도 기계적인 판촉을 진행하면서까지 말이다. 나에겐 그 장면이 본인 스스로도 인간성을 상실하는 순간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인간성 상실의 대가는 또다시 불합리한 현실이었다.


소희는 불합리한 상황 속에서도 여러 시도들을 해봤다.

그러나 회사에서도, 학교에서도 심지어 부모님에게서조차 이 압박의 굴레가 끊길 것 같은 희망을 보지 못했다. 영화 속에서 소희는 하나의 도구로 취급당한다. 회사는 부당했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하도록 했으며 실습생이라는 이유로  무한경쟁 속에서 노동 착취를 착취했다. 아무리 열심히 해봐도 인센티브는 받을 수 없었다. 학교는 관심이 없었다. 학생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살피고 부당한 것을 막아주는 방패이가 되어주지 않았다. 학교가 살아남기 위해서 수치화된 취업률에만 목을 맸다. 부모는 무지했다. 딸의 상황이 어떤 상화인지 인지하지 못했다.   

소희는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되어버린 스스로에 대한 상실감, 어떻게 해볼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막막함 그리고 차오르는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그 속에서 소희는 그런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도록 내몰리지 않았을까? 우린 이걸 사회적 타살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극단적 상황에 내몰려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껴질 때

누구도 나를 도와줄 수 없다는 막막함과 답답함을 느낄 때

오직 그 상황이 전부로 느껴져서 더욱 절망하게 되어버린다.


소희의 심정이 어땠을지 헤아리기 어렵다. 이런 상황은 현재로 진행형이다.

다만 그래도 내가 영화를 통해서 조금의 희망이라도 느낄 수 있었던 건 이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영화를 제작해 주고 그걸 보는 관객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다음 소희가 나오지 않기 위해 누군가는 이 일을 기억하고 있다고, 잊지 않았다고 말해주는 거다.


"누구한테라도 말해. 나한테라도 말해. 괜찮아, 경찰한테 말해도 돼" 영화 속 배두나의 대사가 마음에 남는다.


불합리한 사회 구조속에서 다음 소희가 나오지 않기를. 시스템이 변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내 일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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