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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Apr 23. 2023

별 헤는 밤

인왕산을 오르고, 그를 생각하며 삶이 감사하다.

뭐든 짬을 내서 하면 재미있는 것 같다. 

아침에 간단하게 물이랑 간식 조금 챙겨서 인왕산에 갔다. 서울 시내에서 갈 수 있는 산들 중에 등산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도 무리 없이 다녀올 수 있어서 요즘 사람들이 자주 찾는다고 했다.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시티뷰가 좋다고 하니 오전 내로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가볍게 다녀오기 좋겠다 싶어서 별생각 없이 출발.


독립문역에 내려서 인왕산 입구에 도착해서 산을 오르기 시작! 등산로 자체는 그리 가파르진 않았던 것 같고 적당히 오르기 좋았다. 길지 않은 거리인데 오랜만에 산을 오르려니 땀도 나고 숨은 고르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래도 중간에 쉬지 않고 쭉 올라갔다. 해발 338.2m 도착하니 인왕산 정산이라고 적혀있다.  

입구에서 정상까지 올라가는데 대략 20분 정도 걸렸는데 가볍게 좋았다. 


정상에서 잠시 앉아서 경복궁, 남산이 보이는 시티뷰를 바라보다가 엉덩이 털고 일어났다. 가끔이라도 짬을 내서 산을 오르고 산 정상에서 시야를 멀리 두고 멍 때리기 시간을 가지는 건 정신 건강에 아주 좋다. 간식이라고 초콜릿이랑 가벼운 스낵 같은 것들 들고 갔는데 역시나 먹지 않았다. 물도 혹시나 해서 들고 갔는데 역시나 많이 마시지 않았다. 조금 강도가 있는 산을 오를 때는 간식이 좀 많이 필요한데 가볍게 오를 때는 오히려 짐이 되는 것 같다. 다음엔 안배를 잘해야지.


사람들도 붐비지 않고 적당히 있어 마음에 들었는데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고요히 걷고 있으니 잔잔한 편안함, 기쁨이 있었다. 산을 내려올 땐 올라올 때와는 반대방향인 창의문 쪽으로 걸어내려 갔는데 뚜벅이로 다니면 언제 어디서든 노선을 변경해서 내키는 대로 걸어 다닐 수 있다는 특장점이 있다. 산을 올라갈 때보다 좀 더 발에 정신을 집중해서 내려갔다. 


내려가다 보니 윤동주 문학관이 나왔다. 윤동주 문학관을 염두에 둔 건 아닌데 선물을 마주한 것 같았다. 

왜 인왕산 끝자락에 윤동주 문학관이 있나 했더니 그가 5개월 정도 인왕산 부근에 있는 하숙집에서 하숙을 했고, 후배와 함께 아침이면 인왕산을 올랐다고 한다. 그 하숙집에서 우리가 익히 아는 '별 헤는 밤' '자화상' 등의 시들을 썼다고 하니... 인왕산을 올랐다 온 것이 조금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는 산을 오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마음은 어땠을까? 

다음번에 다시 인왕산을 오른다면 그가 올랐다는 코스대로 다시금 가보고 싶다.  


윤동주 문학관은 원래 그 지역 물탱크였던 건물을 새롭게 문학관으로 탄생시켰는데 물탱크였던 건물의 윗 천장을 없애서 윤동주 시인이 봤던 우물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천장이 뚫린 공간으로 바라보는 하늘, 그가 우물을 바라보면서 느꼈을 마음을 헤아려본다. 그 공간을 지나면 윤동주 시인의 일생에 관한 영상을 볼 수 있는 또 다른 물탱크 공간이 나온다. 27세의 꽃다운 나이에 일생을 마감했던 그의 일대기를 보고 나니 어쩐지 가슴이 먹먹하다. 광복 6개월을 앞두고 죽음을 맞았다.  


일제 식민지 시절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고 부끄러워하고 항거했던 젊은 시인의 삶이 그냥 내 옆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인왕산을 오르면서 또 내려오면서 평범한 일상 속에서 순간순간 이렇게 살 수 있는 건 그 시대를 치열하게 고민해 준 이들이 있어서겠지 싶어서 감사한 마음이 올라왔다. 서울 도심 곳곳에는 암흑의 시대를 살아갔던, 독립을 위해 함께 싸웠던 수많은 이들의 흔적이 있다. 


적어도 지금 나는 지금의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 필요까진 없으니 훨씬 가볍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감사함을 잊지 말아야지. 윤동주 시인의 시를 읽으면 정신적 일깨움이 있다. 문학에 대해 잘 모르는 나도 마음이 울린다. 


윤동주 시 중에서는 '별 헤는 밤'을 가장 좋아한다.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오,

내일밤이 남은 까닭이오,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가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1941. 11. 5 

윤동주




물탱크 위 하늘, 우물을 바라보며 자신을 성찰한 그를 그려봤다. 지금 내게 주어진 이 시간들과 삶을 감사하고, 난 너무 부족하지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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