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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Jun 04. 2023

낮엔 전시회를 관람하고, 저녁엔 난민 얘기를 들었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아침에 씻으려고 하는데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았다. 

이미 준비를 다 한 상태로 들어가서 씻기 시작해서 차가운 물로 후다닥 씻었다.

수도꼭지만 틀면 따뜻한 물이 나오는 환경에 살고 있던 나는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는 이 상황에 '불편함'을 느낀다. 물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도 아닌데 당연하다 생각되는 것들이 되지 않으니 당장 개선시키고 싶었다.

머리를 말리고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하려고 하는데 청소기가 작동을 하지 않았다.

비질이나 걸레질을 할 수도 있었지만 편리하게 사용하던 청소기가 없으니 당장에 '불편한' 마음이 올라왔다. 


숨 쉬듯이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사실 잘 모르겠다. 

가지고 있는 물건들만 봐도 과잉이다. 근데 막상 정리하려고 하면 이게 또 생각만큼 잘 되지 않는다. 

없으면 생사에 연관이 되는 정말 중요한 물건이라기 보단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훨씬 편리한 것들이 많다. 이미 편리함에 길들여져 있으니 없는 것이 상상이 안 되는 것들도 많다. 각자 살아온 삶의 습관에 따라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물건의 범위가 굉장히 다른 것 같다. 

최근엔 컴퓨터 업무가 더 늘어나고 있다 보니 어깨도 불편하고 손목도 시큰거려서 인체공학 키보드를 구매했다. 적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장기적으로 건강을 해치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어서 구매를 결정했는데 사실 이것도 꼭 필요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물건을 사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싶은 거다. 

 

내가 느끼는 불편함이나 고민들은 생사여부가 달려있는 문제는 아니다. 불편하기 때문에 개선시키고 싶은 마음, 거기서부터 행동이 시작된다. 이런 것들이 너무나 자연스러운데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삶은 원래부터 당연히 나에게 주어진 것들일까?

내가 만약 대한민국에 태어나지 않고 제3세계 나라에 속한 곳에서 태어났다면?

대한민국에 태어났더라도 이렇게 고도로 발달된 시대에 태어나서 이런 문명의 이기를 누리는 게 당연한 세대가 아니라 그걸 만들어가야 하는 세대에서 태어났다면? 아마도 많은 부분이 달랐을 것이다.





왜 그런 날이 있는 것 같다. 내 하루 일과를 돌아봤을 때 극과 극의 느낌을 받을 때.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될까? 고민이 되는 그런 날.


친구와 낮에 현대 미술 전시회를 보러 갔다. 설치 미술이었는데 유명한 작가의 전시회다 보니 사람이 많았다. 티켓 예매도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줄을 서서 전시회를 들어가서 해설을 보고 작품들을 둘러봤다. 미술에 조예가 깊은 것도 전공을 하는 것도 아닌 일반인이지만 전시회에 가서 작품들을 보고 작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들을 살펴보면 내 안에 없던 영감이 떠오르는 느낌도 들곤 한다. 

설치 미술이다 보니 줄을 서서 들어가서 봐야 하는 작품도 있었는데 줄을 서 있던 중이었다. 뒤에 중산층 이상은 되어 보이는 모녀가 줄을 섰다. 거리가 워낙 가깝다 보니 나누는 얘기들이 듣고 싶지 않아도 들렸다. 

대략 이런 일상적인 대화였다. 


딸이 말했다. "오늘 입고 온 옷은 디자인이고 다 좋은데 옷이 좀 무거워."

그러자 엄마가 "그래? 보기엔 괜찮아 보이는데 그럼 OOO브랜드 옷 찾아봐. 거기 옷 괜찮아."

옷과 패션부터 시작된 일상적인 얘기들은 딸이 최근에 했던 소개팅 얘기 등등까지 이어졌다. 

평일 낮에 모녀가 전시회를 보러 올 수 있으며, 깔끔하고 세련된 옷을 입은 여유가 있는 평범하고 다정한 모녀의 대화였다. 


근데 문득 그 공간, 그 시간에 전시회를 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생경스럽게 다가왔다. 나까지 포함해서.

난 대단한 인류애적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아니고 환경을 살려야 한다고 호소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그냥 그 순간은 전시회를 보고 예술품을 보고 옷을 입고 만들고 거기에 물적 자원들을 투여하는 것들이 어쩐지 서글프게 느껴졌다. 전시회를 보면서 좋으면서도 어쩐지 불편한 마음이 몽글몽글 거리고 있었는데 그냥 딱 서글퍼진 거다. 이 감정이 굉장히 비약적이란 건 알았다. 그냥 현실에서의 빈부격차, 삶의 질적 차이가 왜 이렇게 심할까 하는 생각들로 머리가 뱅글뱅글 돌아갔다.


그즈음 난민들에 대한 얘기들을 참 많이 접하고 있었다. 전쟁난민, 기후난민 

전쟁이 나거나 기후로 인한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가장 없는 자들이 제일 큰 피해를 입고 또 그 피해가 복구가 원활히 되지 않으니 일상생활로 돌아가지 못한다. 계속 악순환이 반복된다.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은 성폭행이나 범죄에 더 잘 노출되기도 한다. 


사람이 산다는 건 자는 것, 입는 것, 먹는 것 같은 기초적인 것들만 해결되면 그다음부터는 다 같은 건데 그 사람들은 이 3가지가 해결이 안 되어 고통받는다. 난 따뜻한 물이 안 나온다고 불평하지만 어떤 이들은 마실 물을 구하기 위해서 2km가 넘는 거리를 하루에 3-4번은 오다녀야 한다. 

내가 당연한 듯 누리는 것들이 어떤 이들에겐 꿈도 꿀 수 없는 것들이라니. 


그런 생각들로 서글퍼진 낮, 저녁엔 난민 구호 활동을 다녀온 지인에게 그들의 얘기를 많이 들었다. 

48시간이나 내린 폭우로 흙으로 만들었던 집은 무너져 내리고 당장 살 곳이 없는 난민들은 5평 남짓 시멘트 가옥이라도 감사하다. 그 공간에 성인 5명이 함께 사는데 불편하지 않냐고 물어보면 "아무 문제없어요. 만족합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온다고 한다. 5평이 어느 정도 크기인데 그 공간에서 성인 5명이 같이 살아도 만족한다니. 따뜻한 물도 아니고 그냥 물만 나오는 것만도 감사한다니. 먹을 수만 있어도 감사하다니. 한국은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비용만 연간 1조 2천억 원이 넘는다는데...

전기가 없는 곳도 부지기수다. 세계 곳곳에는 이런 상황인 곳들이 얼마나 많을까.


자원은 한정되어 있는데 한 곳이 과잉으로 자원을 쓴다면 한 곳은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겠지? 이건 너무 당연한 이치일 거다. 이 삶의 괴리가 참 크게 다가온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살 것도, 이런 상황에 울고 있을 것도 아니지만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으면 적어도 내가 어떤 쪽으로 삶의 방향을 가져가고 내 생활이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탐구는 이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서 분배구조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던 게 생각난다. 예전 그 글을 읽을 때는 텍스트로만 느껴져서 머리로만 이해했지 가슴으로 그 이야기들이 다가오지 않았는데 아마도 지금 읽으면 느낌이 많이 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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