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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Jun 11. 2023

창극과 문학 사이

창극 '베니스의 상인들' 마지막 공연 

국립극장에서 4일 간 공연한 창극 베니스의 상인들을 아슬아슬하게 마지막날 봤다. 

몇 해전 우연찮게 보게 된 창극은 뮤지컬만 알았던 내게 새로운 신세계를 경험하게 했다.

우리나라 것이 좋은 것이라고 한다지만 

어쩐지 창, 판소리는 어르신들만 좋아할 것 같은 장르라거나 다소 지루하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제대로 들어본 적도 없으면서 시도조차 하지 않았었다. 


천장을 뚫을 듯한 배우들의 시원시원한 발성과 판소리 특유의 간드러짐이나 폭발력, 에너지는 극을 보는 내내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매력적인 장르임이 분명하는구나를 깨달았는데 한동안은 인연이 닿지 않다가 오랜만에 창극을 보러 갈 인연이 됐다. 


셰익스피어의 원작 '베니스의 상인'을 각색한 극인데 구성진 소리로 한을 표현하는 특유의 정서가 서구문학과 그것도 희극과 잘 어울릴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다. 베니스가 배경이긴 한데 친숙한 한복 차림의 사람들이 나오고 강강술래를 연상케 하는 무대 속 어우러짐이 나왔을 때도 나는 어색함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미묘하게 잘 어울리는 그 느낌이 기분이 좋기까지 했다. 


극 소개에서도 나오는데 원작의 악덕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재벌 3세로 표현되고, 무역상 안토니오는 상인협동조합을 이끄는 조합의 대표로 표현된다. 원작의 샤일록은 유대인이었지만 재해석한 창극에서는 인종이나 종교에서 오는 차별은 거두고 한국에서 있는 재벌 등 현대적 요소를 더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극에서 나오는 모든 곡이 아마도 창작극일 텐데 현대 악기와 우리나라 전통악기가 어우러져 만드는 그 사운드가 엄청나게 강렬했다. 노래 가사도 톡톡 튀는 부분들이 많았다. 


마지막 공연 날이라 공연이 마친 뒤 배우와 관객들과의 시간이 있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애정이 그만큼 큰 사람들일 테니 질문 기회를 잡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 질문자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제가 공연을 잘못 본 건지... 공연을 다 보고 나서는 지금 샤일록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요."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질문하는 질문자의 말에 나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샤일록이 제일 강렬하긴 했지.'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서 샤일록의 절규를 보면서 샤일록이 안쓰럽고 불쌍하다는 마음이 들었는데... 이게 맞는 건가요? 샤일록한테 좀 홀린 것 같은데 아무래도 배우의 미모나 퍼포먼스도 영향이 크고(샤일록은 김준수 배우가 캐스팅됐다.) 그게 아니더라도 샤일록의 의상이 화려하고 음악도 강렬하다 보니까...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이 연출자의 의도된 연출인 건지 아니면 단순히 배우의 개인적 역량으로 인해서 그런 건지 궁금합니다."


의문이 들 수 있겠다 싶었다. 물론 김준수 배우의 연기 및 소리는 훌륭했다. 다른 배역을 맡은 배우들의 소리도 좋아서 우와 우아하면서 봤지만 샤일록의 마지막 장면은 극 중에 가장 강렬한 순간이었다. 사실 극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면서 재벌 3세인 샤일록은 내내 상업의 자유화를 주창하고 정경유착의 단면을 굉장히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보여준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을 절규하던 모습을 놓고 봤을 때 국 중 새롭게 해석된 샤일록의 캐릭터는 뭐랄까 입체적인 느낌은 덜하다. 


그래서 내 개인적인 인상은 샤일록 캐릭터 자체도 매력적일 수 있겠지만 아마도 배우가 하드캐리한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의견이 있다. 

어찌 됐든 그 질문을 듣고 보니 원작 셰익스피어를 다시 꼭 읽어봐야 되겠다는 생각이 커졌다.

아마 원작에서는 캐릭터의 입체적 느낌을 다양한 각도로 다시 살펴볼 수 있을 것 같다. 샤일록이 정말 악당일까? 세계적인 작가 셰익스피어가 정말 단순하게 선과 악을 표현했을까?

포샤와의 법정에게 샤일록에게 요구되었던 자비와 사랑이 실은 샤일록에게 가장 필요한 건 아니었는지. 궁금하다. 


말 그대로 이렇게 해석될 수도 있고 저렇게 해석될 수도 있는 게 고전의 묘미가 아닐까.

얄팍한 예전 기억만으로도 충분히 재밌게 극을 즐길 수 있었는데 

원작을 다시금 읽고 다시 극을 본다면 극을 보는 재미가 배가 될 것 같다. 

무대 연출, 연기, 의상, 사운드 모두 만족스러운 공연이었어서 재연한다면 다시 티켓을 예매하게 될 것 같다.

어떤 분은 이 비현실적인 공연을 왜 이렇게 값싼 가격에 볼 수 있도록 해주냐며 티켓 가격을 꼭 올릴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그만큼 좋았다는 얘기를 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술과 작품을 계속 찾게 되는 건 내가 해석할 수 있다는 매력 때문이다. 

작품과 작품마다 연결된 느낌을 받는다. 가령 창극을 보고 문학을 찾게 되는 것 같은 연결성처럼 말이다.  


여운이 좀 갈 것 같다. 


창극 '베니스의 상인들' 주연 배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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