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필름이 끊겨본 뒤 배운 30대의 마음 관리법
스무 살의 봄, 나는 대학생이 된 기쁨을 소주잔 원샷을 하며 만끽하고 있었다. 한 달 동안 30번의 술자리를 가지다 보니 어느새 내가 꽤나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술부심을 가졌다. 하지만 언제나 들뜬 마음은 내려갈 곳이 있듯 잊기 힘든 사건이 생겼다. 한창 날씨 좋던 5월 어느 날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필름이 끊겼다. 필름이 끊긴다는 게 뭔가. 그날의 기억은 마치 오래된 필름의 한 장면처럼 연결되지 않고 툭툭 끊어져 있다. 다음 날 아침, 익숙한 천장을 쳐다보며 눈을 뜨고서도 '여기가 어디지?'하고 멍하니 깨어났다. 그때의 기분이 지금도 생생하다. 속은 뒤틀리듯 헛구역질이 올라오고 머리는 깨질 것 같았다. 한 달 내내 소주병만 봐도 속이 울렁거렸으니 그날의 숙취가 얼마나 지독했는지 알만한 사람들은 알거다.
그 쓰고 답답했던 경험이 내게 남긴 두 가지 교훈이 있다. 하나는 '마음이 출렁일 때는 술을 멀리하자'였다. 당시 나는 처음 겪은 실연의 아픔을 맥주를 거쳐 소주, 소주를 거쳐 폭탄주까지 달리며 어떻게든 달래 보려 했다. 마치 브레이크 없는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길을 달리듯 내 몸을 걸고 질주했었다.
다른 하나는 '한 잔 더'의 유혹을 이기는 법을 배우는 것. 취기가 올라올 때마다 스스로와 타협하지 않기로 했다. 술이 술을 부르고, 또 술이 술을 부르니 말이다.
그런데 최근에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됐다. 술 말고도 수많은 것들에 취할 수 있다는 것.
특히 감정이란 게 알코올보다도 더 강한 취기를 선사한다. 이 정도로 감정에 취해 사는 줄 몰랐다는 느낌이 더 맞을 것 같다. 새벽 감성으로 술술 써내려 간 편지나 격한 감정에 폭풍처럼 쏟아낸 장문의 카톡을 다음 날 읽어보면 '이게 정말 내가 쓴 거야?'하고 놀라게 된다. 마치 다른 인격이 있는 것처럼 낯설기까지 하다. 그때의 나는 무척이나 이성적이고 논리 정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웃기지 않은가.
얼마 전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소중히 모아둔 추억의 편지를 찾아보려다가, 엄마가 그것들을 이미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순간 내 속에서 일어난 감정의 용암은 화산 폭발도 무색하게 할 정도였다.
'어떻게 내가 소중히 여기는 편지를! 말도 없이!!' 하며 분노가 전신을 휩쓸고 지나갔다.
또 한 번은 크리스마스이브 날 남자친구를 만나지 못한 것은 서운하지만 나름 이해하려 애쓰던 날이었다. 남자친구 사정상 만나지 못하는 건 이해했다. 하지만 연락 두절 후 다음 날 아무 일 없다는 듯 태연히 연락한 건... 아, 그때 역시 '어떻게 이럴 수 있어!' 하는 생각에 머리가 팽팽 돌 정도로 화에 취했다. 마치 술에 취했을 때처럼 후회할 말들이 줄줄 흘러나왔다.
이제야 알겠다. 술과 감정은 쌍둥이처럼 닮았다는 걸. 다만 술은 마시기 전에 멈출 수 있지만 감정은 이미 그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허우적거릴 때야 알아차리게 된다는 게 다를 뿐이다. 그래서 더 중요한 게 바로 '알아차림'의 순간이다.
요즘 나는 감정이 격해질 때마다, 마치 술자리에서 "원샷 원샷!" 외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숨을 고르듯, 작은 쉼표를 찍는다. '지금 내가 감정에 취한 건 아닐까?' 때론 불편하고 귀찮은 이 자문이 후회 없는 선택으로 가는 가장 안전한 길임을 배웠다.
결국 우리에겐 '적정선'이라는 게 있다. 술자리에서 한 잔 더의 유혹을 이기듯, 감정이 들끓을 때도 잠시 멈춰 설 수 있다면, 우리는 조금 더 현명한 어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때로는 취하지 않는 것이, 가장 매력적인 취향 되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