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외로움은 내가 마음을 열고 있느냐 닫고 있느냐의 문제라고 한다. 순수하게 지극히 주관적이며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한다는 얘기다. 나는 오랫동안 이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외로움과 소외감이라는 감정에 취약하다. 주기적으로 가슴 한구석이 비어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주변에 사람들이 있어도, 가끔은 마치 투명인간이 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연인이 생겼을 때도 이런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선명하게, 마치 붉은 물감이 흰 종이 위에 번지듯 퍼져나갔다.
별다른 약속이 없었던 어느 일요일 오전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 외국에 가면 항상 그곳 박물관에 들러 전시된 작품과 유물을 감상하는데, 정작 국립중앙박물관을 제대로 둘러보지 않았다는 사실이 황당했다. 도착해서 1층부터 찬찬히 둘러보고 있는데, 문득 전시물보다 다른 것들에 시선이 자꾸만 갔다.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때론 손을 포개고,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따뜻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커플들. 의식하고 보기 시작하니 박물관 곳곳에 그들이 마치 살아있는 전시품처럼 흩어져 있었다. 수백 년 전 유물보다 그들의 실루엣이 더 또렷이 보였다.
"연인과 함께 이곳에 오고 싶었는데..."
나도 사실은 연인과 함께 이곳에 오고 싶었다. 저기 저 내 눈앞에 보이는 커플들처럼 손잡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정다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 순간, 내 안에 있는 급소가 살짝 건드려진 것 같았다. 마치 오래된 상처를 누군가 무심코 건드린 것처럼.
급소란 조금만 다쳐도 생명에 지장을 주는 신체의 매우 중요하고 예민한 부분을 뜻한다. 그런 급소가 몸에만 있는 건 아니다. 마음에도 급소가 있다. 내 마음의 급소는 '외로움'이다. 조금만 건드려져도 마음이 파도처럼 요동치고 흔들리는, 감정 중 가장 예민한 부분.
"사람들은 왜 먼저 내게 다가오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다가도, 나중에 돌아보면 내가 먼저 다가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이없지 않은가? 가까워지고 싶지만 동시에 거리를 두고 싶은 내 마음. 이게 대체 무슨 모순일까. 마치 불을 향해 날아가면서도 불에 타지 않길 바라는 나방 같다.
어느 심리상담가의 이야기가 마음에 깊이 와닿았다.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싶지만 다가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그 기대가 채워지지 않을까 봐 두려워한다는 거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마치 누군가 내 마음속 깊은 우물을 들여다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 이야기였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복잡다단하게 소용돌이치며 가지를 뻗어 나간다. 유사한 감정으로는 소외감이나 고립감을 꼽을 수 있다. 그런데 웃긴 건, 외로움을 채울 수 있을 거라 기대했던 상황에서 오히려 더 깊고 짙은 외로움을 느낀다는 점이다. 지금 만나는 연인이 초반과 달리 만남의 빈도를 줄이고, 오래 안 봐도 괜찮아하는 것 같다. 연인이 자기 생활을 잘해나가듯 사실은 나도 내 생활을 하며 잘 지내고 있다. 그런데도 길에서 손잡고 가는 커플을 보면 솔로일 때보다 더 짙은 외로움이 밀려온다. 마치 갈증이 날 때 바닷물을 마신 것처럼, 갈증은 더 심해지기만 한다. 오히려 없을 땐 없다고 생각하니 아예 원하는 마음이 없는데 한 모금 마신 물이 더 큰 갈증을 불러일으킨다. 연인이 생기면 온전히 나를 이해하고 받아줄 누군가가 생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존재를 꿈꾸게 되는데 실상 그렇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 때 그 감정이 증폭된다. 머리로는 나 자신 스스로도 나를 온전히 이해하고 알지 못하는데 나와는 완전히 다른 타인이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내가 누군가를 그렇게 이해하고 온전히 품어주지 못하니까. 그렇지만 마음으론 항상 그런 존재에 대한 갈망을 가진다.
외로움은 그 감정에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불안이라는 감정이 함께 올라온다. 그 불안감은 존재 자체에 대한 어떤 불안감이다. 내 곁에 물리적으로 함께 할 사람이 없어서 외로운 줄 알았는데, 마음이 교감된다는 느낌이 없으니 누군가 옆에 있든 있지 않든 외로운 건 매한가지였다. 그럴 때면 어딘가 허전하고 헛헛해져서 뭔가를 채우려는 행동을 하게 된다. 유튜브를 더 많이 보게 되고, 괜히 데이팅 앱을 켜보기도 한다.
갈망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마음의 문은 닫힌다. 바라는 게 커질수록 모순적이게도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의 그릇은 점점 작아지기 때문이다. 완벽한 이해를 바라는 마음이 클수록, 조그만 오해도 견딜 수 없게 되는 아이러니가 생기는데 마치 가시로 둘러싸여 다가가기 힘든 장미처럼 그렇게 마음의 가시를 세우고 있는 사람은 외로워질 수밖에 없다.
어쩌면 외로움은 단순히 누군가의 부재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갈망과 두려움 사이의 줄다리기일지도 모른다. 소속감을 느낄 때의 그 행복감이 너무 강렬해서, 그것이 사라질까 두려운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차라리 기대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아 스스로 거리를 두는 것인지도.
나는 외로움이란 건 나 같은 섬세한 성향의 사람들이 유독 많이 느끼는 감정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사교적이고 활발한 성격의 지인이 외로움에 대해 토로하는 이야기를 듣곤 놀랐다. 그의 외로움은 내 것과 형태만 다를 뿐, 본질은 같았다. 그때 외로움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감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물체가 있으면 그림자가 따르듯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런데 외로움을 느끼고, 외로운 감정이 나를 흔든다는 것 자체를 문제 삼고 있었구나 돌아봐졌다.
외로움, 인간이 가지는 근원적인 외로움은 생각보다 유서가 굉장히 오래된 감정이다. 외로움은 인간에게 고통을 주기 때문에 인간은 태초부터 무리를 지어 생활을 해왔다. 그 말은 인간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거다. 그저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외로움이란 감정은 아마 생겼다 사라졌다를 반복할 테지만 그 감정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따라 차이가 생긴다.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잘 인정하고 받아들여서 운용을 잘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하고 휘둘리는 사람.
난 아직 후자에 가깝겠지만 이젠 이게 나에게만 어려운 문제는 아니겠구나, 나만 겪고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걸 느꼈기 때문에 조금은 가벼워진 기분이다. 나 혼자 유별나서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이 위로가 된다.
적어도 이렇게 글로 풀어내면서, 내 마음의 길을 조금씩 탐험해나가고 있는 것 같다.
외로움은 내가 마음을 열고 있느냐 닫고 있느냐의 문제라고 했다. 이제 조금은 그 말이 이해가 간다. 마음을 열기 위해선 먼저 자신의 외로움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하다. 결국 그 용기는 내가 내는 것이고 내가 시작할 수밖에 없다. 길을 찾아 걸어갈 두 발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니까.
한 걸음씩 나아간다.
+덧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꼭 누군가는 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