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움의 무게

완벽한 딸이 되는 법을 내려놓으며

by 진아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내 심장은 마구 뛰기 시작했다. "다른 상담할 일이 있어서 왔는데..."라고 말하려 했건만, 입에서 튀어나온 첫마디는 뜻밖이었다. "부모님의 기대가 너무 무겁게 느껴져요." 기침하듯 뱉어낸 말에 나조차 놀라 멈칫했다. '이 말을 하려고 온 게 아닌데?'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고, 그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심장이 쿵쾅댔다. 비로소 내 가슴 한편에 간직하고 있던 마음 깊은 곳을 마주했다. 그동안은 그저 모호한 불편함으로만 느껴졌던 것들이, 이제는 선명한 형체를 갖추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유년 시절을 돌이켜보면, 내가 어떤 마음인지 잘 알지 못하고 살았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며 조금만 감정이 건드려져도 쉽게 울컥했다. 작은 서운함에도 울컥했다. 그건 어쩌면 오래도록 알아주지 못했던 감정들이 보내는 무언의 아우성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너 지금 이런 감정이야, 그러니 네가 어떤 마음인지는 알고 살아.'


초등학교 1학년, IQ 테스트 결과지에 적힌 '우수한 두뇌'라는 문구는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꿔놓았다. 그 두 글자는 마치 도장처럼 나를 찍어냈고, 그때부터 나는 '우수해야만 하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매 학기 성적표를 받을 때마다, 매 시험을 치를 때마다, 그 압박감은 어깨를 짓눌렀다. 부모님이 나를 믿어주신다는 것은 기쁨이었지만, 동시에 그 믿음은 무거운 짐이 되어 내 어린 등을 짓눌렀다.

특히나 엄마가 바라는 이상적인 딸의 모습은 늘 명확했다. 엄마는 당신이 이루지 못한 공부에 대한 열망이 강했다. 그래서 딸만은 맘껏 공부해서 누구나 인정할 만한 착실한 삶을 살길 바랐다. 새벽에 일어나 부지런히 움직이기를 원했는데 내가 아침 7시나 8시에 일어나도 엄마에겐 늦은 시간이었다. 핸드폰보다는 책을 손에 쥐고 있는 모습에 흐뭇해하고, 컴퓨터보다는 학습에 집중하는 태도를 보이길 원했다.


얼마 전, 본가에 주문한 물건들이 잘 도착했는지 확인하려 전화를 걸었다가 또다시 그 무거운 기대와 마주했다. 병원에 잠깐 들렀다는 내 말에 엄마의 우려 섞인 조언이 시작됐다. "병원 너무 자주 다니는 것도 안 좋아. 오히려 평소에 잘 챙기고 마음을 집중하고..." 버스에 탄 채로 받은 그 전화는, 내 마음속에 켜켜이 쌓여있던 감정을 건드렸다. 전화를 끊고 핸드폰 메모장을 켰다. '내가 왜 전화를 했을까? 어떤 얘기할지 결말이 뻔한데'로 시작된 메모가 한참을 이어졌다. 공공장소에서 뭐라 할 수 없으니 글이라도 써 내려가야 마음이 진정될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엄마의 말씀 하나하나가 왜 이토록 나를 흔드는지 깨달았다. 그것은 단순한 조언이 아닌, 내가 아직도 채우지 못한 기대의 무게였다. 나는 반항하는 마음이 있으면서도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에 그 기준에 맞추기 위해 내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다. 완벽하게 보이고 싶었던 것은 사랑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곧 엄마의 사랑을 얻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던 어린 시절의 그 마음이 여전히 나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저녁, 일기를 쓰다가 문득 깨달았다. 내가 성취를 이룬 일은 크더라도 당연한 일로 여기면서 성취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작더라도 한없이 곱씹는 내 모습이, 엄마의 시선이 아닌 내가 나를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이었음을. 진정한 사랑은 조건부가 아니다. 엄마가 조건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걸 있는 그대로 듣지 못하는 내 문제였다.

이제는 안다. 내가 어떤 모습이든, 어떤 선택을 하든 근본적으로는 내가 내 인생의 책임을 지고 나아간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그 깨달음이 나를 자유롭게 했다. 때로는 휘청거리고, 때로는 넘어질지라도, 그것이 바로 나만의 아름다운 여정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불완전하지만 진실된, 어설프지만 온전히 나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찾던 진정한 '우수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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