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시선이 가르쳐준 것
손을 씻고 있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B가 뜬금없이 이런 말을 한다. "인생은 내 편 하나가 없어."
나는 즉각 말했다. "맞아. 인생은 내 편이 없어."
뜬금없이 나타나 무슨 말을 해도 전혀 당황하지 않는 투다. 그러곤 돌아서서 한 마디 더 덧붙인다. "그러니까 그런 줄 알고 살아."
그런 내 말이 끝나자 B가 배시시 웃으며 말한다. "고무줄 같아. 말이 고무줄 같아. 고무줄로 2번은 쫙 당겨서 묶인 느낌이야."
그 말이 무얼 뜻하는지 알아들은 나도 그를 따라 웃는다. 이것이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B와의 대화는 거의가 이런 식이다. 그의 대답은 대부분 내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나온다. 그도 그렇게 얘기한다. 공감을 바라고 말한 말에 짱짱하고 타이트한 답변이 나올 줄은 몰랐다고.
반면 나는 그의 언어에 매료된다. 직관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자신의 감성을 녹여내 말하는 그의 표현력이 놀랍다. B는 느껴지는 뉘앙스와 감정을 사물화 하거나 마치 특별한 필터를 통과한 것처럼 표현해 낸다. 내 관점에서 B는 세상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는 사람이다.
만난 지 한 달쯤 됐을 때의 일이다. 갑자기 B가 다급한 듯이 창밖을 보라고 소리쳤다. 핸드폰으로 메시지를 확인하고 있던 나는 무슨 급한 일인가 싶어서 심드렁하게 창밖을 바라봤는데,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석양이 지고 있었다.
나도 감성이 완전히 메마른 사람은 아니었으므로, 주황색 빛으로 작렬하는 석양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둘은 창 가까이로 다가가서 서서히 사라지는 석양을 바라봤다. B가 말하기 시작하면 어떤 이야기를 할지 예상할 수 없으니 귀를 쫑긋하게 된다.
"예전에 내가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었는데 그때 홈페이지 이름이 '오후 5시 24분'이었어."
그때 시간은 대략 5시 40분이 넘어서고 있었다.
"오후 5시 24분? 왜?"
"내가 그 시간대를 좋아하거든. 그 시간에 느껴지는 약간은 쓸쓸하고..."
"쓸쓸하고 뭔가 일이 마무리된 것 같고 비로소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은?"
이라는 내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때도 약간 감동했다. '나는 왜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지? 분명 나도 좋아하는 시간대라는 게 있는데 말이야.' 일상에 감성 한 스푼을 떨어뜨리니 모든 순간이 그 자체로 예술이 됐다.
몇 개월이 흐른 후, 누군가 B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J가 왜 좋아?" 평소 막힘없이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표현하는 B는 그 질문을 듣고 자신을 이렇게 답했노라 나에게 말했다. "Y는 우선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줘!"
B의 이야기는 단순히 흥미로운 것을 넘어서 실제로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일상적인 대화처럼 보여도, 그의 예술가적 기질은 굉장히 섬세한 관찰력으로 이어진다. 마치 고성능 관찰 카메라를 소지한 것처럼, 그는 남들이 잘 보지 못하는 핵심을 파악하는 독특한 통찰력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그가 본인은 인지하지 못하고 툭툭 던지는 말들이 내게는 엄청난 깨달음으로 다가올 때가 많다. "허튼짓도 계속 꾸준히 하면 뭔가 되는 거야"라는 말을 한다거나, 내가 자기 할 일만 챙겨서 하는 사람이라는 평가에 볼멘소리를 늘어놓으면 "만약 네가 조금 더 챙겨서 할 수 있다면 그건 단순히 좀 더가 아니라 몇 배 효과를 낼 거야"라고 말해주는 식이다.
B는 좋고 싫음이 매우 분명한 사람이다. 다행히 좋아하는 사람에 포함된 나는 그에게 일종의 조언을 할 수 있게 되었다. B는 내 말에 귀를 기울이는 편인데, 그건 내가 감성적이지 않게 얘기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이미 충분히 감성적인 사람이기에 감성을 덜어낸 담백한 표현을 오히려 편하게 느낀다. 본인에게 다가오는 느낌과 하중이 적다고 표현한다.
나는 그의 장점이자 동시에 단점이기도 한, 좋고 싫음이 분명한 이 성향을 사회성 있게 발전시킬 수 있도록 조언한다. 특정 상황에서는 그렇게까지 대놓고 싫은 티를 내면 안 된다거나, 때로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참아야 한다고 알려주는 식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우리는 누가 봐도 반대되는 유형의 사람들이다. 그는 직관적이고 감성적이며 예술가적 기질이 넘치는 반면, 나는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세상을 해석한다. 처음에는 이런 차이가 거리감을 만들 것이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이 차이 때문에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 만난 지 1년이 넘은 지금, 우리의 관계는 더욱 깊어졌다. 내가 평소에는 잘 인지하지 못하는 감성의 영역을 그가 건드려주고, 그걸 내 언어로 정리해서 말하다 보면 그는 "정리를 너무 잘해준다"며 좋아한다. "별다른 의미 없었던 일을 의미 있게 만들어준다"면서 감사해한다.
반대로 그의 넘치는 감성과 솔직함이 때로는 사회적 상황에서 걸림돌이 될 때, 내가 그에게 조금 더 "감성을 덜어낸" 조언을 건네면 그것이 오히려 효과적으로 다가간다. 우리는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소소한 대화 속에서 이렇게 서로에게 자극이 되고 성장의 발판이 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서로 다른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만나 대화할 때, 우리는 혼자서는 결코 보지 못했을 풍경을 발견하게 된다.
일 년 전만 해도 나는 석양을 그저 하루의 끝으로만 바라봤다. 이제는 그 속에서 오후 5시 24분의 특별함을 볼 수 있게 되었다. B 역시 자신의 솔직함이 때로는 상대방을 불편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다름이 주는 깨달음, 그것이 우리 관계가 선사하는 가장 큰 선물이다. 우리는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이지만,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서로에게 더 의미 있는 존재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반대되는 퍼즐 조각이 맞물려 더 완전한 그림을 만드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