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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Apr 25. 2023

옹졸함

연습하다 보면 넓어지겠지, 마음의 크기도.

옹졸하다 : (사람이나 그 마음이) 너그럽지 못하고 좀스럽다 [출처 : 다음 국어사전]


문득문득 나의 옹졸함과 정면으로 마주할 땐 당황스러운 심정이다. 부정하고 싶기도 하다. 

보통 내가 옹졸한 줄도 모르고 상대방만 탓하고 있다. 그러다 정신을 좀 차리면 내가 옹졸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렇게 생각이 든다고 해도 처음엔 옹졸한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런 내 모습을 수용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린다. 애초에 옹졸한 마음을 내려는 찰나에 그걸 알아차린다면 제일 좋겠지만, 어쩌랴 내가 지금 그렇게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수준이 아닌 것을. 옹졸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도 장한 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옹졸한 마음을 낼 때 일종의 패턴이 있어서 연구 중이다. 최근의 있었던 일로 분석을 좀 해봤다. 


우선 경계해야 되는 것은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 '바라는 마음'은 생각보다 큰 파장을 일으켰다. 바란다는 건 그냥 혼자 그렇게 됐으면 하고 생각하는데 상대가 알아서 맞춰줘야 한다. 내가 어떤 마음이고, 내 생각이 어떻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기 때문에 굉장히 수동적인 자세다. 내 속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이 벌써 옹졸해진다. 예전 연애에서도 싸운 이유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 맘처럼 해주지 않는 것에 불만을 가졌다.(미안하다. 내 지난 인연들) 나도 다른 사람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하면서 그걸 계속 요구한다니 참 재밌다. 이번에도 어쨌든 이 바라는 마음이 시발점이었다.   

평소에 편하게 지낸다고 생각한 동료가 있는데 근무지를 바꾸게 되면서 이 동료와 같은 근무지에서 근무를 하게 됐다. 나는 속으로 새롭게 왔으니 밥 한 끼를 같이 먹자고 한다거나 커피 한 잔 하자는 말로 나를 환영해 줄 것을 기대했다. 그런데 아무런 얘기가 없었다. 내가 먼저 '밥 한 끼 하자'하면 끝날 일이었는데 내가 바라는 대로 해주지 않으니 이미 마음이 상했다. 머리로는 그 동료가 왜 너를 환영해야 하니? 생각하지만 마음으로는 서운한 마음이 생겨버려서 괜스레 그 동료의 다른 부분들도 걸리기 시작했다. 이 감정들이 커져가니 상대방을 미워하는 마음으로까지 마음이 번져가는 거다. 말도 걸리고, 행동도 걸리고, 표정도 걸린다. 상대방은 영문도 모르고 미움을 받고, 나는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을 내서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참 어리석은 행동인데 뜨거운 맛을 덜 봤는지 잘 안 되는 지점이 있다.  


두 번째는 '말'. '표정'에 걸린다. 사람마다 말하는 스타일, 표정이 모두 다른데 분명한 건 내가 선호하는 말하는 스타일과 표정이 있다. 내 취향이나 선호를 상대가 어떻게 알 것이며, 설령 안다고 해서 그렇게 맞춰줘야 되는 것이 아닌데 어쨌든 나는 일단 마음에 걸린다. 어떤 때는 메시지에서 조사 하나에 꽂혀서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너무 소소해서 말하기도 민망하지만 가령 이런 경우다. '회의 10분 전에는 오셔서 준비를 해주세요.' 아마 공감을 못할 테지만 이 메시지를 보내기 전에 나에게 했던 상대의 표정에 이미 걸려있던 나는 이 문장에서 '10분 전에는'이라는 말에 꽂힌다. '10분 전에'도 아니고 '10분 전에는'에서 '는'이라는 조사는 시비 뉘앙스가 느껴진다며 눈을 가늘게 뜬다. 더 잘 마음에 걸리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걸리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집중적으로 순간의 내 마음을 알아차리는 연습이 필요하다.


세 번째는 '문제제기'를 듣기 싫어한다. 그래서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에게 뒤끝이 있다. 업무적으로 보고를 하고 진행했어야 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내가 놓쳤다. 당연하게 그 부분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받았는데 내가 놓친 부분임에도 문제제기 하는 그 얘기가 듣기 싫었다. 그냥 '네, 다음부턴 챙기겠습니다.' 혹은 '주의하겠습니다.' 하면 될 일이었다. 근데 내가 뒷 말이 길었다. 일단 알겠다고 하긴 했는데 평소 의문을 가지고 있었던, 시비를 가지고 있었던 일들이 줄줄 말로 나왔다. 그럼 이 케이스는 어떤가요? 이건요? 하면서 얘기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러고도 '너는 어떻게 하나 보자'하는 심정으로 그 제기를 했던 상대방을 찬찬히 뜯어보고 있었다. 나의 실수나 놓친 부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을 때 내 꽁함이 더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옹졸한 마음을 낼수록 다른 사람이 아닌 나에게 마이너스라는 걸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안다. 

흔히 사람 마음의 크기를 그릇에 비유하곤 하는데, 비록 지금 내 그릇 크기는 종지 그릇만 하더라도 희망을 잃지 않기로 한다.  


그릇이 큰 사람들의 특징을 얘기해 준 유튜브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우선 그릇이 큰 사람들은 자기 객관화가 되어 있어서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하지도 함부로 자신을 비하하지도 않는다. 또 부정적인 상황에서 오히려 주도적이 된다. 남 탓을 하지 않고,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문제 해결에 집중한다. 마지막으로 다르다는 것에 대해서 열려 있다는 점, 비교하지도 않고 차별하지도 않는다. 누군가 나를 있는 그대로 봐준다면 그 자체가 정말 든든하다 느껴질 것 같다. 나 자체로 인정받는다는 건 큰 안정감을 준다. 누군가에게 그런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참 근사할 것 같다.  


내 옹졸함이 불쑥불쑥 튀어나와서 마음으로 잘 넘어가지지 않을 때

 

[구체적 실천과제] 

1. 바라는 마음 낼 때 알아차리기

내가 그런 마음을 내고 있음을 자각한다. 말하지 않으면 모르고, 상대에게 그렇게 해줄 의무가 없다. 오히려 내가 먼저 상대의 니즈를 파악해서 맞춰볼 것.

2. 말과 표정에 걸릴 때 알아차리기

말과 표정에 걸리지 않고, 편견 없이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연습을 해본다. 나와 너는 애초에 같을 수 없다. 말과 표정에 그렇게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아 본다. 

3. 문제제기를 흔쾌히 받아보기

상대를 탓하는 마음을 잘 보고, 문제 자체에 집중한다.


마음의 크기도 연습하다 보면 넓어질 테지. 희망을 가지고 내 옹졸함에 대한 패턴 연구는 계속이다.


꽃시장 식물들. 뭐든 가꿔주면 잘 자라고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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