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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May 15. 2023

아픈 게 약이다.

막판 코로나 확진

나는 원래 손발이 차가운 수족냉증인 사람인데 내 손이나 발에서 열감이 있다. 

체온을 정확히 재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확실히 열이 나고 있는 상태다.

목이 따끔거리고 아프고 코도 살짝 막히는 것 같다. 두통이 있고 얼굴 근육에 통증이 있다. 

고개를 숙이면 통증이 더 큰 것 같다. 몸이 으슬으슬 춥기도 하다. 


2일 전 밖에 있는 중에 갑작스럽게 비가 내렸다. 우산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한 20분가량 비를 맞으면서 걸었다. 비가 점점 갈수록 굵어졌지만 가볍게 젖었겠지 했는데 생각보다 몸이 많이 젖었던 모양이다. 비를 맞고 난 직후에는 별다른 증상이 없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저녁부터 어쩐지 몸상태가 좋지 않았다. 

목도 아프고 열감도 올라오는 게 내일은 꼭 쉬어야 되겠다 생각하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니나 다를까 몸 상태가 어제 밤보다 훨씬 안 좋아져 있었다. 이런 정도의 몸 상태라면 납작 엎드려서 그냥 죽었다 하고 쉬어야 되겠다 싶어서 하루종일 누워 쉬었다. 쭉 쉬다 보니 초반보다 나아진 듯도 하고 그렇지 않은 듯도 한 긴가민가한 상태였다. 열은 계속 있었다. 입 안이 까끌까끌해서 먹고 싶은 음식도 별로 떠오르지도 않고 맛도 느껴져지지 않았다. 그래도 뭐라도 먹어야 바이러스와 싸울 수 있겠다 싶어서 오후 3시쯤 흰 죽을 좀 먹었다. 그게 그날 마지막 식사였다. 


이때까지도 비를 맞아서 감기가 걸렸겠거니 생각했는데 다음 날까지도 열감이 계속 있고 잔기침이 났다. 목이 싸하게 아픈 것이 혹시나 싶어서 코로나 간편 키트 검사를 해봤다. 검사를 하면서도 확인 차원으로 하는 거지 이렇게 생각했는데 '코로나 양성'이 떴다. 


'대체 언제??' 


물론 코로나에 대한 정부 방침이 변하면서 외부 내부 할 것 없이 마스크 없는 삶을 자유롭게 누리곤 있었다. 매일 아직까지 8천여 명에 가까운 확진자들이 나온다는 얘기는 어딘가에서 듣긴 했지만 왜 내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했을까. 코로나가 사라진 줄 알았더니 아니었나 보다. 워낙 고려를 안 하고 살았기 때문에 어디에서 어떻게 감염이 됐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다시 명확힌 확진 판정이 있어야 하니 동네 이비인후과를 찾아서 재확인을 받았다. 일주일 동안 내내 몸 컨디션이 너무 좋지 못해서 이게 생리 전증후군 때문에 이러는 걸까. 아니면 바뀐 환경으로 긴장감을 가지고 있다가 그 긴장감이 좀 풀어지면서 이러나 여러 경우의 수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는데 코로나 잠복 기간 사전 증상이었나? 하는 가능성까지 추가되었다. 아마도 복합적인 게 맞을 것 같다. 지금 내 몸 상태는 열심히 전쟁 중인 것이 현실이다. 


가끔 이렇게 대놓고 아프면 사람이 좀 겸손해지게 되는 것 같다. 

평소에 일 할 때는 할 것 같지 않은 실수를  2, 3차례나 했다. 눈앞이 핑글핑글 하는 게 집중이 잘 안 되고 머리가 안 돌아가는 게 느껴진다. 잔실수가 많다. 쉽사리 지치는 느낌이 들고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는다. 

이럴 땐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받아야 하고 내 부족한 상황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몸에 조금만 이상이 나도 이렇게 부족한 존재가 된다. 사실 평소에도 내가 챙긴다, 내가 잘한다 이렇게 살아도 주변에서 메워주고 챙겨주는 것들이 많을 텐데도 잘 알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었을 거다. 보이지 않는 주변의 배려나 도움을 당연시 여기면서 말이다. 근데 아프면 그냥 흘리고 부족하고 힘들어하는 게 기본값이 되다 보니 도움을 받지 않고 살기가 어렵구나 하는 게 더 절절히 느껴질 뿐이다.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걸 돌아볼 수 있다. 아픈 게 약이다. 


이번 참에 또 연습해 보고 살펴볼 수 있는 마음이 있다. 바라는 마음과 받아들임. 

아프니까 의지하거나 챙겨주길 바라는 마음이 좀 더 올라온다. 

격리 생활을 하다 보니 먹을 것에 대해서는 확실히 챙김을 받아야 하는데 어떤 종류의 음식을 어느 정도의 양을 받느냐 하는 것에도 바라는 마음과 받아들여야 하는 마음을 살필 수 있다. 

이런 음식이나 과일을 좀 더 가져와주길 바라고 디테일을 얘기하면서도 어떻게 생각할까 눈치 보게 되는 게 있다. 또 음식의 양이나 종류를 호불호에 관계없이 수용해서 받아들여보기도 생각보다 살펴보는 게 재밌다. 


선호하는 '오렌지'를 볼 때의 마음과 좋아는 하지만 지금 잘 먹을 수 없는 '배'를 볼 때의 마음 같은 것들.

밥양이 평소 먹던 양보다 많을 때의 난감한 기분과 떡이 있을 때의 반가움 같은 것.


몸이 아프고 한 공간에 계속 머물러야 한다는 건 안타까운 마음이지만 

이번참에 그냥 편히 휴식하고 잠깐 업무나 생활이나 마음에도 쉼표를 찍고 갈 수 있다는 건 또 좋은 일이다. 

아프니 좀 겸손해지고 요청을 해야 되니 공손해지기도 한다. 바라는 마음은 좀 더 내려놓고 주어지는대로 받아들이면서 지내봐야지. 

머릿속에 이거 저거 격리 중에 해야 되는 거 있지 않나 자동 계획이 세워지기도 하는데 될 수 있으면 느긋하게 지내봐야 되겠다. 감사히 잘 쉬겠습니다. 


빨간 두 줄, 잘못 봤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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