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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May 17. 2023

성숙한 어른으로 한 걸음 더

남의 허물을 뒤에서 수군거리며 말하지 않는다. 

남의 허물을 뒤에서 수군거리며 말하지 않는다.


살면서 그 자리에 없는 사람 얘기를 하지 않는 것이 생각보다는 어렵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이 부분을 인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내가 많은 순간을 다른 사람 얘기를 하면서 보낸다는 걸 자각하게 됐다. 쉽게 쉽게 얘기하지만 연예인 얘기하는 것이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다. 그건 심지어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얘기를 카더라를 통해서 혹은 관심법을 통해서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행위지 않나. 익명성 뒤에 숨어서 키보드를 두드리며 책임지지 않아도 될 말들을 흩뿌리는 사람들이 악플러라고 생각했는데 그걸 말로 하는 것도 뭐가 다를까 싶다. 내가 누군가의 얘기를 그 사람이 없는 자리에서 하는 있는 심리와 온라인상에서 이러쿵 저러쿵 얘기하는 행위는 실상 본질은 비슷하다.  


한 단면만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고 말하는 것이 굉장히 위험한 것임을 알고 있더라도 그런 상황이 되면 습관처럼 얘기를 하거나 얘기하고 싶어 하는 나를 발견한다.  

불평, 불만인 것에 대해서 얘기가 나도 모르게 말로 툭하고 튀어나오는 습관도 한몫 단단히 한다. 

상대방에 대한 좋은 얘기나 칭찬은 상대적으로 말하고 싶은 욕구가 덜하고 그냥 '그렇군' 하면서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안 좋게 생각되거나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엔 얘기를 해서 그걸 해소하고 불평 불만 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강렬하게 올라올 때도 있다. 얘기를 하고 싶어서 입을 옴짝달싹 거리거나 그냥 내뱉어 버릴 때도 있다. 그러곤 '아차'하면서 인식하게 되는 경우들이 많다. 특히나 편안하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있으면 더 거리낌 없이 얘기하게 되는 것 같다. 


말하고 싶던 상황에서 그걸 용케 알아차려서 그냥 넘어가고 나면 내 주관적인 판단에 의한 경우가 있거나 다른 이면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들도 보게 된다. 내가 보는 것과 듣는 것과 느끼는 것이 모두 사실이진 않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 말하는 순간엔 사실이라고 믿었겠지만 말이다. 이 부분에서 명확히 말하는 것을 멈춰볼 수 있어야 한다. 딱 한 템포만  

설사 그게 정말로 개선이 필요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괜히 내가 말을 보태서 다른 사람들 인식에 편견을 만들어줄 필요가 없었던 경우도 있다. 


누군가의 얘기를 해야 될 상황이라면 그 사람 앞에서 할 수 있는 얘기를 해야 되겠다 싶다.

좋은 얘기도 그 사람 앞에서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것

문제제기를 하더라도 그 사람 있는 앞에서 할 수 있는 말들을 해야 하지 않을까. 

보통 그 사람 앞에서 할 수 없는 얘기들은 문제제기가 아니라 비난인 경우가 대다수인 것 같다. 

좀 아프지만 상대에게도 모두에게도 정말 필요한 말이라면 그 앞에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 보면 간단한 얘기긴 하다. 내가 기분 나쁜 건 다른 사람도 기분이 나쁘다.


다른 사람이 뒤에서 내 얘기를 했다는 소식을 누군가를 통해서 전해 들었을 때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렇게 얘기하지? 기분이 나빴다. 그냥 그 사람이 그렇게 봤다는 것인데 뒤에서 그런 험담을 얘기했다고 하니 나도 나쁜 인식이 생겨버려서 마음의 거리가 확 생겼다. 그 후론 만나면 하는 행동들이 다 가식같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 순간에 그렇게 생각이 들어서 내 얘기를 그렇게 했다는 것뿐인데 마음의 벽을 쌓고 멀리하는 건 또 나의 부족한 점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겪으면서 뒤에서 말하는 건 정말 여러모로 좋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상대방의 대해서 말하는 동안 내가 내 편견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같이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사람들에게 편견을 심어주게 된다. 그러다 혹여나 이 얘기를 누군가 그 사람에게 전달하거나 그 사람이 우연히 듣게 된다면 이런 부분들이 쌓여 오해는 깊어지고 개선하기 어려워진다. 그런 감정의 골들이 미움이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220 볼트와 110 볼트 콘센트에 들어가는 모양이 다르듯이 사람마다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잘 맞을 수 있고 편안할 수 있다. 콘센트가 안 맞으면 상대적으로는 가까워지기 어려울 수도 있다. 코드 자체가 다르니 이해하기 위해선 노력을 동반되어야 한다. 근데 모든 인간관계가 꼭 가깝고 좋아야 하는 건 아니니 그 자체에 의미를 크게 두진 않더라도 또 콘센트가 나와 맞지 않다고 해서 불편한 사이가 될 이유도 없다. 맞춰가야 하는 부분들이 불편해서 자꾸 뒤에서 말하다 보면 사소하다고 생각했던 이 행동으로 함께하기 불편한 사이가 될 수 있다. 이건 안타까운 일인 것 같다. 인간관계 속에서 이런 경우들이 생길 때 뒷말하는 이 행동이 결코 사소한 행동이 아니구나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 대해서 뒷말을 하는 사람을 보면서는 나는 속으로 그 말을 하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도 신뢰감을 잃었던 경험도 많다. 지금 내 앞에서 저 사람 얘기를 저렇게 하고 있다면 언젠가 누군가에게 내 얘기도 비슷하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든다. 내가 누군가의 얘기를 하고 있을 때도 아마 듣는 사람들은 동조를 하든 하지 않든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누군가의 험담을 뒤에서 말한다는 건 내 살 깎아 먹는 행위임은 분명한 것 같다. 


누군가 내 얘기를 하는 것에는 여유와 너그러움을

나는 누군가에 대해 얘기하게 되는 성급함을 벗어나 

한 템포 더 멀리 더 넓게 바라볼 수 있는 지혜가 있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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