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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May 27. 2023

나와 내 주변을 밝힐 수 있기를

부처님 오신 날, 연등달기

생각이 많고 의심이 많은 사람은 종교가 잘 안 믿어지는 것 같다.

비교적 의심이 많은 편이었던 나는 종교에 쉽사리 마음이 열리지 않았다.

주변에 나에게 좋은 말씀을 전하고 싶어 하는 분들은 참 많았는데

글쎄... 그다지 인연이 닿지 않았다.  


어릴 적 이웃에 살고 계시는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맛있는 음식도 잘 주시고 어린 시절 혹할 만한 것들을 제시하시며 그렇게 나를 교회에 데려가고 싶어 하셨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한 번 가자고 하셔서 교회를 몇 번 정도는 갔던 것 같다. 정말 좋다고 생각하는 일이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으로 권유하신 그분들의 마음은 감사하지만 나한테는 그 좋은 말씀이 별로 와닿지 않았다. 기도를 하면 천당을 간다는데 일단 천당이란 게 나에게 실체가 없었다. 믿음이 생겨야 믿어볼 텐데 믿음이 생기지 않았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나는 종교가 없었다. 딱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도 있고 여전히 구미에 당기는 종교가 없었다.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가 모태신앙이었다.

남자친구는 은연중에 "우리 엄마는 결혼하면 며느리가 교회만 같이 다닐 수 있으면 며느리한테 바라는 거 전혀 없대."라는 말을 하며 내가 교회가 다니길 은근히 바랐다.

그래도 종교적으로 크게 부담을 느낄 정도로 강요를 하던 사람은 아니어서 참 고마웠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크리스마스 날도 교회를 가는 것보단 나를 함께 있어줬던 사람이니 참 많은 배려를 해줬던 걸 알 수 있다.


어느 날 남자친구가 유명한 팝페라 가수가 교회에서 공연을 한다며 함께 가고 싶다고 했다. 속이 빤히 보였지만 그래도 나도 작게나마 만나는 사람에게 화답을 해야 되겠기에 제안에 응했다. 그런 문화가 익숙지 않으니 다소 어색하게 남자친구와 자리에 앉았는데 기도를 시작하자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울기 시작했다. 통성기도였던 것 같은데 그런 문화를 접해보지 않은 당시의 나로서는 그런 모습이 매우 생경스러웠다. 어쨌든 거기까지도 그럭저럭 지나가고 목사님의 설교가 시작되었다. 아니 목사가 아니었던가? 남자친구가 말했던 팝페라 가수가 공연을 하고 신앙을 고백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자신에 삶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신앙에 대한 절실함까지는 좋았는데 타 종교에 대한 비난을 시작하면서부터 흥미가 뚝 떨어졌다. 모르긴 몰라도 하나님도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 어떤 한 부분을 일반화시켜서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는 부분에는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인연이 다했고, 표면적으로는 종교가 다른 것을 이유로 그때 남자친구와도 이별했다.


우리 집안의 종교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엄마가 불교신자시니 불교문화에는 익숙한 편이었다. 그럼에도 역시나 잘 와닿지 않는 부분은 복을 비는 기도였다. 엄마를 따라 절에 가면 촛불도 밝히고 소원도 적어내고 한 적은 많았지만 기도를 해보면서도 '이게 되겠나.' 하는 회의감이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식이 좋은 대학을 가기를 기도한다면 모두의 기도가 성공할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맞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 믿음으로서의 종교는 인연이 없었지만 진리로서의 부분은 인연이 닿았다.

한창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인생의 고민이 많던 시절, 정말 이렇게 정해지는 대로 사는 삶 밖에 없을까 생각했다. 그러니 이런 부분들을 먼저 고민한 선구자가 있다는 건 반갑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이 어떻게 하면 괴롭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 수는 없을까?'를 깊이 고민한 수행자이자 혁명가가 있었다. 그가 얘기하는 부분들은 논리적으로도 딱 맞아떨어지는 부분들이어서 자세히 뜯어보면 나에겐 더욱 명쾌하게 다가왔다.

현재 내가 괴로움이 있다면 분명히 괴로움의 원인이 있을 것이고 원인을 파악하면 그 원인을 해결하면 된다. 원인을 해결한 뒤에는 다시 그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도록 깨어있는다. 무명의 상태에서 벗어나 밝음을 유지하도록 정진하는 것이다.


진리로서의 가르침은 '세상에 공짜는 없단다. 다 자기가 인연 지은 대로, 또 그걸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살면 괴로움 없이 살 수 있다.'는 부분을 가르쳐줬다. 그건 꼭 진리가 아니더라도 요행을 바라지 않는다면 사실상 당연한 얘기다. 항상 인생은 요행을 바라고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고 욕심을 부리는데서 거의 90%의 괴로움이 발생되는 것 같다. 원하는 대로 된다고 결과적으로 꼭 좋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궁극적으로 진리는 다 통한다고 그런 차원으로 성경 말씀을 읽으면 하나님의 말씀도 구구절절 맞는 얘기다.

결국은 어떤 말씀이건 간에 말로만 그칠 때는 그저 말뿐인 공염불이지 아무런 힘이 없다. 그걸 내 삶에서 구현할 수 있을 때 무엇이든지 힘이 생긴다.


내 삶에 적용하고 그렇게 나아가보는 것. 실천하기.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이다.

이때가 되면 전국의 수많은 사찰들, 불자들은 다음 생에 부처가 되길 염원하며 연등을 밝힌다.

부처님에 대해 신뢰가 가는 건 그분은 한 인간이지 신이 아니라는 점이다. 인간 붓다의 삶을 들여다보면 쾌락의 끝으로도 갔다가 고행의 끝으로도 갔다가 이것저것 다 해봤지만 결국 욕구나 욕망에 끌려가는 삶은 괴로울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부처님은 나를 믿으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다는 얘긴 하지 않는다.  


내가 연등불 밝히는 이곳은 모금된 돈을 전액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에게 나눈다. 국내가 될 수도 있고 해외가 될 수도 있다. 한 사람이 밝히는 연등불은 아주 작을지라도 모이면 온 세상을 환히 밝히고도 남는다.

내가 지금 밝히는 이 작은 연등빛이 온 세상을 밝히는 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다니 오늘 하루 그것만으로도 충만한 마음이었다.


앞으로 나와 내 주변을 밝힐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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