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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May 25. 2023

그럴 수 있다.

효과 있는 주문, 소소한 알아차림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있다. 프로젝트 마감 전에 챙겨야 할 것들이 있어 프로젝트 그룹에  함께하는 동료에게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얘기하고 협조를 구했다. 


‘그 부분은 제가 할 일이 아닌데요?’라는 퉁명스럽고 단호한 반응이 돌아왔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당황스러운 마음으로 말했다. 

‘마감전에 이게 핵심인데... 초기 시작했던 사람이 같이 하는 게 좋기도 하고요.’

‘좋은지 안 좋은지는 잘 모르겠고 어쨌든 제가 할 일은 아니고 거기까진 생각 안 했어요. 하기 어려워요.’

말투에도 걸렸지만 이 일이 자기 일이 아니라는 태도에 어처구니없는 마음이 올라왔다. 

상대방은 이미 단호할 만큼 단호해서 여지가 없고 나도 마음이 한껏 걸린 상태였기에 대화를 더 해도 상대 탓만 하게 될 것 같았다. 

‘네, 저희가 생각하는 일에 대한 책임 범위가 달랐나 보네요.’하고 일단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이게 맞아? 어떻게?‘라고 생각하고 있는 순간 쓱 하고 화가 올라왔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이성을 찾았다. 

'그래, 그게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정말 일에 대해 생각하는 범위가 달랐던 건 맞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이 미치자 평정심을 좀 찾을 수 있었다.

불쾌함은 좀 남아있었지만 적어도 화가 나진 않았다.


'어떻게 저렇게 무책임하게 얘기를 하지?'란 생각은 상대를 비난할 만반의 준비를 한 상태다. 

책임감이 없는 사람, 이기적인 사람,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하는 사람, 배려 없는 사람 등등

호불호가 그대로 드러나는 사람은 이래서 같이 하기가 어렵다면서 그 짧은 순간에도 나만의 논리를 좌라락 세워두고 그게 찰떡같이 맞다고 생각하게 된다. 


근데 이건 지극히 내 시각에서 그렇다는 거지 팩트는 아니다. 

물론 이것도 내 생각으로 가늠해 보는 것이긴 하지만 상대의 입장에서는 내가 뜬금없이 생각지도 않았던 일을 하도록 무리한 요구를 하는 사람으로 느낄 수 있다. 

나와 생각이 같지 않고 다를 수 있다는 부분이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만 막상 그런 반응이나 상황을 맞닥뜨리면 감정적으로 썩 기분이 유쾌하진 않다. 그렇다고 그게 내가 화를 낼 일은 아니라는 건 스스로 납득이 간다.



나와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인식했던 내용이 다를 수 있다.

어쨌든 그는 그럴 수 있다.

그래, 그는 정말 그럴 수 있다. 



상대의 생각이 나와 다르고 인식도 다르지만 나는 어떻게 이 부분을 풀어나갈 것인가?

화를 낼 것인가? 설득을 해볼 것인가? 업무 처리에 대해서 좀 더 연구할 것인가? 

내 선택의 영역이다.


감정적 소모가 확 줄어든 그 순간의 알아차림이 좋았다. 하마터면 상대를 미워하고 화내는데 에너지를 쓸뻔했다. 부정적인 감정으로 에너지를 소모하는 대신 상대에 대해 살피고 그 특색을 이해해 봐야 되겠다는 쪽으로 마음을 냈더니 찌꺼기가 많이 남지 않았다. 

다음에 함께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면 그때는 좀 더 꼼꼼히 업무 분장을 해봐야 되겠다는 생각과 호불호가 좀 강한 사람이고 싫어하는 일은 하기 어려운 사람이라면 내가 그걸 수용할 수 있을 때 같이 하면 된다. 

업무를 할지 말지 나한테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경우에도 상대방이 그런 사람이란 걸 이해한 상태에서 시작한다면 괜스레 왜 저러나 시비하는 마음으로 힘들진 않을 테니 그것도 좋은 일이다.



안 하겠다는 동료를 설득해 봤지만 입장이 단호했다. 

더 이상은 시간이 늦어질 것 같아서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하는 마음을 안고 있었으면 아마 굉장히 스트레스받으면서 대응하게 됐을 것 같다.


주문을 외워보자.

'그럴 수 있다.' 

한 번 더 

'그럴 수 있다.'


외우기 전보단 훨씬 가벼워진다. 이거 효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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