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없다고 느꼈다. 몇 주만에 마음을 다시 먹은 것이다. 두 달 전 부산에서 나는 해운대 앞바다를 바라보며 알 수 없는 풍부함을 느꼈다. 이제 무엇인가 써낼 수 있을 것만 같다고. 이 여행을 마치면 그동안 묵혀둔 마음의 응어리도 더 이상 응어리가 아니며 차라리 문장이 될 하나의 원천으로 느껴졌다. 나는 적어도 얼마간은 쓰고 있으며 쓰는 일을 믿으니까, 그 믿음을 새삼 다시 믿었다. 마치 출발 지점에서 몸을 다 푼 마라토너처럼 은근한 긴장에 비장했다. 카페 통창 너머로 해운대 해변에 햇볕이 부서지고 있었다. 나는 가는 눈을 뜨고 그 바다를 바라보며 아주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서울에 올라와 일주일 정도 열심히 썼다. 아침엔 변기에 앉아 핸드폰에 일기를 썼다. 발 디딜 틈 없는 지하철 출근길에도 눈을 감고 오늘 무엇을 쓸까 고민하며 은근히 설렜다. 점심시간에도, 4호선 퇴근길에도, 요가원에 가서 수업을 기다리면서도 적을 수 있는 건 적었다. 대부분은 그 순간의 마음과 생각을 일기로 썼지만 조금씩 남에게 보여줄 법한 내용을 정해 브런치에 올렸다. 요가던 낚시던 나만의 이야기로 간직되던 무언가가 남도 읽을 법한 이야기로 구조화되는 과정은 멋진 일이었다. 그렇게 해야만 나 역시도 내 안에 있던 이야기의 정체를 알게 되기도 했다. 기쁨이었다.
하지만 일상의 힘은 강했다. 보름이 지나자 쓰는 빈도가 반으로 줄어들었다. 한 달이 지나니 쓰기 위해 고민하던 시간은 사라졌다. 출근 시간엔 출근을 했고 퇴근 시간엔 퇴근을 했고 잠이 들 시간엔 잤다. 그럼에도 가끔은 브런치에 들어와 누군가 내 글을 읽었을까 보았다. 별 것도 아닌 말에 조회수가 한두 개씩 있다는 사실은 늘 놀랍고 기뻤다. 물론 정말 읽기는 할까 의심했고 써야 하는데 또 안썼다고 짧은 죄책감을 느꼈다. 끝까지 쓰진 않았다. 그러는 동안 자연스레 내 안의 논리는 정립되었다. 지금 나는 쓰는 것보다 사는 게 우선이라서 그렇다. 때가 되면 또 쓰게 될 거다.
안 쓰겠다는 논리가 단단해질 무렵 휴가를 내고 다시 부산에 갔다. 똑같이 삼 일을 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예전에 부산에서 느꼈던 힘을 다시 얻고 싶어서 가지 않았을까 싶다. 그때처럼 아침엔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려주는 카페에 갔고 통창 너머로 해운대 해변을 보았다. 오후엔 광안리 두두디북스에 가서 책을 샀다. 거기서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를 사서 다 읽고 이 책을 안 만났으면 어땠을까 서늘하기도 했는데 그날은 가슴에 딱 꽂히는 책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백 년 동안의 고독을 골랐으니 만족했다. 저녁이 되면 달맞이 언덕에 있는 엘피 바 백석으로 갔다. 이제는 형님이라 부를 수 있는 사장님이 맞아주었다. 멍구도 나를 기억하는진 모르지만 분명 맞아주었다. 나는 한 달 전에도 그랬듯이 에델바이스 생맥주를 먹고 글렌드로냑을 한잔 받아 마시고 언덕길을 따라 야경을 바라보며 걸었다. 숙소에 가서 잤다.
마지막 날도 해운대가 보이는 그 카페로 갔다. 여섯 번째 방문이니 얼굴도 텄다. 여기서 마시기엔 에티오피아 예가체프가 제일 낫다는 것도 알았다. 커피머신 뒤로는 여전히 햇볕과 파도가 뒤섞여 눈이 부셨다. 그 광경을 똑같이 바라보며 이렇게 적었다. 이제 쓰지 않겠다. 마음 어딘가 이랬다. 겨우 쓰는 일에 기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써야 해서 쓴다면 아무 의미 없다. 브런치에 올린 몇 가지는 대부분 거짓말로 보이고 필요 이상으로 발가벗겨진 듯 해 부끄러웠다. 글이라곤 내면 어딘가를 아주 빠른 속도로 재미있어 보이게 치장한 것뿐이다. 러셀의 말을 떠올렸다. 쓰지 마라. 오히려 쓰지 않기 위해 노력해라. 뭐 실제로 한말은 조금 다르지만 아무튼 같은 취지다. 세상으로 나가서 해적도 되어보고 보르네오의 왕도 되어보라. 나는 그 말로 쓰지 않기를 완벽히 정당화했다.
나름의 다짐이었으니 실제로 쓰지 않을 수 있었다. 서울로 올라오자 회사에선 업무가 밀려왔다. 이제 오 개월 차였다. 일에 적응하고 익숙해지자 비로소 파도가 덮치기 시작했다. 새로운 책임이 등장했고 처음 본 순간에도 베테랑처럼 판단해야 했다. 아니 그래야 한다고 느꼈다. 그 과정을 도와주는 이는 딱히 없었다. 아니 없다고 느꼈다. 무엇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가장 괴로웠다. 회사의 일을 사랑하는 이가 얼마나 있겠냐만은 내가 아는 나는 싫어하는 일을 특별히 더 지겨워하는 사람이었다. 그런사람이 그 일을 하루 종일 생각했다. 알람에 눈을 뜨고 잠이 들 때까지 건설현장의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일을 하는 꿈을 꿨다. 꿈에 겨우 깨서 지하철 타러 가는 출근은 괴로웠다.
늘 그렇듯 모닝을 끌고 현장으로 가고 있었다. 한 시간 반 가량 운전을 하면서 팟캐스트를 들었다. 나는 운전을 할 때 재밌는 팟캐스트 에피소드를 고르는 것을 하루 중 꽤 중요한 행복으로 여긴다. 그날은 책읽아웃에 김연수 작가가 나온 에피소드를 골랐다. 재밌을 수밖에 없으리라 확신하며 운전 길이 약간은 홀가분해 졌다. 나는 김연수를 딱히 즐겨 읽은 적 없으면서도 내가 신뢰하고 애정 하는 주변인들의 최애 작가라 나도 막연하게 좋아한다. 가끔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아 역시 김연수! 하게 되는데,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아주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됩니다' 라던가. 아무튼 그 작가는 차량 오디오 너머로 '김애란' 작가를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나는 김애란을 말하려고 김연수 얘기를 했다) 그는 계간 문학동네 100호 특별부록에 김애란 작가가 쓴 글이 너무 좋았다고 했다. '그랬다고 적었다'는 제목의 글이라며 한 문장을 읽었다. 귀 기울여 들었다.
얼마 전, 종합병원에 갔다 간호사 분 바지 아래 드러난 발목 위 문신을 봤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그날 그런 것을 보았다고 적었다. -김애란
차창엔 비가 내리는 듯 마는 듯했다. 불규칙한 빗방울에 와이퍼 속도를 조절하다가 다시 껐다. 그때 그 문장이 들렸다. '발목 위 문신을 봤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그날 그런 것을 보았다고 적었다.' 나는 먹구름이 얼마나 꼈는지 차창 쪽으로 고개를 빼 하늘을 살폈다. 그 순간에 오늘 무엇인가 다시 쓸 수 있겠다는 실감을 얻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이든 꽤 쉽게 써낼지도 모르며, 쓰는 일은 늘 그래왔듯 아무 소용도 없는 일이기에, 같은 이유로 더욱 쓰게 되리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의미 없으니 쓰지 않겠다는 다짐도, 이제 의미를 만들 수 있으니 쓰겠다는 다짐도 아니었다. 의미따위야말로 글쓰기 앞에서 아무 의미 없는 것이다.
퇴근 후 요가원에 가 9시 수업을 기다리며 에버노트를 켰다. 마지막 일기엔 이렇게 적혀있었다. 쓰지 않겠다. 그리고 브런치를 열어 이렇게 이어 적었다. 쓰지 않겠다고 적었다. 부산에 갔었다. 열심히 썼었다. 오래가지 못했고 다시 부산에 갔다. 돌아온 일상은 힘들었다. 팟캐스트를 들었다. 무언가 다시 쓰게 되리라고 적었다. 쓰지 않겠다고 적었다고 적었다. 사실 '글을 쓰지 마라'라고 말하던 러셀의 말은 이렇게 끝난다.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시기에 도달하면 글을 쓰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이다'
이 깟 글쯤이야 앞뒤 말 맞지 않더라도, 아무런 의미를 만들어내지 못하더라도 나에겐 아무 상관없다. 시간이 오면 나는 또 아무것도 적지 않는 일상을 보낼 테고 그러다 쓰는 시간이 오면 그랬었다고 적을 뿐이겠지. 분명히 그때마다 나는 조금 더 쓰는 사람에 가까워져 있을 테고 쓰기 전으로 되돌릴 수 없는 만큼의 의미를 어쩔 수 없이 가지게 될 거다. 김애란이든 김연수든 러셀이든, 누구의 말대로 건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나도 모르게 되어있을 거란 확신이 있다면 지금은 아무런 의미를 좇지 않아도 좋다.
다만 내가 쓸 수 있는 사람이란 사실에 기대 건넌 시절이 있다. 버틴 시간이 있다. 최근 어느 분이 무척 유쾌하고 생생하게 쓴 나훈아 콘서트 관람 후기를 읽다, 관객 연령대가 높은 공연장에서는 자막을 크게 쓴다는 걸 알았다. 그러곤 세상엔 내가 모르는 게 얼마나 많은지 새삼 깨달았다. 삶의 세목이 일러주는 사실의 무게를 실감했다. 그러다 어느 날엔 그저 바람에 출렁이는 나무가 좋았다고, 봄볕과 가을볕은 기울기나 농도가 다르다고 적었다.
계간 문학동네 100호 특별부록, 김애란 <그랬다고 적었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