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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덩구 Dec 01. 2021

솔직하고 싶다

<노르웨이의 숲>과 요즘 하고있는 일

뭐라도 적어야겠어서 메모를 뒤적거리다 여기서 멈췄다.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한 대목이다. 


솔직하게 말하도록 해. 그게 제일 좋은 거야 (...) 상처를 준다 해도, 그게 제일 좋아. (...) 그러니까 자기 역시 뭐든 솔직하게 말해야 돼. 여기에서는. 밖에서는 사람들이 아무것도 솔직하게 말하지 않잖아?


그 사람 눈을 뚫어지게 보았다. 눈빛으로 그의 진실됨을 판단해야 했다. 눈을 보면 사람을 볼 수 있다는 말을 어느 정도는 신뢰하고 살았다. 나는 가끔 눈빛을 뚫어지게 쳐다봄으로써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하고 내 메시지도 전달하는 습관이 있다. 사랑을 할 때, 당신이 진심으로 좋습니다. 보고를 하거나 지시받을 때, 당신의 말에 동의하며 새겨듣고 있습니다. 대결을 할 때, 허튼소리 하나 보자. 맨 후자였다.


판단은 쉽지 않았다. 내 짧은 안목은 분명 그의 눈빛이 진실되다고 말하고 있었다. 스스로에게 흔들리는 눈빛이 아니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의 말과 행동을 미루어 보았을 때 그런 눈빛이 나왔으면 안 됐다. 흔들리고 신념이 부족한 눈이어야만 앞 뒤가 맞았다. 사람들은 그를 장사꾼, 사기꾼이라고 했다. 내 믿음상 사기꾼은 그런 눈을 할 수없는데.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을 믿었습니다" 이어서 말했다.

"중간부터 보인 당신의 행동에 실망했습니다. 그건 거짓입니다"

그는 대답했다.

"제가 뭘요? 당신이 잘못 평가한 거죠. 저는 처음부터 옳았고 바뀐 게 없어요"


사람들은 그가 정도를 걷는 척 사기를 친다고 했다. 다른 사람이 그렇게 말할 때도 나는 그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일말의 기대를 가졌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해야만 바뀝니다" 나는 그 말이 반가웠고 진실일까 눈빛을 쳐다봤다. 그때 분명 거짓은 아니라 판단했다. 하지만 그는 시간이 지나자 은밀한 술수와 상술을 내게 전달했고 나는 그때마다 처세하며 의중이 뭘까 고민하고 시간을 넘기느라 애썼다. 시간이 지나 다시 그의 눈을 깊게 바라본 날, 나는 새로운 결론을 내리게 됐다. 눈빛이 진실을 보장하진 않는구나. 아니 사람 보는 눈이 없었을 수도 있다. 내가 어려서 몰랐다고 해야한다. 솔직하게 대했던 말들이 수치스러웠다. 동의합니다. 맞습니다. 도와드리겠습니다. 실망하고 섬뜩하고 억울하고 짜증 났다. 


<노르웨이의 숲> 저 문장에 밑줄을 칠 때 나는 반가워했다. 내가 평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솔직한 게 제일 좋은 거다. 모든 문제가 어그러지더라도 솔직했다면 결국엔 이긴다. 아니 져도 된다. 그러니까 너나 나의 상처 이전에 내 감정에 솔직하겠다. 상대방에게도 그거면 되잖나. 아픈 애인을 만나러 요양원에 온 와타나베에게 레이코가 말했다. '애써 도우려 하지 말고 뭐든 솔직히 말하라'라고. '그게 여기 방식이니까' '감정을 격앙시킨다 해도 긴 안목으로 봐서 그게 제일 좋'다고, '밖에서는 사람들이 아무것도 솔직하게 말하지 않잖아?' 와타나베의 애인 나오코는 또 이렇게 말했다. '나에 대한 네 호의를 느끼고 그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그런 기분을 솔직히 네게 전할 따름이야. 아마도 나는 그런 호의가 절실히 필요해' 이어서 말한다. '부담스럽다면 사과할게', '나는 더 불완전한 인간이거든' 


솔직히 네게 전할 따름이야. 호의가 필요해. 사과할게. 나는 불완전하거든. 이렇게 솔직할 수 있을까? 적고 나니 내가 이 소설이 좋았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아프되 솔직한 사람들의 이야기. 남들보다 솔직하기 어려운 조건을 가지고도 진실을 믿는 사람들. 상실의 시대에 투명한 사람들. 밑줄쳐둔 문장을 다시 보다가 지금 나를 생각건대 여러모로 쉽지 않다. 솔직하면 이기리란 믿음엔 변함이 없느냐. 저기 와타나베 나오코 레이코 미도리 사이로 쏙 들어가 대답을 피하고 싶다.


나는 지금 솔직하면 잡아 먹힐 판에 있다. 적당히 처세할 줄 알아야 내 원칙을 지킬 수 있다. 내일은 거짓말을 할 생각이다. 당신에게 잘 부탁한다고. 우리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때에 따라선 이렇게 말할 것이다. 협조해주셔야 한다고. 어려우면 도와드리겠다고. 그러곤 근거, 이행, 지시, 조치와 같은 단어가 뒤섞인 생활을 할 거다. 그때마다 부릅뜬 내 눈은 어떨까. 아직은 흔들렸으면 좋겠다. 솔직하지 않은 말을 하고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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