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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덩구 Mar 29. 2022

김연수를 좋아해

김연수 <지지 않는다는 말>

사실 김연수를 읽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누군가 김연수를 얘기하면  맞장구쳤다. 그를 좋아하는  대꾸하게 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가 좋긴하다. 읽어본  없다면서 어떻게 좋아한다는 거야?라고 물으면 나도 머리를 긁적일 뿐인데, 이렇게 말할  있겠다. 내가 좋아하던 사람들이 전부 김연수 좋아하더라. 아니, 김연수 좋아한다고 하던 사람들 전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더라. 아마 그덕에 스스로 김연수를 좋아하는  알고 팟캐스트를 고르다가도  이름이 적혀있으면 먼저 눌러서 들었다. 그에게 느낀 묘한 친밀감이 타당한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존재는 한다.  읽어본 적은 없어도 목소리 들어본 적은 있으니, 아는 척해도 되나 싶기도 하고.


처음 김연수를 알게   스물세  봄이었다. 여행 중이었다. 강진에서 만난 사람들과 마지막 여행코스를 함께하기로 했다. 마지막 여행코스란, 강진에서해남 땅끝마을까지 하루 정도를 걸어가는 일이이었다. 우리는 한옥 툇마루에서 새벽까지 소주와 차를 마시다가 내일 특별히  일도 없으니 같이 걷기로 마음을 모았다. 호스트 나, 한달살이 하던 수염많은 , . 셋은 동이 트자 해남까지 이어지는 아스팔트 길을 걸었다. 내가 김연수를 처음 기억하는 풍경은 바로  순간이다. 한없이 넓은  사이에 길게 뻗어있는 국도. 약간의 언덕길로 햇볕이 뿌옇고 도로  바닥은 조금 뜨겁던 그때. 앞서 걷던 누군가가 자기는 김연수가 좋다고 고백했고, 옆에 다른 누군가가 반색하며 자기도 김연수를 엄청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나는  뒤에서 누구예요? 김현수? 김연수? 남자예요 여자예요?라고 물었다. 우리는  길을 느리게 걸으며 김연수에 관한 느린 대화를 했다. 이런 말도 기억이 난다. “차라리 잘생겼으면 어땠을까요?” “에이, 김연수 정도면 엄청 잘생겼지!” 나는 뒤에서 네이버 얼굴을 검색해보았다.   모두 맞는 말 같았다.


 이후로 책방에 때마다 김연수라는 이름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종달리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소심한 책방 자주 들렀다. 책방 입구 왼쪽 방향 모서리 아래 배꼽쯤 되는 위치에 그의  서너 권이 꼽혀있. 아마 거기서  애인에게 선물할 책을 골랐었다. <청춘의 문장들+>이라는 산문집이었다. 막연하게 저자 이름을 신뢰해 버린 바람에 깊은 생각 없이 책을 사버렸던 기억이 난다. ' 사람이  책이라면 그녀에게 찰떡일 것이다 읽어본  없지만 아무튼 그렇다'까. 그때 나는 카운터를 보고 있던 (지금은  친한데) 삼호에게   읽어보셨냐, 괜찮냐라고 물었다.  기억에 요정삼호랑 나눈 거의  화다. 나중에 알게됐지만 삼호는 김연수를 정말 좋아한다. 내가  물어본 것이다. 녀의 대답은 이랬다. 솔직히 별로였어요. 이전 판은 너무 좋았는데요. 이번판은 그녀의 어떤 구체적 기대에 들지 않았다고 실망을 말했다. 대답은  책을 연인에게 선물해도 될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토록 구체적인 설명이 즉석에서 덧붙을 사람이라면 아무 책이나 사서 선물해줘도 되지 않겠나. 삼호는 선물한다고 하자 종이 달력으로 감싸 포장을 해주고 끈을 묶어 연필 하나를 꽂아서  선물답게 만들어주었다.


몇년 뒤 그 책을 포장해주던 삼호와 친해져서 술을 마시고 있다가 또 김연수 얘기가 나왔다. 술을 마실 때라 그런지 구체적인 정황은 기억나진 않는다. 꽤 선선했는데 겨울은 아닌 밤으로 기억한다. 아무튼 삼호가 이런 말을 했다. 김연수 <지지 않는다는 말>이라는 책이 있다. 달리기에 관한 책이다. 너무 좋아서 머리맡에 두고 지금도 꺼내 읽는다. 나는 그렇군, 했다. 그렇군. 읽을 작정은 한건 아니고 다음날엔가 소심한 책방에 가서 왼쪽 모서리 구석 어딘가에 있는 <지지 않는다는 말>을 샀다. 그러곤 집에 고이 모셔두었다. 그게 아마 이삼 년 전 일이다.


그리고 다시 얼마  삼호와 술을 먹다가 달리기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술을 마셨을 때라 구체적인 정황은 다시 기억나지 않는다. 달리기에 관한 이야길 했고 하루키에 관한 이야기를  뒤에 김연수에 관한 이야기를 했을 확률이 크다. 나는 그때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너무 좋아서 머리맡에 두고 읽는다는 이야길 했던  같기도 하고 (아닌  같기도 하고). 정확히 기억하는  삼호주변 사람들 중에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은 김연수를  좋아하더라 너도 좋아할 거야라는 말을 했다. 그때 이삼   고이 모셔두었던 <지지 않는다는  > 떠올랐다. 육지로 올라가거든 이제 그만  책을 읽어야겠다. 다시 달리기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아무튼 해남의 아스팔트 언덕과, 네이버의 조금 잘생긴 작가 프로필과, 달력 포장지로 감싸  애인에게 선물했던 기억과, 삼호와 술을 마셨던 선선한 밤과, 하루키와, 종달리의 달리기 같은 것들은 머릿속 김연수를 형성해냈다. 눈사람에 눈으로 살을 붙이듯 만들어낸  중년 남자에 관한 작은 인식은 여전히 읽어본  없음에도 그를  안다고  만큼 튼튼해졌다. 어느  부산에서 만난 친구와 해변에서 맥주를 마시다가 (구체적인 정황은 기억나지 않는다..) 김연수를 좋아한다는 그에게 나는 '애늙은이!'라고 해버렸다. 도대체  그랬을까? 김연수와 그에 대해 무얼 안다고 그런 말을 했던  일까? 정말 모르겠다. 아마 나도 포착 못한  머릿속 서사를 적어내자면 이렇다. 내가 애정 했던 사람들은 모두 김연수가 좋단다. 나는 그들을, 그들은 김연수를  좋아할까. 자기 삶에 닥친 성숙의 길을  대비하지만 여전히 어려워했던 사람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좋아했을 것이다. '김연수를 좋아해'라는 말을 주고 받던 모든 자리는, 각자가 가진 어려움과 곡절을 공유하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곡절을 구구절절 주고받는 대신 좋아하던 작가인 김연수나 떠들고 있었던 것이다. 논밭사이 봄볕 아래서, 어느 서늘한 밤에 술을 마시며. 해운대 해변에서 맥주를 마시며. 그러니 뜬금없는 ' 늙은이' 사실 나를 향한 타박이다. 성숙이 어렵거든 그냥 어리게 살아버리면 안되겠냐고. 누군가 그를 좋아한다고 했을때 너도? 나도! 나는 늙지못하고 애로 남아버리는 것만 같거든.


이사하면서 책장을 정리했다.  권을 버렸다. 읽어볼까 싶은 책들은 특별히 손에 잡히는 자리에 뒀다. 그중 하나가 핑크색 표지의 <지지 않는다는 >이었다. 책을 버리고 정리했다는 사실부터가 나에게 말해준다. '머리맡에 두고 아무 때나 좋아서 가끔 읽을만한 ' 요즘의 나에겐 필요하다고. 하루키 에세이를 읽었을 때의 느낌이랄까. 출근길 지하철에서도 요즘은 책이 읽히지 않았고, 집에 돌아와 읽자니 퇴근 후에 머리를 쓴다는  힘겨운 일이었다. 그런 날들이 하나씩 쌓여가고 있었다. 어딘가 말려가고 있을 즈음, 이년  사둔  책이 이사와 함께 덜컥 손에 집혔다. 지지 않는다는 . 이불을 깔고  장을 읽고 얼마 되지 않아서 나는 연필을 찾아야 했다.  문장에 밑줄을 쳐야 했으니까.


자고 일어났더니 햇살이 많이 기울고 피로도 풀렸기 때문에 우리는 빠른 속도로 일어날 수 있었다. 아마도 그 여름의 절정이 지나갔다면, 그날 낮에, 우리가 낮잠을 잘 때, 우리도 모르게 지나간 게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내 청춘의 절정이 지나갔다면, 그것 역시, 아마도.


나는 여기까지 읽고 머리맡에 두고 읽을 만한 책을 분명하게 만났음을 알았다. 책을 가방 안에 넣지는 않았다. 출근길에 고 싶진 았다. 잠들기 직전에, 핸드폰을 멀리 고 내일을 기다리는 그 때에, 읽을 생각으로 침대 협탁 아래에 꽂아두었다.  작정은  통했다. 나는 밤마다 밑줄을 쳤다. 예를 들면 가장 건강한 마음이란 쉽게 상처받는 마음이다,  이런 문장에.


여전히 김연수의 글은 많이 읽어본 적도 없고,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없지만, 그를 좋아 한다곤 뻔뻔히 말할  있을  같다. 사람 좋아하는 일에 근거 쯤이야 조금 없어도 된다. 누굴 좋아하는 일이 지고 이기는 일도 아닐 터인데 무엇을 구태여 부끄러워하겠나. 아참, 어디서 들으니 그가 요즘은 요가를 다고. 머리서기가   돼서 슬프다는데,  지점에서 나는 확실해진다. 나도 김연수 좋아해. 그를 좋아한다는 고백은  이름이 대신 말해주는  무엇을 좋아한다는 고백일 것이다. 그 무엇. 이렇게말해도 무슨 말인지  사람은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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