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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덩구 Jun 18. 2022

논알콜, 그레이트 헝거

논알콜 맥주를 마실 바엔 하루쯤 취하고 피곤하겠다. 논알콜에 관한 내 첫번째 생각이다. 눈앞의 기호가 몸을 해친다고 옹졸한 타협은 만들고 싶지 않다. 오늘은 마시지 말아야겠다면 콜라를 마시면 되잖나. 오늘은 맥주를 먹어야겠다면 가장 맛있는 맥주를 들이켜고 그 대가로 하루쯤 약간 피곤하면 될 테고. 문제는 하루쯤이 아닌 데에 있다. 거의 매일 저녁 샤워를 하면 맥주가 마시고 싶다. 가볍게 한 캔 하던 습관은 아침마다 전쟁을 만들었다. 살짝 마시면 새벽마다 술이 깸과 동시에 눈을 번쩍 뜨게 된다. 깬 잠을 다시 이루는 일은 꽤 힘겹고 나는 아침마다 알람과 신경전을 치른다. 이무렵 나는 상쾌한 기분으로 출근하겠단 욕구가 아주 강해지고 있을 때이므로, 저녁마다 꾹 참았다. 꾹 참는 느낌은 불쾌하다. 그러다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혹시 목이 마르면 맥주를 마시고 싶은 것 아닐까?


논알콜이 꽤 괜찮은 대안이 될지도 모른다. 그것이 논알콜에 관한 내 두 번째 생각이다. 내가 맥주를 마시고 싶다는 욕구는 착각일지 모른다. 실제로 근래 들어 오백 미리 짜리 맥주를 다 못 마시기 시작했다. 너무 배부르다. 무엇보다 난 저녁에 굉장히 배고픈 상태인데, 배달음식을 시켜먹다 보니 멕시칸이나 초밥 같은 달고 짠 음식을 많이 먹게 된다. 그때 냉장고에 맥주가 있다면 꺼내 마시게 되는데, 술이 먹고 싶다는 생각보단 습관이란 생각이 이르게 된 것이다. 술을 마시고 싶을 때의 나는 분명 벌컥벌컥 남김없이 마시는데, 배부르면 금세 잔을 놔버리는 나를 보고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사실 나는 그저 한두 입 음식과 어울리는 노란 탄산을 먹고 싶은 것이다. 


집 앞에 리쿼샵이 있다는 사실은 인생에 큰 도움이 된다. 파란색 간판에 '세계맥주와 아이스크림'이라고 크게 적은 그 가게는 적립도 해준다. 번호와 이름을 말할 때마다 오늘도 술을 사 갔다는 사실에 조금은 민망한데, 아마 사장님은 내가 누구인지 관심도 없고 모를 것이다. 오늘 그 샵에 가서 이렇게 생각했다. 논알콜이 꽤 괜찮은 대안이 될지도 모른다. 화려하게 벽면 하나를 전부 장식한 맥주 진열장을 지나 맨 왼편 구석으로 가면, 작은 냉장고가 따로 놓여있고 손글씨로 적혀있다. 무알콜 맥주. 칭다오 천팔백 원. 그 뒤로 정말 알콜이 들어있을 것처럼 생긴 차갑고 화려한 디자인에 필기체로 눤알퀄릭이라고 적힌 맥주 아닌 맥주가 가득했다. 세상엔 나처럼 맥주를 마셔야겠지만 알콜은 끊어야겠다고 느낀 사람이 많기에 이런 제품도 어디선가 만들어지고 는 것이다. 술을 끊겠다는 음주자와 그냥 마시자는 음주자의 비율이 논알콜과 알콜 진열장의 차이 정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칭따오 논알콜 삼백 미리 두 개를 골랐다. 


논알콜에 위스키를 타마시면 어떨까. 그것이 논알콜에 관한 내 세 번째 생각이다. 칭따오 논알콜에 약간의 알콜이 들어있다는 사실은 나를 좌절하게 했다. 맥주를 마셨다는 흡족과 알콜이 나를 힘겹게 하지 않으리라는 자신감. 내가 바라는 건 완벽한 속임이었다. 어쩌면 세상에 그런 기만은 없다. 논알콜 칭따오엔 0.05퍼센트의 알콜이 담겨있기에 나는 첫 번째 생각으로 돌아갔다. 논알콜 맥주를 마실 바엔 취하고 하루쯤 피곤하겠다. 맥주가 당기는 금요일,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 맥주 가게에 들르지 못했다. 술을 사자고 다시 나가기도 힘든 노릇이고 이럴 때를 대비해 쟁여둔 두 캔의 칭따오 논알콜은 성에 차지 않는 일이다. 완벽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거든 존재 목적을 바꾸는 게 낫다. 주방에 피엑스에서 사둔 위스키가 있었기에, 나는 그 위스키를 칭따오 논알콜에 타 먹어야 하는지 한참을 고민했다. 식탁에 논알콜과 위스키를 올려두고 생각했다. 골든블루써미트와 칭따오 논알콜. 맛과 도수의 균형을 맞춘 위-맥. 혹시 건강형 폭탄주의 새로운 발견은 아닐까, 하고.


결국 위스키는 타지 않았다. 도로 옷을 입고 나가 맥주 네 캔을 샀다. 믿을맨 하이네켄. 스페인의 추억 에스트렐라. 밀맥주는 칭따오로. 아사히는 오랜만에 먹으니까 맛있었지. 맥주를 고를만한 이유는 무궁무진하다. 네 캔을 냉장고에 넣어놓고 족발을 시킨 뒤 비로소 샤워를 했다. 유튜브로 무한도전을 틀어놓고 소파에 앉아 족발 대자와 맥주를 먹었다. 칭따오 밀맥주. 미지근하고 맛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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