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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행 Dec 27. 2023

[가상 인터뷰] 메텔, 안녕... 소년 시절이여!

: 지구별 여행자를 위한 가상 인터뷰


‘그녀는 그대로일까?’


8-90년대를 살아간 남자라면 가슴 한구석에 영원한 기억으로 남겨져 있는 첫사랑, 아련한 로망의 한 여인이 있습니다.


허리춤까지 내려오는 그녀의 긴 금발 머리는 어떻게 관리를 하는 걸까? 왜 검은 모자와 검은 코트만 입고 지구에서 안드로메다까지 그 멀고도 먼 은하 여행을 하는 걸까?  그녀의 긴 속눈썹 아래 서려있는 우수에 젖은 갈색 눈동자, 단 한 번도 웃어 보이지 않았던 그 사연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녀는 왜 그리 슬픈 얼굴로 우주의 은하들을 떠돌고 있을까?


<은하철도 999>가 증기를 내 품으며 플랫폼으로 천천히 접어듭니다. 열차가 플랫폼에 잠시 머무는 사이 그녀와의 짧은 인터뷰를 전해드립니다. 



나는 청춘의 환영, 젊은이에게 밖에 보이지 않는 시간의 흐름 속을 여행하는 여자






메텔, 오랜만이군요. 지금 어디로 가는 중인가요?

잘 아시겠지만, 꼬마 철이와 함께 지구에서 230만 광년 떨어진 안드로메다로 여행 중이죠. 



유난히 철이를 아끼는 것 같습니다. 철이도 당신을 많이 따르잖아요.

네, 철이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은 사실예요. 2221년 지구인의 모든 꿈은 기계인간이 돼서 영원한 삶을 사는 거죠. 안드로메다에서는 무료로 기계화시켜 주기 때문에 모든 지구인은 은하열차를 타고 안드로메다로 가고 싶어 해요. 철이의 아빠는 은하철도 표를 얻으려 일하다 과로사하고 엄마와 철이는 기계백작에게 사냥당하죠. 이때 제가 철이를 구해줬어요.



철이가 정신이 들었을 때 당신을 엄마로 착각합니다만…

네, 철이 엄마도 상당한 저처럼 미인이셨어요. 사실 엄마의 죽음이 어린 철이에게는 커다란 충격였겠고, 따뜻한 사랑이 그리웠을 철이는 그래서 더 저를 따른 것이 아닐까 싶어요. 저를 위해서라면 목숨 따위는 버려도 좋다는 의지를 보이니까요.'


철이에게 메텔은 엄마의 또 다른 환영일 겁니다



당신은 참 수수께끼의 여성입니다. 미래를 이미 아는 사람처럼 행동해요.(질문을 하자 언뜻 슬픈 그늘이 얼굴에 비칩니다.)

어쩌면 그게 제 본모습일 거예요. 왜 은하철도 999의 승차권을 철이에게 무료로 주고, 대신 함께 안드로메다로 가자고 했는지, 제가 혹시 기계인간은 아닌 건지, 제 부모님은 누구인지, 왜 여러 번 지구와 안드로메다 간의 여행을 자주 했는지, 누구와 여행을 했는지, 우주의 구석구석 작은 행성과 사람들의 비밀과 사연을 다 아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지 등 모든 것이 궁금하시겠죠. 그게 아마 제 또 다른 매력일 수도 있구요.



당신은 30대 초반의 여성이라 상당히 외모에 신경 쓸 법도한데.. 뛰어난 외모에 비해, 의상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아요. 늘 같은 옷만 입잖아요?

사실 제가 검은색을 정말 좋아해요. 샤넬의 색이죠. 지구의 전설적인 패션 디자이너 코코샤넬이 ‘블랙만이 가장 완벽한 옷을 표현할 수 있는 색’이라 말한 것은 옳은 표현이라 생각해요. 검정은 시크함의 상징이랍니다. 그래서 러시안 털모자와 외투, 부츠까지 올블랙인 거죠. 설정상 슬픔의 레퀴엠이라 하겠지만, 그냥 전 검은색이 좋아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있다면?

음… 제가 좀 대식가랍니다. 먹을 것을 정말 좋아하죠. 아마 안드로메다를 가지 않았다면 유튜브 먹방 인플루언서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예요. 재미있게도 철이도 아주 대식가랍니다. 철이만큼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저도 라면은 참 좋아해요. 일반라면뿐 아니라, 컵라면도 좋아하죠. 우주에서 가장 완벽한 음식이라는 철이의 말은 사실이랍니다. 글쎄 싫어하는 것이 있다면, 꿈을 포기한 사람, 타인을 생각지 않는 오만한 사람, 이기적인 사람을 보면 참을 수 없어요. 제가 모든 전투 능력면에서 우주해적 하록선장과 비슷한 수준이라, 그런 사람들을 보면 가차 없이 응징을 하기도 합니다. 



8-90년대 당신에 대한 로망은 대부분, 때때로 당신이 보인 과감한 노출에서였음을 고백해야겠습니다. 

좀 과도하기는 했죠. 인정해요. 전 외투 안에는 비키만 입고 있으니까요… 10살인 철이도 감수성이 예민해지고 호기심이 많이 지는 시기였는데 말이죠. 사실 세계관의 설정과는 달리, 좀 과하게 자극적인 노출로 후킹 했던 것은 사실인걸요. 아무렇지 않게 나체를 드러내서나, 철이와 함께 목욕도 하구요…물론 철이가 워낙 목욕을 싫어하다 보니 선을 넘지는 않죠. 그러한 노출이 지금까지도 저를 로망의 대상으로 기억하게 하는 데에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에  당신과 철이가 은하철도의 다른 노선을 타는 장면은 절대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이별이 소년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때 흘러나온 맨트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소년 시절을 생각나게 합니다. 다시 한번 들려주시겠습니까?


네가 혼자 일어나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을 때
그때가 너와 내가 헤어지게 될 날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어.

...

이제 나는 다른 소년을 미래로 안내하기 위해 새로운 여행을 떠나.
다시는 만날 수 없겠지.
 ...

나는 청춘의 환영, 젊은이에게 밖에 보이지 않는
시간의 흐름 속을 여행하는 여자.

...
메텔이라는 이름이 철이의 추억 속에 남겨진다면,
그걸로 족해, 나는 그걸로 충분해.
...
안녕,
너의 청춘과 함께 여행한 일을 영원히 잊지 않을 거야.
안녕, 나의 철이. 안녕…


안녕 철이, 안녕 메텔, 안녕 은하철도 999, 안녕 소년시절이여




누구에게나 첫사랑이 있습니다. 안녕~! 소년시절이여!

안녕~ 2023!




이미지출처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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