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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X Dec 20. 2023

[가상 인터뷰] 케빈, 크리스마스엔 나 홀로 집에

: 지구별 여행자를 위한 가상 인터뷰


폭설로 길조차 찾을 수 없습니다. 이 추운 겨울, 이곳까지 인터뷰이를 만나러 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시즌이 시즌인 탓에 이 인물에 대한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예전만큼 큰 관심이 가는 인물은 아니지만, 우리의 추억 속에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으니 저도 오랜만에 설레는 마음으로 그의 시카고 집 앞에 도착을 합니다. ‘그래, 크리스마스에 이 만큼 생각나는 인터뷰이도 드물지’ 현관문을 노크합니다. 헌데 ‘혹시 나를 도둑으로 여기고 뭔가 문제가 생기는 것을 아니겠지?’ 순간 섬뜩한 생각이 스칩니다.


딸깍! 어서 오세요! (휴~ 다행입니다.) 금발에 커다란 파란 눈의 아이, 케빈이 반갑게 저를 맞이해 줍니다. 오늘의 인터뷰 주인공은 다름 아닌, <나 홀로 집에>의 꼬마 친구입니다. 인터뷰를 위해 거실로 가는 길에 수많은 부비트랩과 함정이 있어서 그의 뒤에 바짝 붙어 따라갔습니다.




반가워요. 케빈. 메리 크리스마스! 집에는 혼자인가요?

메리 크리스마스! 네~ 아마 지금쯤 가족들은 프랑스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대서양 어딘가를 날아가고 있을 거예요.



아니, 크리스마스잖아요.

늘상 있는 일이죠. 제가 5남매이거든요. 게다가 큰아빠 프랭크의 가족까지 합치면 15명이다 보니 저 한 명 정도 없어진 것은 알 수 없을 테니까요. 저를 못살게 구는 큰 형과 말다툼이 있었는데, 덕분에 다락방에 갇혀 벌을 받았어요. 그 사이 출발 시간에 쫓겨 정신없이 서두르는 바람에 저를 빼고 온 가족이 여행을 떠나버린 거죠. 이해는 안 되지만 아무튼 그리 됐어요. (좀 어른스럽기도 하고 시크하기도 합니다.)



이 상황에 대해 엄마, 아빠나 가족이 원망스러웠을 법도 합니다만…

사실, 제가 다락방에 갇혀 혼자 있을 때 가족이 없어져버렸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빌었습니다. 아마 그것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나중에 산타클로스 분장을 한 젊은 아르바이트 생에게 가족을 다시 돌려받고 싶다고 소원을 빌었어요.



혼자 있으면 외롭거나 무서울 텐데요. 제가 만일 이 커다란 집에 8살의 나이로 홀로 집에 있다면 견디지 못할 것 같습니다.

글쎄요. 저는 나 홀로 집에 아주 잘 적응하고 즐기고 있거든요.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이 얼마나 많았는데요. 케빈은 자유인 거죠. 가족들이 들으면 좀 서운할 수 있겠지만, 누나와 형들도 없고 잔소리하는 부모님도 없으니 너무 편해요. 보지 못하게 했던 19금 마피아 영화도 맘껏 보고, 형이 몰래 숨겨둔 돈으로 피자도 마음대로 배달시켜 먹으면 그만이죠.



그러고 보니 당신이 욕실에서 스킨로션을 바르던 장면은 정말 인상적입니다. 그때 부른 노래가 뭐였죠?

드리프터즈의 White Christmas입니다. 크리스마스에는 제격이죠! 욕실에서 머리를 빗으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노래를 따라한 거예요. 데오드란트도 뿌렸는데, 세상에 저는 쉐이빙 스킨로션이 그렇게 따가운 것인 줄 처음 알았어요. 태어나 처음으로 쓰디쓴 어른들의 세계를 맛본 거죠.



2인조 빈집털이범을 기억하시나요?

물론이죠. 아마 이름이 해리와 마브일 겁니다. 처음에 경찰로 위장해 우리 집을 방문했었죠. 정확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하기 좀 그렇지만, 좀 순진하기고 하고, 좀 덜 떨어져 보이기도 했어요.



도둑이라 죄질은 나쁘긴 하지만 당신한테 당하는 모습을 보면 좀 안쓰러워 보이기도 합니다.

저도 그 부분은 인정합니다. 비비탄으로 얼굴과 주요 부위를 맞고, 얼려놓은 계단에 미끄러져 골절상을 입고, 2층에서 떨어지는 다리미에 얼굴을 받치기도 하죠. 시뻘겋게 달궈놓은 손잡이에 화상을 입고, 맨발에 유리가 찔리거나 토치로 머리를 다 태워버립니다. 페인트 통에 맞아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게도 했죠. 물론 제가 좀 과잉방어를 한 거지만, 크리스마스잖아요. 아저씨들이 다 용서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해리와 마브에게도 이번 크리스마스가 더없이 따뜻한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정말 궁금한 것은 당신이 어떻게 그런 부비트랩을 다 만들 수 있냐는 겁니다. 따로 교육받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 같은데 말이죠.

제가 활동하던 시기를 잘 보시면 이해하실 겁니다. 저는 맥가이버가 세상을 구하던 때에 태어났어요. 누가 그러던걸요. 그때는 ‘야만의 시대’라구요. 당시에 무슨 유튜브 같은 것을 본 것도 아니고 정말 개인적인 상상으로 생각해 낸 거예요. 해리와 마브가 이렇게 하면, 요렇게 하고, 저렇게 하면 이렇게 하겠다. 개인적으로 연쇄반응을 일으키는 체인리액션 이론을 좋아합니다. (이쯤 되니 제가 두 손 두 발을 다 들게 됩니다.)



늘 크리스마스 하면 당신이 떠 오릅니다. 산타클로스 다음으로 가장 많이 연상되는 인물 같습니다.

더 없는 영광이라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이고, 가족에 대한 소중함, 사랑, 화해가 주요 소재였기 때문이겠죠. 거기에 8살인 제가 나 홀로 집에 남아 때로는 귀엽고 즐겁게, 때론 어른스럽게 행동하는 모습을 좋아했던 것 같군요. 물론 여기에 부비트랩으로 못된 악당들을 응징하는 권선징악이 들어있으니, 크리스마스에 더없이 사랑해 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눈 쌓인 그의 집을 나옵니다.

크리스마스에 눈을 그리워했던 게 언제였더라… 산타클로스에게 소원을 빌어본 게 언제였더라… 눈 덮인 도로 위에 손가락으로 한마디 남깁니다.


Merry Christmas~







이미지 출처 : 20th Century F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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