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발 - 파리행 2023. 12. 29.

: 우리 대치동 대신 파리나 갈까?

by BOX


3번째 파리 여행입니다. 짝꿍과 함께 10일, 나 홀로 한 달, 그리고 이번엔 중3인 딸과 함께 파리에서의 한달살이입니다. 두 번째 파리여행 때 사정이 생겨 홀로 파리에서 한 달을 지냈습니다. 그때의 미안함이 두고두고 남아서인지, 이번 여행은 그 미안함에 대한 부채 청산입니다.


각자 한 달간의 짐을 싸느라 바쁩니다. 슬쩍 쳐다보니 중3 친구의 캐리어 가방 안에 한 달간 읽을 책들이 눈에 띕니다. 카뮈 <페스트>.. 그래 파리로 가니까, <죽은 시인의 사회> 음.. 카르페디엠,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 그래 이 부조리한 교육제도를 전복시키고 겨울 방학을 즐기렴! 제법 TPO가 어울립니다!


헌데…저 아래 <수학>? 문제지? 어쩌면 인생에서 지금이 가장 즐겁고 행복한 시간일 텐데, 무겁고 커다란 문제지를 보고 있자니 슬프고 씁쓸합니다. 대치동 대신 파리를 선택했으니 이 정도는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 걸까? 한참 놀아도 시간이 부족한 나이인데 아이한테도 부모한테도 참 어려운 선택입니다. 특히 소위 강남 8 학군에서 남들 말에 흔들리지 않고 내 가치관대로 살아가려면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합니다.



'여행은 언제나 설렌다.'


새벽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합니다. 어제까지 일상을 살다가 오늘부터는 자유인이 된 듯한 감정이 바로 여행을 떠나는 이유입니다. 출발!




장거리 비행은 언제나 힘이 듭니다.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온몸이 파김치가 되기 일쑤입니다. 더욱이 좁은 좌석에 10시간 넘게 앉아 서비스로 주는 음식과 음료를 새처럼 먹고 마시고 자다 보면 이게 바로 사육이구나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가급적 더 좋은 자리, 편한 자리를 찾는가 봅니다. 퍼스트는 아니더라도 비즈니스 석 정도면 얼마나 멋진 인생일까 싶지만, 통장을 보면 자못 겸손해지게 됩니다. 다행히 항공사마다 약간의 호사를 만들어 놨습니다. 이코노미의 상위버전인데 이름하여 프리미엄 이코노미입니다. 다리를 뻗을 수 있는 레그룸과 의자를 뒤로 젖히는 각도가 일반 이코노미에 비해 제법 넓습니다. 아시아나는 스마티움이라 부르는데 이번 여행은 이 스마티움으로 시작합니다.


울란바토르와 타슈켄트 그 어디 사이를 비행 중… 한참을 온 것 같은데 이제 겨우 2/5 정도 온 셈입니다. 비행 5시간. 여전히 사육의 시간입니다. 앞으로 9시간을 더 가야만 합니다. 예전 같으면 파리까지 12시간이면 족했을 것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며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이래서 국제정세가 중요한가봅니다. 우리는 지구인이니까 말이죠.


그래도 이 얼마나 행운인가! 좌석이 중간중간 비어있어 비즈니스급으로 누워 자는 가족입니다. 뭔가 출발부터 좋은 기운입니다. 비즈니스 클래스가 뭐 별 건가? 이 또한 중3 겨울방학 대치동 학원 대신 파리를 선택한 보상이라면 좋겠습니다.


파리야 기다려!




누구나 여행의 첫날은 서툴다


낯선 땅에 도착해서 이방인이 되면, 모든 것에 서툰 자신과 마주하게 됩니다. 때론 온몸의 신경세포가 곤두서곤 합니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어떻게 가야 할지, 숙소 체크-인은 또 어떻게 해야 할지...짐을 풀고 들뜬 마음에 밖으로 나와 음식점을 하나를 찾아도.. 낯선 거리와 낯선 얼굴, 낯선 언어에 갖 세상에 나온 어린 아이가 되기 마련입니다.


어쩌면 여행의 즐거움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요? 어린 아이는 마냥 세상이 신기합니다. 온갖 호기심에 즐겁고 모든 것에 감탄합니다. 파리에서의 첫날...서툴지만 어린 시선을 하나 얻었습니다.




p.s.

파리는 현재 12월 30일 오전 4시입니다. 방금 깼어요. 시차적응 실패! 이상 파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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