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지앵은 우산을 쓰지 않는다.

: 우리 대치동 대신 파리나 갈까?

by BOX


'비가 오네요'

'네… 괜찮아요. 파리는 비가 올 때 제일 아름다워요.'

'저도 늘 그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녀와 그... 알렉산더 3세 다리에서 우연히 조우합니다

파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 <미드 나잇 인 파리>의 엔딩씬, 센강을 걷던 주인공 길은 생투앙의 골동품 가게에서 일하는 가브리엘과 우연히 다시 만납니다. 그들의 대화 중 비가 내립니다. 개인적으로 파리를 가장 아름답게 그린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파리에 비가 내립니다. 파리를 걷다 보면 파리지앵이 비에 얼마나 관대한지 알게 됩니다. 도로의 포석이 촉촉이 젖을 정도의 비가 내려도 우산을 쓰지 않습니다. 만일 비 오는 파리에서 우산을 보았다면 틀림없이 관광객이거나 노약자일 것입니다.


오늘내일 뉴스에서는 하루 종일 보가 내린다는 예보입니다. 비 오는 파리는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또는 어느 인상주의 화가의 그림처럼 파리를 파리답게 만들어 줍니다. 거리를 나와 어느 곳을 보고 찍어도 아름다운 필터가 씌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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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비가 올때 제일 아름답습니다. 셔터를 마구 눌러도 좋습니다.


생 미셸 광장에서 70번 버스에 올라 르 봉 마르쉐를 갑니다. 이곳 백화점의 식품관은 파리에서 가장 다양하고 많은 식재료로 유명합니다. 여행은 소중하지만 익숙해서 무심하게 된 누군가와 무언가를 다시 돌아보게 합니다. 소중한 사람들이 생각나고 익숙한 환경이 점차 그리워집니다. 추억을 위해, 그들을 위해 조그만 선물을 찾게 됩니다. 그런 이유에서 이곳의 식품관은 제법 좋은 선택입니다.


이곳은 바로 나 같은 주정뱅이의 성소입니다


파리에만 있을 법한 잼이나 과자, 오일, 초콜릿 등을 찾아 하루를 보냅니다. 명품이 아니더라도 소중한 기억의 선물을 찾습니다.


30분 뒤, 집에서 조금 늦게 출발한 중3 딸은 파리의 복잡한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혼자 이곳을 잘도 찾아왔습니다. 세상 쓸데없는 걱정이 자식걱정입니다. 나만 잘하면 그만입니다.





파리는 여전히 비가 옵니다. 르 봉 마르쉐를 나와 메트로 M10을 타고 셰익스 피어 앤 컴퍼니를 찾습니다. 지난번 이곳에서 보아 둔 에코백을 하나 사려 합니다. 제임스 조이스, 헤밍웨이, 거트루드 스타인 등 문학사의 수많은 작가들과 인연이 닿아 있는 이 오래된 서점은 또한 파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 자주 등장을 하곤 합니다.


1층과 2층 좁은 서가가 예전에 비해 조금 넓어졌습니다. 가파른 계단에 올라 선 2층에는 여전히 타자기와 작은 피아노가 비치되어 있습니다. 내부는 넓어졌고, 예전 나를 반겨주던 고양이는 이제 보이지 않습니다. 세월이 지나 첫사랑을 다시 만났을 때 느껴지는 묘한 감정입니다. 다시 만난 기쁨 그리고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변한... 어쩌지 못한 아쉬움의 양가감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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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게 맞이해주던 고양이는 사라졌고 아쉽게도 서점은 커졌습니다.그래도 피아노와 타자기는 여전합니다.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옵니다. 영화 <라라랜드>의 미아와 세바스찬의 테마송입니다. 피아노에 앉은 방문객이 조금은 서툴지만 건반을 연주합니다.


하루종일 내리는 파리의 비, 어느새 훌쩍 자라버린 아이,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그 경계의 야릇한 감정, 우연히 듣게 된 피아노 소리...설레임과 아쉬움... 그리고 뜻밖의 선물. 파리를 여행하는 이유입니다. 오늘도 좋은 선물 하나, 좋은 추억 하나를 기억의 서랍 속에 소중히 간직합니다.



P.S.


지금 새벽입니다. 파리에 다시 눈이 내립니다.

2024년 1월 18일 새벽... 파리에서 BOX 입니다.


책을 한 권 사면 책에 셰익스피어가 그려진 이쁜 스탬프도 찍어줘 추억으로 남기기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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