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대치동 대신 파리나 갈까?
아침에 몽주약국에 들렀습니다. 립밤과 몇 가지 화장품을 삽니다. 누군가의 선물과 기념품을 산다는 것은 여행이 후반부에 접어들었다는 뜻입니다. 마음 한쪽에 조그마한 구멍이 생겼습니다. 작은 구멍 안이 텅 빈 느낌입니다. 기분이 참 묘합니다.
기온이 조금 낮지만 모처럼 파란 하늘이라 좀 걷기로 합니다. 근처 뤽상부르 공원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무심한 듯 노래 한곡을 듣습니다. 모처럼 비춘 햇살에 눈두덩이가 간질간질 거립니다. 차 한잔이 마시고 싶어 졌습니다.
파리에는 카페가 참 많습니다. 파리를 거닐다 보면 수많은 카페를 만나게 되고 그곳이 조금만 오래된 카페라면 그 카페와 얽힌 무수한 사연을 만나게 됩니다. 여행자에게는 잠깐이 쉼을, 파리지앵에게는 일상의 여유를 즐기게 해주는 곳이 카페입니다. 이곳 생제르맹 데 퓌레와 몽파르나스 근처에도 이름난 카페가 제법 많습니다.
20세기 초반 아주 핫한 지역으로 떠오른 이곳 몽파르나스 지역에 집중적으로 카페가 들어섭니다. <라 로통드>, <르 셀렉트>, <르 돔>, <라 쿠폴> 등의 카페에는 피카소, 모딜리아니, 장콕토, 막스 자코브, 디에고 리베라, 페기 구겐하임, 발터 벤야민, 사무엘 베케트, 고갱, 칸딘스키, 레닌 등 수많은 명사들이 이 카페, 저 카페를 몰려다녔습니다. 물론 헤밍웨이도 그들 중 한 사람입니다.
뤽상부르 공원에서 생제르맹 데 퓌레 성당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레 뒤 마고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기로 합니다. 레 뒤 마고는 <좁은문>의 앙드레 지드, 브르통, 사르트르의 단골 카페였다고 합니다. 사르트르가 자주 앉던 의자와 테이블에 이름이 새겨져 있다고 했는데 이미 내부에 사람이 차 있어 눈으로 보지 못했습니다. 또 다른 명사로 피카소, 카뮈, 생텍쥐페리 그리고 역시나 빠지지 않는 헤밍웨이가 자주 이 카페에 들렀습니다. 오늘은 나도 헤밍웨이가 되어 카페 테이블에 앉습니다.
바로 옆 카페 드 플로르도 역시나 유명한 카페입니다. 피카소, 사르트르와 연인 보부아르, 앙드레 말로, 드랭, 카뮈, 에디트 피아프, 알랭 드롱, 칼 라거펠트, 아르마니 등 수많은 사람들이 카페를 찾았습니다.
여행으로부터 특별해지기! 자기가 좋아하는 누군가의 흔적을 좇고 추적해 보는 것도 아주 특별한 자신만의 여행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TIP.
이외에 대표적 카페를 둘러보면
카페 <르 프로코프 Le Procope> 는 파리 6구 생제르맹 데 프레 Saint-Germain-des-Prés 지역에 1686년 오픈한 파리에서 제일 오래된 카페 중 하나입니다. 오래된 카페답게 역사적 인물들의 흔적이 가득합니다. 프랑스 혁명가와 철학자들의 아지트로도 유명한데 바로 볼테르, 루소, 디드로, 달랑베르, 나폴레옹, 쇼팽, 조르주 상드, 프랭클린, 폴 베를렌 그리고 전 세계를 누비고 다닌 헤밍웨이가 즐겨 찾은 카페입니다. 아직도 볼테르가 사용한 책상과 나폴레옹의 모자가 방문객을 반깁니다.
파리엔 유서 깊지 않은 카페가 없습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배경인 파리 오페라 극장 앞 <카페 드 라 페 Café de la Paix>도 마찬가지입니다. 1862년, 나폴레옹 3세 시절 오픈한 이 카페는 극장 바로 앞이다 보니 언제나 셀럽이 바글바글 했습니다. 공연이 끝나면 이곳으로 모인 배우들과 관객들이 뒤섞여 부어라 마셔라 한 거죠. 파리의 카페는 커피는 물론, 와인과 각종 술, 음식과 음악이 있는 라운지 바입니다. 빅토르 위고, 차이코프스키, 플로베르, 오스카 와일드, 에밀졸라, 모파상이 즐겨 찾았습니다. 20세기 들어서는 이브 몽탕, 로만폴란스키의 단골 카페예요. 아! 유명한 곳이란 곳엔 빠지지 않는 헤밍웨이도 물론입니다.
조그마한 여행 수첩을 펼치고 헤밍웨이가 되어 오늘의 파리를 써내려갑니다. 더 없이 기분이 좋아집니다.
P.S.
오후에는 바토무슈를 타고 에펠탑을 보았습니다.
누가 그랬던가요? 에펠탑이 흉물이라고? 모파상도 지금쯤은 그 말을 후회할 것 같습니다.
2024년 1월 17일 센강에서 파리 특파원 BOX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