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대치동 대신 파리나 갈까?
파리지앵은 시크하다 합니다. 타인의 평가보다는 자신의 가치관에 충실합니다. 남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취향을 지켜나갑니다. 남들이 뭐라 하든 나만의 개성을 지키면 그만입니다. 신경 쓰지 않습니다. 타인을 대하는 태도 또한 그렇습니다. 자신에 대한 삶의 태도처럼 타인의 취향은 타인의 취향으로 남겨둡니다. 너는 너, 나는 나입니다. 그러다 보니 각자 다른 색을 지닙니다. 파리지앵이 그토록 옷을 잘 입는 이유입니다.
파리의 겨울은 낮은 구름과 잦은 비로 유명합니다. 온전히 맑은 날이 거의 없습니다.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다시 낮게 구름이 끼고 비가 내립니다. 그러다 잠깐 무심한 듯 파란 하늘을 내어줍니다. 무심하고 시크합니다. 파리지앵의 시크함은 이런 파리의 겨울 탓이 틀림없습니다. 그렇습니다. 파리의 겨울은 시크함을 만들고 그 시크함은 패션을 완성합니다.
올해 파리의 겨울 기온은 영하 -1에서 영상 3~4도에 머뭅니다. 뉴스를 보니 2018년도 이후 가장 추운 겨울이라고 합니다. 공교롭게도 18년도 겨울과 올해 겨울을 파리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례적인 추위에 몇 년 만에 처음 파리에 눈이 내렸습니다. 그래도 체감온도 -15도 이상의 한겨울을 알고 있는 나에게는 ‘뭐 좀 춥네’ 정도의 날씨입니다.
오늘 모처럼 파리가 파란 하늘을 내줬습니다. 생토노레가를 거닙니다. 이곳에서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 궁까지는 청담동 거리처럼 명품 매장들이 거리 양옆을 빽빽하게 차지하고 있습니다. 대신 들어가기 무섭게 생긴 청담동 플래그쉽 매장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평범한 매장의 입구가 마음을 한결 편하게 해 줍니다. 그리고 유혹의 손짓을 합니다.
뭐 해! 무슈! 이리 와 봐요~~~ 이거 멋지죠?
봉쥬~마드모아젤! 당신을 여왕으로 만들어줄게요!
이 가방이 영혼을 구원해 줄 거라고요~~~ 실부프레~
경주마처럼 귀를 막고 앞만 보고 걸어야만 이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리 와 보렴! 어서 와! 빨리 와!' 현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지금 귀를 막고, 눈을 가리고 앞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아차! 유혹을 피하려다 끝판왕에 와 버립니다. 방동광장입니다.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을 설계한 망사르가 이 방돔 광장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원래 저위 기념탑에는 루이 14세가 세워졌다가 프랑스혁명 때 파괴됩니다. 이후 나폴레옹이 오스텔리츠 전투에서 승리하고 루이 14세 대신 저 자릴 차지하게 되죠.
나... 이겼잖아...
그러니 개선문도.. 저쪽... 그래 저쪽에 세우고...
전투에서 줍줍 한... 133개 대포 그거 녹여서 기념탑 만들고...
로마에 그 폼나는 기념탑 있잖아... 트라야누스.... 그거 따라쟁이로 만들라구! 오케이~~~???!!!
혁명의 도시 파리. 이곳 광장도 혁명의 역사가 가득합니다. 나폴레옹이 서 있는 기념탑 건너편으로 코코샤넬이 몇십 년간 살았던 리츠 호텔이 있습니다. 아마 그녀는 저곳 스위트룸에서 한평생 방돔 광장을 내려다봤을 겁니다. 영국의 다이에나 황태자비가 마지막으로 묵었던 호텔이기도 합니다. 이 앞에 있던 수많은 파파라치를 피해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교통사고로 그만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 화려함만큼 쓸쓸함이 배어있는 장소가 바로 이곳 방돔 광장입니다.
광장 주변은 전 세계 최고의 럭셔리 브랜드 매장으로 뱅그르르 둘러싸여 있습니다. 브레게, 디올, 발렌티노, 쇼메, 구찌, 피아제, 바쉐론, 까르띠에, 불가리, 롤렉스 그리고 샤넬. 샤넬 no 5, 그 향수병의 디자인도 이곳 방돔광장을 모티브로 만들어졌습니다.
사실 관광객을 제외하고 눈에 띄게 명품을 휘감고 다니는 파리지앵의 모습을 아직까지 보지 못했습니다. 명품을 잘 모르는 탓이겠지만, 가장 멋진 패셔니스타들은 오히려 생토노레가보다는 마레의 빈티지샵에서 많이 만났습니다.
파란 파리의 하늘 덕에 유혹을 잘 참고 견딘 하루입니다.
P.S.
빈티지 샵을 뒤지다 보면 운 좋게 명품을 발견하게 됩니다. 물론 그것 역시 비싸기는 매한가지입니다. 명품은 역시 명품입니다.
2024년 1월 16일 파리 특파원 BOX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