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3딸이 오아시스의 LP를 삽니다. 나는 실망입니다.

: 우리 대치동 대신 파리나 갈까?

by BOX


런던 여행은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사실 첫 번째는 런던에 실망했습니다.


서울과 다를 바 없는 대도시, 현대적 건물들을 보며 여행이 가져다주는 낯섦이라는 설렘을 전혀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템즈강 건너 송파구 즈음 있는 더 샤드를 보면 이곳이 서울인지, 런던인지 별반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서울인가? 런던인가?

더욱이 런던은 미각을 잃었습니다. 런던의 가장 맛있는 음식은 첫째도 피시 앤 칩스, 둘째도 피시 앤 칩스, 셋째 역시 피이 앤 칩스입니다. 제 아무리 유명한 피시앤칩스 맛집이더라도 만일 바로 옆에 동태전 집을 하나 차린다면 한 달 안에 그 가게 문을 닫게 만들 수도 있을 겁니다. 런던에 동태전집을 차려하만 하는 이유입니다.


게다가 높은 물가를 보면 더 뜨악합니다. 마라탕, 계란볶음밥, 야채와 음료를 시키니 총 70파운드, 약 12만 원입니다. 고든램지 버거의 높은 가격이 정말 맛있어서가 아니라 런던 물가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구나 싶습니다. 너그러운 마음에 이제는 다 이해됩니다. 그랬구나! 그래서 그랬던 것이구나!





실망만 있는 건 아닙니다. 특히 박물관과 미술관 관람이 그렇습니다. 파리에서라면 무조건 기본 15유로, 2만 원으로 시작하는 관람료가 이곳에서는 무료입니다. 관대합니다. 무료라 해서 절대 무시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교과서나 인문도서에서 보았을 수많은 명작들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제는 영국박물관, 오늘은 내셔널 갤러리는 방문합니다.


내셔널 갤러리는 꼭 가봐야 합니다.


미술관마다 대표적으로 내세우는 자신의 작품들이 있습니다. 바티칸 박물관은 미켈란젤로의 천장화, 루브르는 다빈치의 모나리자,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 그렇습니다. 소위 미술관의 아이돌입니다. 사람이 몰립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셔널 갤러리의 아이돌은 인상주의 관에 있는 고흐의 <해바라기>입니다. 더욱 매력이라면 유럽 다른 미술관보다는 훨씬 가까이 작품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티칸처럼 말도 못 하고 사진도 찍지 못하는 것도, 루브르처럼 수십 분 미식축구 하듯 사람을 헤치고 들어가 겨우 5m 밖에서 사진 한 장 남기는 수준도 결코 아닙니다. 런던이 주는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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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 <엠마오의 식사>와 아이돌 <해바라기>는 50cm 앞에서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카라바조를 무척 좋아합니다. 여행을 한다면 꼭 묻고 찾아서라도 그의 작품을 봅니다. 이곳 내셔널 갤러리에도 그의 작품이 총 3점 있습니다. 그중 한 작품은 얼마 전 한국에서 전시된 <뱀에 물린 소년>입니다. <엠마오의 저녁식사>을 한참을 바라봅니다. 보고 있자니 기분이 참 좋습니다. 카라바조! 바로크 미술의 시대를 연 대가입니다.


잠깐 카라바조의 팬으로 한마디 하자면, 에헴! 그의 작품은 어둠과 빛 사이에 아주 극적인, 드라마틱한 연출이 유명합니다. 그냥 서 있거나 앉아 있는 목각인형 같은 그림이 아니라, 바로 눈앞에서 일이 벌어지려는 그 찰나의 순간을 관람객에게 전해줍니다. <엠마오의 저녁식사>를 보자면, 부활한 예수가 엠마오에서 저녁 식사를 하려 해요... 부활을 모르던 제자들과 자리에 앉아 있던 예수가 '내가 예수야~' 하자, '옴마나!' 순간 놀라움에 한 사람은 두 팔을 벌리고, 한 사람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려는 그 찰나를 담았습니다. 어때요? 좀 특별하지 않나요? 그의 작품은 특히 빛이 한쪽에서 들어와 더 극적으로 연출되는데, 마치 인스타그램 필터를 강하게 입힌 것 같아요. 즉, 16세기의 인스타그램 사진이라 보면 됩니다. 이런 스타일을 테네브리즘 기법이라 하는데, 카라바조가 최초였어요! 이게 끝이 아니랍니다. 워낙 그의 작품이 대단해서 그를 추종하는 세력이 생기고 후대 화가들에게 가장 강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어마 어마한 화가들인데 그 계보가 어찌 되는가 하면, 네덜란드의 대표화가 빛의 렘브란트, 스페인의 대표화가 벨라스케스, 프랑스의 대표화가 들라크루아... 이 정도면 후대의 모든 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최고의 화가 미켈란젤로의 원래 이름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입니다. 카라바조 역시 미켈란젤로였어요. 미켈란젤로 카라바조! 두 명의 천재 미켈란젤로가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상징입니다. 게다가 두 사람 모두 성격이 아주 괴팍했습니다. 아! 카라바조 이야기는 두고두고 이야기해도 시간이 모자라겠습니다.




IMG_0020.HEIC 런던의 또 다른 매력, 캠든마켓


런던의 또 다른 매력은 지역 마켓입니다. 영화 <노팅힐>에 배경인 포토벨로마켓이나 우리 남대문 시장 같은 캠든마켓을 가면 꼭 무언가를 사지 않더라도 그 재미있습니다. 주말이라 그런지 캠든마켓은 발 디딜 틈 없이 사람이 가득합니다. 수많은 기념품, 귀엽고 아기자기한 액세서리, 인테리어 소품, 잡화, 책, 길거리 음식점이 가득해서 보고 먹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나머지 하루를 즐깁니다.


영국 그룹의 앨범은 영국에서 사야 제맛입니다. 오아시스의 열혈팬인 중3딸은 그룹 오아시스의 LP를 삽니다. 짝꿍은 인테리어 소품을 삽니다. 나는 원했던 마마스건의 LP는 결국 찾지 못합니다. 나만 오후를 즐기지 못했습니다. 다시 런던에 실망하고야 말았습니다.


P.S.

오늘 파리로 돌아갑니다. 유로스타를 타기 전 주변 LP가게를 뒤져볼 생각입니다.

만일 그때도 구하지 못한다면, 런던을 다시 여행할 운명이겠죠.


2024년 1월 14일 런던 특파원 BOX 입니다.


중3딸은 그룹 오아시스의 LP를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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