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대치동 대신 파리나 갈까?
런던은 대도시입니다. 크기로 치면 서울의 2.5배니 즉흥적으로 런던에 온 나와 같은 사람이 런던을 알아가기에 5일은 턱없이 짧은 시간입니다. 도시 여행에서 그나마 빠르게 도시를 알아가는 방법이 가이드 투어입니다. 현지에서 수년간 살고 있는 사람을 통해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는 것이 좋습니다. 여행에 ‘효율’따위를 생각하면 안 되겠지만... 시간이 부족하다면 고려해 봄직한 방법입니다.
웨스트민스터, 빅맨, 버킹엄 등 투어를 마치고, 오후에는 런던 동쪽을 짝꿍과 탐험합니다. 제법 걸어야 하는 길이라 중3 딸은 집에 있겠다 합니다. 다 컸습니다.
먼저 세인트폴 대성당으로 갑니다. 전 세계에서 바티칸 대성당 다음으로 긴 이 성당은 유럽의 다른 성당들과 다르게 넓은 광장을 품지 않고 빌딩과 빌딩 사이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가까이에서는 그 크기를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템즈강과 마주하는 성당을 잘 보기 위해 밀레니엄교를 건넙니다. 런던에 유일한 인도교입니다. 비로소 그 크기가 눈에 들어옵니다. 템즈강을 건너오면 오른쪽으로는 테이트모던 현대 미술관이 있습니다. 과거 화력발전소를 리모델링한 곳이라 외부에서 보면 흡사 커다란 공장처럼 보입니다. 다리의 왼쪽에는 둥그런 원통형의 흰 건물이 보입니다. 바로 셰익스피어가 활동한 글로브 극장입니다. 공연을 하는지 극장 벽에는 아직도 공연 포스터가 붙여져 있습니다.
템즈강을 따라 저녁산책을 계속합니다. 대항해 시대, 무적의 스페인 함대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훼방 놓은 해적 드레이크의 배와 버로우 마켓을 지나 타워브릿지와 마주합니다. 개인적으로 야경보다는 낮의 타워브릿지가 훨씬 더 좋습니다. 사진은 모르겠지만 분명 수년 전 감동이 덜 합니다. 그래도 템즈강의 야경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습니다.
런던도 불금입니다.
‘Z야, 엄빠 나갔다 올게~! 괜찮지?’
‘응, 대신 너무 늦게 많이 마시고 오지만 마’
피시 앤 칩스 가게에서 깔라마리를 포장해 와 중3 딸과 저녁 식사를 하고 다시 나갑니다. 친구에게는 미안하지만 너는 앞으로 즐기고 살아갈 날이 더 많잖아! 쿨(?)하게 보내주는 딸이 한없이 대견합니다. 정말 다 컸습니다.
금요일 밤 소호 거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사이사이 골목들은 흥겨움으로 가득합니다.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며 이곳에는 게이 전용바, 저곳에는 레즈비언 전용펍에 들어가기 위해 대기를 합니다. 드레퀸들은 그들의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고 친구들은 또 다른 친구들과 술잔을 부딪힙니다.
펍 안은 술잔을 들고 서서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떠드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자리가 없으면 바 밖으로 술잔을 들고 나와 수다를 떨며 마시면 그만입니다. 이곳 런던의 금요일 밤도 불타오릅니다. 짝꿍과 함께 이펍에서 저펍을 다니며 우리도 그들과 함께 불금을 함께 합니다.
타인의 취향을 존중한다는 것! 우리에게 '나'는 '우리'입니다. 그리고 '너'와 '당신'도 '우리'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눠도 내 아이, 내 남편, 내 아내가 아닌 우리 아이, 우리 남편, 우리 아내가 됩니다. 우리 아내라니 외국인이 듣는다면 참 이상한(?) 나라입니다. 당연히 좋은 점도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는 보호하고 감싸는 공동체로 하나가 되는 이상적인 사회적 분위기랄까요? 그래서 '우리'나라 특유의 위기에 똘똘뭉치는 경험을 해왔습니다. 월드컵이 그렇고, IMF 가 그랬죠! 그런데..또 한쪽으로는 '개인'과 '나'의 소중함과 취향에 대한 존중이 부족합니다. '단체생활에서 왜 개인행동하고 그래? 츳츳' 어떤 조직이나 이런 말을 합니다. 내가 좋아할 권리, 홀로 사색할 권리, 홀로 자유로울 권리를 간섭받기도 합니다. 남자가 화장을 하고 치마를 입으면,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면 또 어떻습니까? 타인이 내 눈에 거슬리고 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세계가 있는 것을...술잔을 비우고 비우다보니 술기운에 타인의 취향은 타인의 취향대로 나의 취향은 나의 취향대로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하며 금요일을 불태웁니다. 파리~ 피플~
P.S.
중3 딸에게 카톡이 옵니다.
'둘 다 적당히 좀 마시고 들어오지?!'
부모, 자식이 뒤 바뀌었습니다.
2024년 1월 13일... 불금으로 지샌 새벽...런던에서 BOX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