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대치동 대신 파리나 갈까?
‘파리에서 마라탕이라니?’
설마 파리에서 마라탕을 먹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10대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마라탕이라 합니다. 점심으로 마라탕을 먹는다는 생각에 중3 딸의 얼굴이 아침부터 방긋 방긋입니다. 의당 해외에 나오면 그립고 생각하는 것이 한식일 텐데, 요즘 친구들에게 마라탕은 바로 그런 한식(?)인가 봅니다.
샤틀레 역에서 M14를 타고 한국에도 알려진 오페라 근처 음식점을 찾았습니다. 마라탕을 먹지 못하는 나는 짝꿍과 친구를 들여보내고 따로 다른 곳을 탐험합니다.
오페라 근처는 일식과 한식당 골목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라탕처럼 굳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근처 유명한 카페나 스타벅스도 있지만 오늘따라 동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골목 사이를 걷던 중 마음에 쏙 드는 카페 하나를 발견합니다. 이름도 없는 작은 카페에 이끌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갑니다.
커플이 운영하는 이 작은 카페는 동네 맛집입니다. 카페를 찾는 손님과 쉼 없이 볼을 마주하며 비쥬를 나누고 이야기를 합니다. 창가에 앉아 크로와상과 에스프레소 한잔을 주문하자, 여주인은 크로와상을 남주인은 에스프레소는 서빙해 줍니다. 커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주인은 커피의 원산지며 풍부한 산미에 대해 알려주고 연신 벨런스며 맛에 대한 반응을 궁금해합니다. 잠시 파리의 진짜 카페를 만난 것 같이 기분이 더없이 좋습니다.
생마르탱 운하를 찾았습니다. 생마르탱 운하는 센강과 수직으로 면한 파리 북동부 4.5km 길이의 운하입니다. 바스티유 시장에도 들를 겸 메트로 M9을 타고 레퓌블리크 역에 내립니다. 10여 년 전 첫 파리 여행 중 파리를 떠나는 날 알게 된 이 운하를 다시 찾은 건 5년 전입니다. 홀로 운하를 따라 1시간 여를 거닐었던 기억입니다. 그리고 오늘 또다시 이곳에 와 있습니다.
생마르탱 운하는 산책하기에 그만입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파리지앵들은 운하 주변에 앉아 와인과 커피는 마시며 한가로이 시간을 보냅니다.
15년 만에 찾아온 파리의 추위지만 한국의 겨울 날씨와 비교하면 2월 초중순의 기온이라 큰 무리 없이 운하를 따라 걷습니다. 잠시나마 베니스의 좁은 수로길은 떠올리게 만드는 기분 좋은 산책입니다.
새벽에 내린 눈이 쌓여있습니다. 15년 만의 눈으로 아침 뉴스에서는 특보가 흘러나왔습니다. 우리 가족은 기상 이변을 참 많이도 겪습니다. 아프리카와 지중해를 면한 스페인 그라나다에서도 몇 해 전 폭설을 뚫고 6시간 넘게 운전한 기억입니다. 평화로운 여행였다면 몇 년이 지나 기억조차 할 수 없는 추억이 깊게 새겨집니다. 이 뜻밖에 순간들이 여행의 진짜 선물입니다.
15년 만에 눈이라 하니, 어쩌면 큰 행운입니다. 또 추억 하나가 차곡히 쌓였습니다. 운하를 따라 함께 자리한 소박한 공원에도 눈이 남아 있습니다.
아직 밟지 않은 눈에 흔적을 남깁니다. 중3이지만 아직 눈이 좋은 나이의 아이는 아이인가 봅니다.
P.S.
근처에 커트러리 매장에 잠시 들렀습니다.
직접 커스텀해주는 이곳 매장을 보고 있자니 딸과 짝꿍만 신난 하루입니다.
2024년 1월 19일... 어쩌면 고독...한 파리 특파원 BOX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