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쓸데없이 재미있게 살아볼게
딱히 애국자는 못되는지라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다만...
양궁 전종목, 여자 단체 10회 연속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데는 참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10회 연속이라고? 4년에 한 번 열리니 40년의 시간입니다. 40년간 계속 1위이라니... 좀 너무하다는 생각입니다. 최고의 인기 가수가 조용필에서 서태지로, 이효리로, 아이유로, BTS로 바뀌는 사이, 줄곧 1등만 차지한 셈입니다. 첫 금메달 때 태어난 아이는 어느덧 거무튀튀한 마흔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보는 우리들이야
‘또 금메달이군!,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정도의 감탄이면 그만이겠지만, 실재 경기에 나선 선수들의 중압감과 부담감은 또 얼마나 컸을까요? 자칫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그간 쌓아놓은 업적이 와르르 무너진다는 생각에… 자신이 누가 될까 봐… 마음 조리고 또 조렸을 겁니다. ‘에잇! 젠장! 내가 이러려고 국가대표가 된 건가? 차라리 하지 말 것을’ 이런 생각도 한 번쯤 했을 겁니다. 도망치고도 싶었을 겁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아들, 딸, 누군가의 부모, 자식입니다.
그렇습니다! 온전한 자기 자신이 아닌 누구누구의 딸과 아들, 아버지와 어머니로 살아갑니다. 당연한 듯 하지만 한편으로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온전한 나 자신이 아니니 쏟아지는 의무감과 부담감은 자꾸만 쌓여 갑니다.
대체 어쩌란 말이냐?
나의 선택이 아닌 그저 물려봤고, 누군가로부터 유산으로 남겨진 삶은 과연 어쩌란 말이냐?
좋은 대학을 가라고 합니다. 영어 유치원을 다니고, 초등학교부터 수학, 과학 학원을 다니고, 중학교에서 고교과목을 선행학습하고, 고등학교에선 내신 지옥에 빠져야만 합니다. 좋은 대학을 가야 하는 이유도 간단합니다. 좋은 직업을 구해야 하니까… 내가 좋아하는 직업, 자아실현 따위는 말같잖은, 그저 배부른 소리라 합니다. 남들보다 돈 많이 벌고, 다른 사람이 인정하고 머리 조아릴 만한 권력의 직업을 찾아야 하니까.. 그게 유리하니까
그런데.. 그런 직업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제 아무리 치열하게 노력한다고 한들… 내가 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갈 수 없는 길을 가려 평생을 살았는데 우린 길이 달랐습니다. 당신은 이쪽, 나는 저쪽. 그러니 이제 스스로를 비난합니다. 내 잘못이야! 내 탓이라고! 아니! 아니! 사회가 문제야. 다른 사람을 증오하고 미워하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말 같잖은 소리!
맞아요. 오지랖! 돼먹지 않은 소리입니다....만, 이제 좀 바.뀔. 때도 됐습니다.
좀 늦으면 어떤가요? 자신만의 템포로 살아가면 그만입니다. 오지라퍼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보이지 않는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하지 말자는겁니다. 확실한 건 바로 지금 이 순간 내가 숨 쉬고 있다는 사실 하나뿐입니다. 미래는 잘 모르겠습니다. 후회 없이 잘 놀면 최소한 즐거웠던 추억만은 남는 셈입니다. 남는 장사입니다. 못 놀고 후회하느니 잘 놀고 후회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쓸데없이 재미있게 살고싶은...뭐… 철없는 중년의 철없는 이야기입니다. 선택은 각자의 몫입니다. 어쨌든,
<그로칼랭>은 <자기 앞의 생>으로 유명한 에밀 아자르가 로맹가리라는 필명으로 쓴 첫 소설입니다. 통계청 소속으로 대도시 파리에서 살아가는 외로운 남자 쿠쟁은 2미터가 넘는 비단뱀 그로칼랭을 키웁니다. 그가 비단뱀을 키우는 이유는 이 삭막한 도시에서 그를 사랑하고 따뜻하게 감싸줄 유일한 생물이 오직 비단뱀이기 때문이죠. 그는 외롭지 않기 위해 자신의 두 팔로 스스로의 몸을 꼭 껴안을 수밖에 없는 대도시의 외로운 남자입니다. 어느 날, 비단뱀 대신 이성을 만나보라는 경찰서장의 권유에 그가 내뱉은 말입니다.
‘네, 나도 압니다. 하지만 이제 바뀔 때도 되었지요’
이 시크한 대답이 한참 머릿속에 맴돕니다. 그래! 이제 바뀔 때도 됐다. 베토벤의 9번 교향곡으로 그만큼 살았으면 됐다. 내겐 이제 모든 부담감과 의무감을 훌훌 털어버리고 이제는 좀 당신하고 싶은 것 하고 살아도 된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꼭 베토벤일 필요가 있을까? 바흐면 어떻고 드뷔시면 또 어떤가?
인생이 계.속.되듯 올림픽도 계속됩니다. 다음 국가대표도 부담감은 어쩔 수 없이 주어진 멍에입니다. 그러니 나는 희망합니다. 다음 올림픽은 제발 금메달을 따지 않기를… 따지 못하기를...
이제는 바뀔 때도 되었습니다.
P.S.
광고회사 대표는 점점 꼰대가 되어 갑니다.
고백하자면 이게 다 매일 시달리는 중압감과 부담감 탓입니다.
image : Rocky Sun via Fli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