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메로스가 노래한다, 세이~ 호~
광고 프레젠테이션은 광고주, 즉 클라이언트의 의뢰를 받아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발표하는 과정이다. 이때 발표를 맡은 사람이 바로 프레젠터다. 흔히, 예능프로에서 MC인 유재석이나 강호동이 프로그램의 재미에 주는 영향력이 막대하듯, 프레젠터 역시 프레젠테이션의 흐름과 성패를 결정짓는 핵심 인물이다. 그의 말 한마디, 제스처 하나가 수개월간 노력의 결실을 결정짓는다. 그래서인지 광고회사의 꽃이라 한다.
오랜 시간 고민하고 공들여 완성한 광고 아이디어를 단 한 번의 발표로 승부를 보는 자리인 만큼, 프레젠터가 어떤 태도와 형식으로 광고주를 설득하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수개월의 노력이 단 1시간 안에 결판나는 거다. 그 발표 하나에 회사의 명운이 좌우되기도 한다.
모두가 오직, 그의 입만 바라본다
뛰어난 빅 아이디어 이상으로, 프레젠터의 발표가 광고회사를 먹여 살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만큼 발표자는 광고주의 시선을 끌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호감 가는 모습으로 군중을 사로잡을 수 있도록, 자신의 영혼까지 탈탈 털어 팔아야 하는 직종이다. 그래서 발표 전에 어떤 방식으로 설득을 할지 발표 전략을 세우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처음에는 호기심을 유발하고 나중에 빵 하고 터트릴 것인가? 시종 위트 있는 분위기로 청중을 압도해 가며 아이디어를 전달할 것인가? 최대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방법으로? 혹은 감성적인 접근으로 아이디어를 전달할 것인가?
그렇다. 광고는 수많은 기획자와 제작자의 시간이 결집된 결과물이지만, 그 모든 노력을 광고주에게 전달하는 역할은 오직 한 사람, 프레젠터에게 달려 있다. 그러니 얼마나 멋진 이야기 꾼이어야겠는가?
여기 인류의 문화와 예술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최고의 이야기꾼, 광고 프레젠터가 있다. 이제 그와 그가 창조하고 들려준 세계로 한번 들어가 보자.
인문에 관심조차 없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이다. 미술 전공자라면 더욱 어렸을 때부터 신물 나도록 헛구역질하며 그려봤을 사람. 호머, 바로 호메로스다. 기원전 8세기 전후의 인물로 그리스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던 음유시인이다. 호메로스는 장님였다. 태어나고 죽은 일시가 정확히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당시로 보면 기록할 문자나, 종이, 녹음기, AV 따위가 없었으니, 당연하게도 그는 시로 이야기를 만들고 플롯을 입히고 우리의 창과 같은 구전형태로 영웅들의 이야기를 노래했다. 즉, 대중들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판 광고인이며 구라로 먹고 산 인물이다. 그것도 대단한 구라쟁이, 인류 최고의 예능인였다.
인류 최고의 예능인이 들려주는 서사 OTT
광고적 상상력을 좀 더해보자. 읽지는 않았어도 역시 다들 한 번쯤은 들어봤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서사시다. 시가 노래였고 연극이고 영화이자 OTT 드라마였던 그리스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이자 래퍼, 프레젠터인 호메로스. 그 인기로 인해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멀리 소아시아 투어를 방금 마치고 돌아온 시인 호메로스가 오늘 밤 우리 마을에 들릅니다. 광란의 파티와 공연에 관심 있는 여러분의 많은 시청 바랍니다.’
사람들은 시인이 들려주는 수세기 전 신화와 역사가 뒤섞인 영웅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때로 비극에 슬퍼하고 무용담에 환호했다. 아마도 서사시의 내용이 방대하다 보니 당연히 한 번에 다 부르진 못했을 거다.
3장을 부르다 ‘여기서 잠깐! 광고 듣고 오겠습니다’ 거나 ‘4장부터는 내일 같은 장소에서 아침 닭이 3번 울 때 다시 시작합니다’ 이랬을 거다. 그가 들려주는 사가가 얼마나 설득력 있고 재미있었으면 2,800년이 지난 지금도 인문인, 교양인, 광고인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이야기가 되었을까?
자 이제 그가 엄청난 구라로 청중을 홀렸던 두 편의 서사시를 간단히 짚어보자. 이쯤은 알아야 어디서 침이라도 뱉는다.
액션 스펙터클 막장 복수 치정극
일리아스를 간단히 요약하면, 한 유부녀가 젊디 젊은 남자와 바람나 도망가고, 배신당한 남편이 복수를 위해 싸우는 내용이다. 쉽게 말해 막장복수치정극이다. 천하의 구라쟁이 호메로스는 이 간단한 내용에 온갖 흥행요소를 버무렸다. 광고로 말해 소구포인트 appeal point를 잔뜩 양념 쳤다.
주인공 아킬레우스는 바람나 도망간 유부녀 남편의 부탁으로 하기 싫은 전쟁에 억지로 참전한다. 사실 남편과도 사이가 나쁘다. 또 다른 주인공 헥토르는 유부녀와 도망친 남자의 형이다. 피가 뭐라고 원치 않는 전쟁에 참전한다. 아킬레우스의 그리스 연합군과 헥토르의 트로이는 10년간의 지리한 대치와 처절한 전쟁을 벌인다. 불륜의 결과다. 이게 다 바람난 유부녀와 철없는 젊은 한 망나니 탓이다.
그러던 중 아킬레우스의 BL동성 애인이 헥토르에게 죽고 만다. 눈이 뒤집힌 아킬레우스가 헥토르를 죽이고 시신을 능멸한다. 죽은 자식을 돌려달라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가 아킬레우스를 찾아와 무릎을 꿇는다. 전쟁이 장례기간 잠시 휴전한다.
이 간단한 이야기는 호메로스의 재담으로 올림포스 신들의 대리전이 되고 총 24권의 거대한 서사시가 되었다. 광고로 보면 핵심 키워드가 #치정 #불륜 #막장 #스펙터클 #판타지 #BL #동성애 #분노다. 이러니 잘 될 수밖에 없다. 드라마 중에 최고 드라마는 막장드라마니까!
이제 일리아스의 후편이라 할 수 있는 오디세이아를 보자
어드벤처 잔혹 로드 활극
전쟁에 참전한 잔머리가 비상한 군인이 집으로 돌아간다.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에게 남자들이 껄떡댄다. 고향에 돌아와 추근댔던 남자들을 잔인하게 복수하는 내용이다. 쉽게 말해 잔혹로드활극이다.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을 끝내고 고향집에 돌아간다. 지지리 복도 없다 보니, 가는 도중 외눈박이 거인, 요정, 세이렌, 칼립소, 폭풍과 풍랑 등을 만나고 저승도 잠시 들른다. 온갖 고생을 한다. 포세이돈이 저주를 퍼붓은 탓이다. 고향 한번 가기 참 힘들다. 10년간 이 고생, 저 고생 돌고 돌아 고향 가는 이야기다. 그래서인지, 원래 오디세우스의 뜻이 ‘증오받는 자’다.
아내 페넬로페는 전쟁에 나간 남편을 기다린다. 미인이다. 108명의 남자들이 치근덕거리지만 잘 참아낸다. 고향으로 돌아온 오디세우스가 108명의 남자를 모두 죽인다. 전쟁 10년, 고향길로 10년, 도합 20년 만에 부부는 재회한다.
오디세이아는 주인공 오디세우스가 귀거래사 歸去來辭, 즉 고향으로 돌아가는 로드무비다. 존 덴버의 Take Me Home, Country Roads 노래처럼 줄곧 고향 가는 길의 별 볼 일 없는 여정을 호메로스의 구라로 24권의 서사시로 만들었다. 광고로 보면 핵심 키워드가 #여행 #모험 #잔혹 #하드코어 #스펙터클 #판타지다. 최고의 프레젠터가 들려주는 일종의 여행기인 셈이다.
인문학의 근원으로 붙는 랩배틀
호메로스는 ‘장밋빛 손가락을 가진 새벽’ ‘검은 포도주 빛 바다’ 같은 표현으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는 당시 그 누구도 쓰지 않던 아주 과감한 문학적이고 극적인, 꿀 떨어지는 프레젠테이션였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이 두 서사시의 작가가 호메로스가 맞느냐 에 대한 논쟁이 수세기에 걸쳐왔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어휘나 미묘한 뉘앙스, 화법과 스토리텔링이 서로 다르다는 이유다. 일설에는 기원전 5세기 경부터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 또한 같은 논쟁을 벌였다고 한다.
지금부터 2,800년 전의 원작자를 아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할까? 실용적인 우리 광고인에게는 그보다는 이 두 서사시가 수천 년에 걸쳐 전하는 인문학의 근원, 철학, 예술, 문학이 지금 우리에게 전하는 인간을 향한 광고와 맥이 닿아 있다는 것. 이것이 원작자 논쟁보다 더 큰 의미가 아닐까 싶다.
맹인이었던 그가 대중을 상대로 오디세우스의 방랑을 이야기할 때를 광고인의 시점에서 상상해 보자. 사람들은 이 이야기꾼에게 감탄을 하며, 지금의 넷플릭스에서 극강의 몰입되는 드라마나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마블 시리즈를 보는 듯한 몰입감을 느꼈을 거다. 이야기꾼 호메로스의 한마디 한마디가 그들에게는 서사였고 판타지 그 자체였다. 또한 당시 그리스 지식인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암송하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생각해 보자. 그리스의 한 아고라에서 랩베틀이 붙는다. 펠리우스 vs. 디오메네스. 누가 더 간지나고 폼나게 <일리아스>의 명장면,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결투 씬을 멋지게 노래하는지 쇼미더머니는 그때나 지금이나 계속된다.
TIP. 알아놓으면 떡이 되고 밥이 되는 <일리아스>, <오디세이아>가 남긴 유산들
#파리스의 심판 #아킬레스 건 #카산드라의 예언 #트로이의 목마 #엘렉트라 콤플렉스 #사이렌 #멘토
image : 8mile(movie) /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