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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행 Sep 23. 2021

[가상 인터뷰] 모나리자, 당신의 미소 그 뒤.._3.

루브르의 밤, 그녀와 함께 숨 쉬고,이야기하다.



한 공간에서 벌어는 대결! 요즘으로 보면 랩이나 댄스 베틀 처럼요…






“그럼 다른 질문 드려볼게요…그러니까 1503년 당신이 다빈치의 모델일 즈음,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의 피렌체에서의 대결이 유명했다는데 혹시 아시는게 있나요?”


“먼저,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 모두 피렌체의 보물이라 말해주고 싶어요. 미켈란젤로가 약 20살 정도 어리지만, 제가 볼 때 경쟁심이 둘다 대단했지요. 물론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미켈란젤로 쪽이 더 했지만요…


당시나 지금이나 레오나르도는 르네상스를 상징하는 대표적 아이콘였으니까요…회화, 건축, 과학, 의학, 화학, 수학, 물리학, 천문학, 군사학…의 대가였어요. 르네상스적인 인간상이랄까 그러니 미켈란젤로에게는 당연히 넘어서야 할 존재였다고 생각해요…. 


당연하게도 당시 피렌체 지도층은 둘이 경쟁하고 대결하는 것에 엄청난 관심과 흥미를 느꼈고 이를 즐겼어요.


원래, 불 구경, 싸움 구경이 제일 재밌잖아요~ 마치 축구의 메시가 최고다, 호날두다…그런식였죠. 

그러니 당연히 두 사람 사이가 좋지 못했어요…”


르네상스 시대의 호날두와 메시였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



“어떤 식의 대결였나요?”


“한 공간에서 벌어는 대결! 요즘으로 보면 랩이나 댄스 베틀 처럼요…


피렌체 시의회가 아름다운 시뇨리아 광장을 끼고 있는 베키오궁의 의회 공회당에 거대한 벽화를 각각 그리게 한거죠. 지금 시각으로도 엄청나게 큰 벽면을 서로 마주보게 해서 그림을 완성하는 베틀였죠. 주제는 피렌체 역사를 담은 내용으로 공식적인 대결였답니다. 


레오나르도는 잘생기고 귀족적인 외모에 이미 완숙한 최고의 아티스트 였고, 미켈란젤로는 고집 세고 못생긴 거친 상남자.. 그렇지만 피에타 조각으로 바티칸에서 인정받고 고향으로 돌아온 떠오르는 아티스트였죠. 


최고의 챔피언과 그 자리를 노리는 최고의 도전자라고나 할까…다빈치는 앙기아리 전투를, 미켈란젤로는 카시나 전투를 그리는 그림을 의뢰 받았던 거죠. 두 거장의 자존심 대결였죠.”


미켈란젤로 크루와 다빈치 크루가 그림 베틀을 했던 베키오 궁 공회당 벽면은 정말 거대합니다. 





시공간 여행자 5분 tip

레오나르도 다빈치 vs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다빈치에게 회화는 르네상스적 인본주의를 완성하는 최고의 도구였어요.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뼛속까지 조각가였죠. 천지창조로 유명한 바티칸의 천장화도 사실 조각을 하고 싶은 미켈란젤로의 알바 같은 작업였던거죠. 


교황님, 전 조각이 하고 싶어요!

그래? 그럼 먼저 천장화부터 그려 봐!!

교황님, 전 조각가라니까요...ㅜㅜ

뭐...감히 나한테 니가 엇따대구 말댓꾸야? 까라면 까!!


그 어려운 걸 또 해냅니다. 참나 교황님! 저 조각가라니까요...~


회화, 조각 무엇이 최고의 예술이냐를 놓고 벌이는 보이지 않는 논쟁이 두 사람 사이에 있지 않았을까요?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 오른편엔 수 많은 조각이 모여있는 살라다르메(sala d, arme)가 있어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이 만들어졌을 때 어디에 이 조각상을 놓을 것이냐로 논쟁이 있었다고 해요. 그때 거장인 다빈치는 당연히 살라다르메에 놓아야 한다 라 했다고 해요. 


살라다르메는 광장 맞은편 끝에서 보면 직사각형 형태의 커다란 회화 캔버스와 같은 모양예요. 즉 다빈치는 다비드 상을 회화의 커다란 세계관에 묶어 놓으려 했고, 회화 까짓 것 그게 뭐라고…하던 조각가 미켈란젤로는 화가 치밀어 올랐겠죠. 


지가 선배면 다야…! 

나는 조각하는 석공이 아니라 이미 대리석 안에 숨쉬고 있는 생명을 세상에 내놓는 사람이라구! 

창조자라구…예술가야! 예술가!!!


암튼 다비드 상은 살라다르메의 울타리에 들어가지 않고 수백 년간 베키오 궁 정문을 지키며 피렌체를 굽어 보고 있어요…피렌체에서는 미켈란젤로의 인기가 레오나르도보다 높은 결과였을까요?


언젠가 다비드를 만나 인터뷰 하게 된다면 미켈란젤로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봐야 겠군요.


베키오 궁과 살라다르메, 저멀리 살라다르메를 바라보는 다비드 상이 보입니다. 



“고향이 그립지는 않나요?”





“모나리자 당신은 분명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입니다. 이탈리아에도 최고의 미술관이 많아요. 그런데 어찌 고향 이탈리아가 아닌 이곳 파리에…그리고 프랑스의 보물이 되었나요? ?”


“빈치 사람 레오나르도는 사실 인내심이 많지 않았어요. 뒷힘이 부족했죠. 세상 모든 것에 흥미를 느꼈고 또 모든 것을 이해하려 했죠. 저나 당신이나 모든 인간은 유한한 시간 속에 살죠. 


다빈치도 모든 것을 이해하려면 인생의 시간이 짧았어요. 다른 것에 관심이 많으니, 그림이나 건축을 의뢰를 받아도 납품 기일을 어기거나 미완성일때가 많았죠. 그만큼 세상 만물의 법칙을 이해하려는 데 시간을 더 많이 투자했던 거죠. 


이후 밀라노(후견인이었던 루도비코 스포르차 공작(Ludovico sforza)), 로마, 볼로냐 등 도시국가의 군주와 귀족들 사이에 다빈치의 인기가 식어가죠. 


어이...레오나르도, 일은 다 했어?

아뇨..아직요...뭐...그깟게 뭣이 중헌디요?

아니, 퍼스트클래스에 최고급 풀빌라 제공에, 게런티를 그렇게 높게 쳐줬는데...암 것도 안했다고?


누가 뭐래도 최고의 예술가이니 특급 대우를 해주고, 최고의 개런티도 줘야 하는데 납기 일도 맞추지 않고, 툭하면 사라지거나 다른 일에 관심을 갖으니…다빈치도 성질 고약한 노인이 되었구요. 


외로운 인생의 황혼에 뿌리치지 못할 스카웃 제의가 와요. 바로 프랑스 국왕 프랑수와 1세였죠. 해부학 등의 과학 활동, 예술에 대한 엄청난 후원, 프랑수와 1세 궁전 바로 옆에 멋진 성을 약속하죠. 


결국 당나귀에 몸을 싣고 알프스를 넘어 프랑스로 가게 된 거죠. 그때 저도 그의 곁에 앉아 알프스를 넘었답니다. 제가 고향을 떠나 이곳 파리에 살게 된 이유예요.”


드농관에 프랑수아 1세는 초상화로 남아 지금도 여전히 다비드의 모나리자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고향이 그립지는 않나요?”


“왜 그립지 않겠어요? 이탈리아…아…피렌체…해 질녁 언덕에서 보이는 토스카나의 불타는 석양이 그립군요. 그래서인지, 한번은 그곳에 갔었죠. 


물론 빈센초 페루자(Vincenzo Peruggia)라는 미술품 도둑이 (사실 그는 루브르에서 제게 유리 액자를 끼워주는 일을 했어요.) 루브르에서 저를 데리고 나갔지만, 그 덕분에 고향을 방문한 거죠. 그는 저를 다시 고국 이탈리아에 머무르게 하고 싶었다고 잡힌 후 이야기를 했었죠. 이후 지금처럼 두꺼운 방탄 유리 벽 안에 있게 됐지만요…”


(아이러니 하게도, 20세기 초 모나리자의 도난 사건이 있기 전에 모나리자는 루브르의 심장은 아녔어요.…사랑을 잃어버린 후 그 사랑이 소중하게 느껴지듯 사건 이후 그녀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인, 지금의 위상이 된 거죠. 사실 사건이 발생하고 24시간 동안 모나리자가 사라진 것을 아무도 몰랐다고 하니, 별 관심 없었던 거죠. 정말~)


그녀를 가장 유명하게 만들어 준 사람은 바로 그녀를 납치했던 빈센초 페루자가 아닐까요




“저는 시공간 여행자로 여기 당신과 인터뷰하며 함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


“대게 저만이 아니라 모든 예술 작품은 존재만으로도 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가장 안타까울 때가 루브르에 와서 사진만 찍고 가는 거죠. 정작 작품엔 관심이 없어요. 제가 정말 잘 나온 사진은 구글링만 해도 수천 수 만장이 있을 거예요. 


저를 만나러 오실거면 사진기는 잠시 내려 놓고 눈으로 저와 대화하고 저와 미소를 나눴으면 좋겠어요. 물론 제 인기가 좀 많아서 보기 힘든 것도 사실이죠. 하지만 미술관에는 더 훌륭한 작품들이 많답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눠보는 건 어떨까요. 그들은 준비가 되어있어요. 마음을 열어놓고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




“끝으로 당신의 함박 웃음을 한번 보고 싶습니다. 가능한가요? ”


수 백 년을 이곳 파리에서 살아온 프랜치 시크…모나리자. 함박 웃음을 내게 보입니다. 그 웃음을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나만의 비밀을 간직한 채 미술관을 나옵니다. 밤이 깊고 달이 차갑습니다.


잘 있어요~ 또 봐요~ 

Au revoir et à bientô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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