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를 마치고 출간을 기다리며

by BOX

두번째 출간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번엔 에세이입니다.


카톡! '미쳤구만!'

퇴고 이야기를 듣고, 작가 박상준에게서 대뜸 연락이 왔다. 그는 7권의 여행책을 쓴 대한민국 대표 여행작가다. 영화 잡지사에 함께 일하던 때부터 친구가 되었으니, 벌써 우리는 20년지기다. 그의 글은 아주 깊다. 그 안에는 이야기가 있고, 사람이 있다.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박상준은 술을 한 잔도 못하는데, 그의 글을 읽다보면 술 한잔이 그립다. 좋은 글, 잘쓰는 글은 많아도, 잘 쓰여진 글이면서도 사람이 있는 글은 접하기 쉽지 않다. 그런면에서 보면, 정말 괜찮은 작가다. 지켜보다보면 아마도 그가 건축과 조경을 전공해서인지도 모르겠다. 건축 역시 사.람.을 향한다고 하던가요? 아무튼, 그런 글을 쓰는 작가는 흔하지 않다. 그러니까! 아주 글쓰기로는 밥맛없고 재수없는 작가란 말씀. 뭐, 어쨌든.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작가로 만들어라


혹시 주변에 죽도록 싫고 미운 사람이 있으신지? 그렇다면 그 사람을 작가로 만들면 된다. 간단하다. 그 사람에게 다가가 달콤하게 귓속말을 속삭인다. '어~이! 친구! 너 글 좀 쓰더라. 책 한번 내보는 거 어때?' 이러면 끝! 이제 집으로 돌아와 몇달간 룰루랄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미끼를 덥썩 문 친구는 글쓰기를 시작한다. 책한번 내보겠다는 생각에 온갖 스트레스에 빠진다. 살이 빠지고 머리카락은 듬성거린다. 줄담배와 술에 빠지고, 식음을 전패한다. 밤과 낮은 물론, 휴일도 반납한 채 살아도 살아 있지 않은 좀비가 되어 워킹데드로 살게 될 것이다. 그렇다. 빙고! 글쓰기 개미지옥에 걸려든 셈이다.


여기에 보태 더 효과적으로 빠르게 죽이는 방법이 있다. 바로 마감이다. 이거야 말로 특급 살인 비법이다. 영화 주간지의 일주일 사이클은 이랬다.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만. 수요일 마감. 목요일 인쇄, 발간, 배포. 금요일 다음주 발간호 기획회의, 아이템 및 꼭지 토픽 선정.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취재, 화요일 기사작성, 다시 마감 이런 패턴이었다. 지금보니, 사람할 짓이 아니군요. 아무튼, 그래서 수요일 밤에는 기사 마감으로 모든 기자들이 머리를 쥐어튿고, 연필을 잘근 잘근 씹으며 마감시간과 초치기를 해야만 했다. 그중 마지막까지 고민에 고민을 하며 글을 쓰던 사람이 바로 박상준이다.


"어~이! 박기자! 멀었어? 새벽이야"

"먼저 가슈! 난 더 써볼테니"

"뭐야, 내가 발가락으로 써도 당신보다 빨리 쓰겠다."


지금봐도 그때나 지금이나 그의 글은 좋다. 마지막 시간의 작은 조각까지 쪼개 하나의 단어를 내놓으려 했으니 당연히 좋을 수 밖에 없다. 지금도 나는 그리 못한다. 그러니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을 7권이나 내놓았겠지만.


그가 나는 죽이려 한다.


"그니까 말야...책 한번 내보슈!" 이렇게 시작한 일이다. 박상준의 유혹에 빠지지 말았어야 옳았다. 첫 책은 광고쟁이가 된 내가 그간의 직업과 인간을 바라보는 광고에 관한 책이니, 그건 그런대로 쓸만했다. 올해 초 서점에 나와 작가 유시민과 유발 하라리 중간에 랭크되어 나름 인문분야에서는 제법 괜찮았습니다만...두 번째 책을 준비하면서는 여간 힘들지 않았다. 게다가 나에겐 생소한 에세이라니....운 좋게도 좋은 출판사와 좋은 편집자를 만나 작업을 하게 되었지만, 에세이는 난생처음 아닌가. 틀림없다. 과거에 그에게 '발가락으로 써도 당신보다 빨리 쓰겠다'고 말한 것에 대한 복수가 틀림없다. 요놈, 당해봐라! 이런거다. 어쩐지, 출간기획서도 봐주고, 글도 좋아졌다고 달콤하게 말하더라니. 다 이유가 있었군.


마감을 정하고 쓰다보니 피가 마른다. 써 놓았던 글을 다시 보다보면 자괴감마저 든다. 내가 이러려고 어른이 된건가? 안써지는 단어 따위나 깨작거리려고 어른이 됐나?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러나 싶기도 하다. 그냥 맘편히 책이나 읽고 적당히 술이나 마실것을...아! 후회막심이다.

살인청부가 필요하시면 언제든 연락주세요!


어차피 내가 시작한 일이다. 내 인생이다.


그래도 어쩌겠나? 그의 꾐에 빠져 시작한 일이지만, 퇴고의 고통도 누군가에겐 간절히 바라고 원하는 과정이지 않겠는가? 그렇다. 누군가 나의 글을 읽고, 작은 생각하나가 통할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 행복한 일이다. 누군가 나를 작가라고 불러준다면, 그 지난한 퇴고의 힘겨움도 즐거운 기억이 될지도 모른다. 풋나기 작가의 생각입니다만, 글이라는게 원하는대로 써지는 것도 아니고, 축복처럼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도 아니다. 그건 그냥 기다리기다.


그래서 소설가 레이먼드 챈들러는 자신만의 원칙으로 글을 썼나보다.

첫째, 매일 최소 네 시간씩 책상에 앉아 글을 쓸것.

둘째, 그런데도 글쓰기가 되지 않는다면? 글이 써질 때까지 그냥 책상에 앉아 있을 것.


출간을 기다리며 생각한다.

나는 얼마나 함부로 다른이의 책을 열고 덮었나.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채 쉽게 말을 내던졌던가? 글과 그림과 그리움은 하나의 어원이라 한다. 그러니까 그리움을 붓으로 그리면 그림이 되고 연필로 쓰면 글이 된다. 한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오래고 애틋한 그리움을 글로 세상밖에 내놓는 일이니 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이겠는가. 퇴고 마치고 세삼 철이 든다.


카톡! 다시 박상준한테 문자가 온다.

'올해 벌써 두 번째 책이라고? 글을 발가락으로 쓰는구만'



* 브런치 글이 첫 책이 되었어요!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5557417


* 박상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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