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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와 고양이의 시간

by BOX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고양이 사랑으로 유명하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고양이를 키웠다는데, 작가가 되기 전, 20대 초반 도쿄의 고엔지에서 피터캣 Peter Cat이라는 작은 재즈바를 운영할 때부터, 그리고 소설가가 된 이후 지금까지도 줄곧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쓴 책 표지엔 가끔 하루키와 고양이 삽화가 함께 등장하기도 하고, 소설이나 에세이에서도 간혹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도 있다. 아무튼 그와 고양이는 뭔가 특별한 사이다.


'어이! 하루키 선생, 혹시 싫어하는 영화 있어요?'


허구헌 날 고양이 톰은 쬐~그마한 생쥐 제리에게 당한다. 인정머리 없이 잔인하고 잔혹한 제리를 한번 보자. 때는 일요일 오후다. 내일의 출근을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지끈, 속은 울렁울렁해질 시간이다. 그런 울적한 기분에 잠시 쉬고 싶은 직장인(음... 그러니까! 분명 그랬을 거라는 생각입니다만!) 톰이 수영장에 들어가면, 제리는 어디선가 전깃줄을 끌어와 톰을 감전시킨다. 어디 그뿐인가? 무거운 해머로 머리를 내리치기도, 전기오븐에 가두기도, 잔디 깎기에 깔리게도, 심지어 총을 쏘기도 한다. 이건 뭐,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의 엽기적 생쥐다. 더욱 잔인한 건, 그렇게 일방적인 폭력을 가하면서도 아주 순진하기 짝이 없는 표정으로 헤벌쭉 웃고 있다는 거다. 맞다! 틀림없다. 사이코패스 생쥐다.


제리에게만 당하는 게 아니다. 주인을 위해 집안에 돌아다니는 생쥐 한 마리 잡겠다는데 집사인 주인은 톰의 마음도 몰라주고 언제나 타박이다. 주인의 눈엔 생쥐 제리가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집안의 말썽꾸러기라며 함부로 톰을 평가해 버린다. 맞다. 그에게 늘 손가락질과 지적질이다. 아! 억울하고 원통하다. 이거 어디 고양이 할 맘 나겠나. 그런데 그렇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톰을 보며, 사람들은 웃어 죽는다. 가만있어보자! 이거 모두가 제정신인가? 그렇다. 나도 웃었다. 반성한다. 예전엔 미처 몰랐다. 그렇게 당하고 또 당하는 톰이 나이 먹어 보니 나라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우리는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누군가의 평가를 받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평가는 '등급'이 되고 만다. '음... 돈 많고 능력 있고 인물 좋고, 좋은 학벌에, 좋은 직장이군, 그래 2++ 특등급이구만' 그런다. '집도 없고 대기업도 아니고, 뭐야 쥐뿔도 없어? 광우병 걸린 미국산이군.' 이런다. 어째, 마음이 좋지 않다. 삶을 살아가면서 타인의 평가를 받지 않을 수 없을 테지만, 타인의 일방적인 덧씌움으로 규정지어지니, 톰이 곧 나이고 내가 곧 톰이다. 톰은 억울하다. 그래서 나는 톰이 좋다. 슬쩍 마음이 간다.


그런데 왜 하루키는 댕댕이가 아닌 냥냥이를 사랑할까?


고양이는 제갈길 간다. 누군가에게 아부하지 않고, 머리 조아리지 않고, 재롱도 떨지 않는다. 맘에도 없는 구르기와 앞발을 내밀며 재주 부리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산다. 그렇다. 주인이라고 아양 떨지 않고, 너는 너 나는 나로 살아가는 그 쿠~울함이 바로 고양이가 사랑받는 이유다. 그런 이유로 하루키도 고양이를 벗 삼아, 글을 쓰고 함께 인생을 여행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유를 알았으니, 하루키처럼 멋진 글을 쓰려면, 고양이 한 마리 키워야 할지 말지 고민입니다만, 나는 아주 심한 고양이 알레르기인지라, 고양이 근처에도 못 가는 팔자입니다. 고양이만 키워도 멋진 글을 써볼 텐데... 아! 이번생에 멋진 글 쓰기는 다 틀렸습니다. 이런, 망할!

P.S.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라는 노래가 있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


이 노래의 가사를 처음 들었을 때, 고독하지만 자신의 길을 가는 표범이 어찌나 멋있었는지 모른다. 그렇다. 표범은 고양이 과(科)다. 그래서 고양이처럼 제갈길 간다. 그럼, 하이에나는 무슨 과일까? 지금까지 하이에나는 개 과(科)라서 그렇게 무리 지어 눈치껏 약삭빠르고 적당히 야비한 줄 알았는데, 하이에나는 그냥 하이에나 과(科) 라나 뭐라나... 하이에나도 외로운 도. 고. 다. 이.였나 보다. 인생이 그렇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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