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출판사와는 맞지 않아서'라는 어떤 말

by BOX

다시 한번, 출간 이야기다.


이윽고, 글쓰기


글을 쓰다 보면, 보잘것 없을지언정, 글을 모아 세상에 나만의 책을 내보이고 싶어진다. 사람마음이 다 똑같다. 어디에 꽁꽁 숨겨놓고, 나만 보기 위해 글 쓰는 사람은 없다.... 아! 물론 그런 사람도 세상 어딘가엔 분명 있겠다 싶기도 하지만! 아무튼! 부족한 글이라도 사람들에게 내 말과 생각을 전하고 싶고, 읽혀지고 싶어진다. 그렇지 않다면, 뭣하러 아까운 시간을 내가며, 이런 쓸데없는 글 따위나 쓰며 인생을 낭비하겠는가. 자기 수양을 위한 고행이라면, 차라리 히말라야 어느 산끝자락으로 들어가 수도승이나 탁발승이 되는 편이 훨씬 낫지 않을까.


그런 이유로 우리는 글을 쓰고, 그 글이 세상에 나오길 간절히 바란다. 책상 서랍에 쌓인 글, 노트북 폴더에 고이 간직해 놓은 글들을 모아 출판사에 투고를 시작하게 된다. 물론,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막연히 내 글이 책이 되면 어떨까 하는 바람이 더 크다. 하루키 역시 그랬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스물아홉의 어느 날, 진구 구장 외야석에 앉아 야쿠르트 스왈로스와 히로시마 카프의 개막전 경기를 보던 1회, 힐튼이 2루타를 치는 순간, '아! 나도 소설이나 한번 써볼까' 생각했다고 한다. 그전까지 그는 글쓰기 따위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던 도코 코엔지의 작은 재즈바 사장이었다. 대체 뭐가 그에게 책을 내게 만들었을까? 힐튼의 2루타였을까? 젊은 날의 무모함 때문이었을까? 뭐... 그건 아마도 하루키만이 알겠죠.


어쨌든, 우리도 나름의 이유로, 글을 쓰고 투고를 한다. 운이 좋게도 출판사에서 연락이 온다면 좋겠지만, 사실 그런 일들은 좀처럼 드물다. '아! 언제쯤 연락이 올까?' 출판사의 회신을 아프리카 세렝게티의 미어캣처럼 목이 빠지게 기다린다. 주소를 잘 못썼나? 엉뚱한 출판사에 보낸 걸까? 왜 연락이 없지? 혹시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을 가로막으려는 외계인이나 거대한 비밀 조직의 음모인가? 뭐 이런저런 생각에 빠진다. 그러던 중 출판사로부터 메일을 받는다. 가슴은 두 근 반, 세 근 반, 메일을 여는 순간


'저희 출판사와 맞지 않아서...'


맞다! 거절메일이다. 한데, 거절 메일을 자주 받다 보면 안다. 모두가 '저희 출판사와 맞지 않아서...'로 시작한다. 출판사들끼리 '투고 거절하는 법'이라는 국제기구를 만들어서 무조건 '저희 출판사와는 맞지 않아서...'로만 메일을 보냅시다! 여러분! 이렇게 선언한 걸까? 대체 왜일까? 얼마 전 세 번째 책을 계약하면서, 출판사의 고충을 대표에게 들었다. 출판사에는 매월 수백 수천 개의 투고가 들어온다. 그러다 보니, 하나하나 원고를 읽고, 회신을 주는 일이 생각보다 벅차다 했다. 게다가 진행되고 있는 일도 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힘에 부친다는 말이었다. 그렇다. 이제는 다 이해한다.


그래서, 출판 편집자를 위.해, 제목을 좀 더 달리해보면 어떨까 싶다. 여~편집자님들! 맘에 드는 것 있으면 마음대로 쓰세요. 돈 받는 거 아닙니다. 한 가지 반찬보다야 여러 반찬이 좋잖아요!


원고를 읽다 보니, 오른쪽 새끼발가락이 간지러워서...

주말에 여자친구가 내 친구랑 바람을 펴서...

간밤에 귀신이 나타나 잡아먹히는 꿈을 꿔서...

새벽마다 코를 드륵 고는 배 나온 중년 남편이 꼴도 보기 싫어서...

월요일 아침, 출근버스를 세 번이나 놓쳐서...

점심시간, 식당음식이 밥맛없어서...

솔직히, 원고가 너무너무 별로라서...

앞으로 글 따위 쓰는 것보다, 유튜브 업로드가 더 어울릴 것 같아서...

작가만 빼고 뭐든 다 잘할 것 같아서...

...


그런 이유로 원고를 거절합니다. 이러면 어떨까?

이유야 어쨌든, 그래도 글쓰기의 즐거움은 또 어쩔 수 없으니, 나는 오늘도 '저희 출판사와는 맞지 않아서...'라는 메일을 받으며, 글을 쓰고, 투고하고, 세상에 책을 내놓는다.

그리고 꿈꾼다.

수천 년 후 지구가 망하고, 인류가 멸족된 어느 날, 지구를 찾아온 어느 외계인이 파괴된 도서관에서 내 책을 발견하고, 지구인의 마지막 남은 이야기를 내 글을 보고, 인간을 이해하기를...


뭐 어쨌든, 일요일 오늘 하루 쓸데없이 재미있게 살아볼게!




* 브런치 글이 책이 되었어요!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5557417





keyword
이전 03화지금 케빈은 어떤 어른이 되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