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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우 Aug 01. 2018

월간 김창우 : 2018년 7월

지영이가 출근했다.


너무나 평범한 출근이지만 우리 부부의 지난 2주를 생각하면 인간이 우주로 향한 것과 같은 대단한 사건이다. 지영이는 남은 휴가가 많아서 넉넉하게 7월 말까지 휴가를 냈었는데, 처음엔 그 정도까지 휴가를 굳이 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나 정신을 차려 보니 7월이 훌쩍 지나갔고 오늘이 벌써 8월 1일이다. 딱 필요한 최소한의 휴가였구나.


7월엔 달력이나 시계를 철저히 안 보고 살았다. 그저 수직으로 세워놓은 해시계처럼 때가 되면 밥과 약이 나왔고 하루를 머리 가슴 배처럼 3번 정도로만 나눠도 충분히 지낼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래도 할 건 해야지. 월간 김창우를 쓴지도 벌써 2년이다. 내가 생각해도 아무 생각 없이 시작해서 장기 레이스를 끌고 가는 건 참 잘하는 것 같다.


그런데 2018년 7월은 어떻게 써야 할까. 평소엔 별생각 없이 두다다다 글을 쓰는 걸 좋아하는데, 이번 글은 사실 좀 어렵다. 트럼프 형님이 전 세계를 뒤흔들 수 있는 안보 금융 관련 트윗질을 할 때도 이것보단 편하게 할 것 같은데.


일단 조심스럽게 2주 전으로 돌아가 보자.


2018년 7월 15일 일요일, 예배를 끝내고 고기를 먹었다. 가오 빠지게 물에 담갔다 뺀 고기가 아니라 겉면만 까슬까슬하게 익힌 후 한 입 베어 물면 육즙이 입안에 촤아악 퍼지는 고기, 전문 용어로 1등급 한우를 먹었다. 그리고 집에 잠시 들러서 이불과 옷가지들을 챙긴 후 덤덤하게 신촌 세브란스 병원으로 향했다.


입원하러 가는 길, 운전은 내가 했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기 전이라 뽀송뽀송한 기분마저 들었다.


내가 건과류 같이 건강한 삶은 살지 않았지만 그래도 여태껏 병원 신세를 진 적은 없었다. 포경수술과 초등학교 때 새 양말을 신고 집안에서 미끄러지는 놀이를 하다가 무릎이 찢어져 6 바늘 꿰맸던 것을 제외하면 그저 주사 한 대 맞고 나면 낫는 병들로 병원을 수 백 차례 찾았을 뿐이었다. 그래서 병원, 입원, 수술, 회복 등의 단어에 대한 감이 없었다. 신기할 정도로 마음이 평온했지만, 너무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도 긴장하고 있는 가족들에게 진정성이 없어 보일 듯해서 입을 앙다무는 정도로만 결연한 의지를 표했다.


그렇게 7월 15일 일요일에 입원을 했고, 이틀 후 7월 17일 화요일에 수술이었다. 어릴 때 어머니께서 난 집에 와서 이것저것 소소한 이야기들을 많이 안 해서 재미가 없다는 말을 가끔 하셨다. 이번에도 그랬다. 굳이 주위 사람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을까. 내가 화제의 중심이 되는 것을 여전히 어색해하기도 한다. 그래서 쿨하게 잠깐 자리를 비우고 돌아오려 했다. 마치 하와이 한 번 더 다녀오는 것처럼. 실제로 부재중 메일을 보고 또 하와이 가냐는 질문도 많이 받을 정도였다.


그런데 부재 기간의 압박이 있었다. 얼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 두 달 이상은 자리를 비워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 정도 기간의 잠수는 프로답지 못하지. 그래서 평소 친분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내가 연락이 안 되어 불편해할 사람은 없애자는 마음으로 몇몇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역시 소문은 빨랐다. 갑자기 주위 사람들에게 나의 수술이 가상통화나 북미 정상회담을 제치고 실검 1위로 올라섰고 여기저기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당연히 추가 질의들도 이어졌다. 그런데 신기하게 그 과정 속에서 농담을 주고받으며 마음이 더 편해졌다. 아, 날 걱정해주고 있는 사람들이 많구나. 쿨 병에 걸린 중2도 아니고 아무 말 없이 사라지는 것보단 주변에 조금이나마 알리고 들어오길 잘했구나.  


그래도 연락은 최소화하긴 했다. 몇몇 친한 친구들과 가족들에게조차 철저히 함구하고 들어왔으니. 환자가 마음이 편한 게 최고 아닌가. 그 핑계를 대며 소리 소문 없이 단톡 방에 살짝 빠지는 수준에서 주변 정리는 마쳤다. 이제 수술하고 잘 회복만 하면 되는 거지. 그 영역은 내가 또 잘하잖아. 그래서 입원하는 날에도 마음이 참 편했다.


"근데 혹시 어디 수술하시나요?"


"네, 뇌종양 수술을 받게 됐습니다."


아직도 이 단어는 섬뜩하다. 세상엔 '지구종말, 칼빵, 피의자, 개학, 월요일, 폭염, 에어컨 고장, 인신매매' 등 듣기만 해도 오싹한 단어들이 참 많다. 그 단어들 중에도 눈에 띄게 불친절하고 발음마저 더러운 녀석이 '뇌종양'이란 단어인 것 같다. 그래서 더 찾아보지 않았다. 하루의 3분의 1은 이런저런 검색으로 허비하지만 뇌종양이란 키워드로 단 한 번도 검색을 해보지 않았다. 아는 게 없으니 더욱 용감해졌다. 뭐 별거 있겠어. 치질 수술 정도가 아닐까. 날도 더운데 머리 한 번 열고 오지 뭐. 딱 이 정도 마인드였다.


그리고 대망의 입원. 입원 당일은 저녁에 사복으로 갈아입고 학교로 산책을 다녀올 정도로 여유로웠는데, 수술 전 날부터는 주변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병원에서 하루 만에 날 완벽한 중병 환자로 만들어주셨다. 수술을 앞두고 사전에 해야 하는 것들이 정말 많았다. 여기저기 끌려가고, 주사 맞고, 기구에 들어가고, 사진찍고, 로봇에 연결하고, 링거를 맞고 등등. 그때 생각보단 큰 수술이구나 감은 왔지만 여전히 두려움 따위는 없었다. 프로포폴로도 꿀잠을 자는데, 전신마취면 얼마나 개운하게 잘 수 있을까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2018년 7월 17일 화요일 수술 당일.


원래 아침 7시 30분에 일찍 수술에 들어가는 줄 알고 있던 터라 가볍게 쉐도우 복싱을 하며 결전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 레지던트가 얼굴이 사색이 되어서 찾아왔다. 본인의 실수로 수술 시간이 뒤바뀌게 되었고, 앞 수술이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대략 오후 2시 전후로 수술에 들어갈 것 같다며 거듭 사과를 했다. 본인의 실수란 걸 반복해서 이야기하며 교수님이 직접 찾아가서 사과를 하라고 하셨다며 머리를 조아렸다. 아오, 집도의 교수님께 얼마나 깨졌을까. 회사 생활로 치면 결재판으로 뒤통수 맞을 정도가 아니었을까.


난 이미 아이언맨처럼 온갖 장치들을 부착하고 대기 중이었는데 갑자기 몇 시간의 자유가 생겼다. 그때 처음 든 생각이, 글이라도 하나 남기자였다. 살면서 이렇게 진정성이 극대화되는 시간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래서 짧게 지영이에게 편지를 하나 남겼다. 내가 수술을 하는 동안 마음이라도 편하길 바라면서. 별거 아니지만 그 편지 덕분에 수술실로 가는 침대에서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 글의 힘이었나 보다.



수술은 3시에 들어가서 12시쯤 끝났으니 약 9시간이 걸렸다. 9시간이면 기내식 세 번 먹고 하와이를 가는 시간인데. 수술대에 누워있을 때, 마취를 시작할 때, 수술을 끝내고 중환자실에서 눈을 떴을 때부터의 3시간, 호흡 곤란, 중간에 지영이의 면회, 결박 등에 대한 동의서 작성, 횡설수설, 이런저런 부작용들, 의식을 회복하는 과정 등은 하나씩 무용담으로 남겨두겠다. 확실한 건 치질보단 힘든 수술이었다.


정신을 차린 후 셀프로 이것저것 테스트를 해봤다. 처음엔 팔다리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서부터 움직여졌다. 나중엔 결박된 상태에서 헐크처럼 괴력을 뽐내기도 했다. 이 정도면 운동능력은 정상! 언어능력을 체크하기 위해 간호사분이 계속 말을 시켰다. "손창우 씨, 여기 어디예요? 여기 왜 와있어요? 오늘 날짜가 어떻게 돼요?" 아직 남아 있던 마취 끝물들과 덕지덕지 붙어 있는 진통제들 때문에 힘이 들긴 했지만 최대한 성의 있게 대답하려 노력했다. 주소에 대한 질문에만 '남양주시 가운동'이라 대답하지 않고 '가운시 남양주동'이라고 대답한 걸 제외하면 언어능력도 정상!


그다음은 시신경. 수술 부위가 시신경 쪽이라 시야장애는 어쩔 수 없이 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다른 중환자들이 눈에 보이는 걸로 봐서 시력은 정상! 그리고 시야 체크. 아, 시야는 확실히 정상은 아니구나. 굳이 따지면 1 사분면은 잘 보이고 3 사분면은 뭔가 문제가 있어 보였고, 2 사분면과 4 사분면은 흐릿했다. 그런데 눈이야 시간이 지나면 적응하겠지. 별 걱정이 안 되었다. 오히려 신기했다. 사람이 지나가다가 3 사분면 쪽으로 들어가면 사라졌다가 다시 등장했다. 예전 독고탁 야구 만화에서 독고탁이 공을 뿌리면 뱀처럼 휘어지던 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가 홈플레이트에서 갑자기 나타나며 스트라이크를 잡던 게 떠올랐다. 아, 그때 독고탁의 공을 받은 포수 봉구도 뇌종양 수술을 했었던 건가.


자체 테스트는 계속되었다. 성격이 변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난 중환자실에서 깨자마자 남자 간호사에게 개드립을 던지고 있었다. 성격도 안 바뀌었군, 정상! 그리고 회심의 영어를 떠올렸다. 혹시 아나, 뭘 하나 잘못 건드려서 4개 국어를 하게 될지. 머릿속으로 영어를 떠올렸다. 맥락없이 마틴 루터 킹의 'I have a dream' 연설문을 떠올렸다. 젠장, 영어 천재는 실패. 수술 직전에 받은 'will keep you in my thoughts'라는 문장이 떠오른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서울말도 좀 더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 같고.

  


나중에 들어보니 수술 과정이 아주 빡셌었다. 출혈이 너무 많았고 몇 번의 고비도 있었다고 했다. 그래도 서서히 회복하는 건 내가 워낙 잘하는 영역이라 자신 있었다. 겉으로는 아주 빠르게 회복해갔다.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나온 직후에도 수술을 끝낸 사람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얼굴이 멀쩡했다. 아, 지겹다. 이 죽일 놈의 평온한 얼굴.


그런데 회복은 확실히 더디게 진행됐다. 눈동자를 조금만 움직이거나 말을 몇 마디만 해도 마라톤을 뛴 것처럼 몸이 푹푹 가라앉았다. 그리고 뇌수술은 언제 어떤 형태로 후유증이 찾아올지 모른다고 해서 정말 오버하며 온 몸의 세포들을 봉기시켜 회복에만 집중했다.


병원에 있는 동안엔 전화기도 꺼두고 최대한 움직이지 않았다. 그토록 꿈꾸던 나무늘보의 생활이 이어졌다. 면회도 일체 받지 않았다. 아이들도 너무 보고 싶었지만 조금만 아이컨택을 하고 말을 하면 힘이 들어서 아이들조차 못 오게 했다. 강원도에서 한 걸음에 달려와준 친구도 지영이가 잠깐 내려가 대신 만났을 뿐이다. 부산 아버지조차 수술 다음 날 잠깐 괜찮다고 통화한 것을 제외하면 연락을 드리지 못했다. 내겐 아주 민감하게 몸의 반응들을 살피며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렇게 내 마음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주변 분들에게 연락을 못 드린 것이니 다들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길.  


그렇게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며 천천히 회복해갔다. 분명 더디긴 했지만 하루에 2%씩은 좋아짐을 느꼈다.

이제 성공적인 수술을 기념할 일만 남은 것 같았다.


오랜만에 PC를 켜서 두다다다 자판을 두드리니 확실히 좀 피곤해지네. 무리하지 말자.

앞으로 시간은 많으니, 이제 이번 글을 마무리할 때가 된 것 같다.



수술은 잘 됐다고 하셨다. 너무 위험한 부위라 건드리지 못한 종양들을 제외하면 최대한 많이 제거하셨다고 했다. 참 좋은 교수님과 세브란스 의료진을 만났던 것에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조직검사 결과가 좋지 않게 나왔다.


갑분싸, 이런 단어를 쓰게될 줄이야. 내 삶의 4막은 조직검사 결과 전후로 완전히 바뀌게 되었고, 여기서부터는 이제 완전 다른 스토리가 펼쳐지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 글을 쓰기가 조금 어려웠다.


처음에 의사 선생님께 그 설명을 듣는 중간에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지금 선생님께서 무슨 말씀 하고 계신 거지?"

"양성 뇌수막종이 아니었다고?"

"맞을 텐데. 그게 어떻게 아닐 수가 있지?"


혼란스러웠다. 이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어떻게 추슬러야 할지, 누가 누굴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질 않았다. 그 순간 옆에서 혼자서 오열하고 있는 지영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시야가 좁아졌지만 그 얼굴은 완벽하게 내 눈에 들어왔다. 아, 잠깐. 지영이. 지영이부터 달래야지. 정신 차리자. 의사 선생님 설명은 다음에 다시 듣고 지영이부터 빨리 안아주자.


그렇게 우린 의사 선생님과의 면담을 끝내고 복도로 나와서 아무 말없이 꼬옥 안았다. 그 순간의 느낌은, "이거면 된다."였다. 그저 수술 무사히 끝내고 큰 후유증 없이 이렇게 꼬옥 안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다. 난 이거면 된다. 이 죽일 놈의 스토리, 그냥 평범한 뇌종양 수술만으로도 충분한데. 그래도 나니까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정말 인정하긴 싫지만, 이런 류의 장기 레이스를 나만큼 잘 할 사람은 보수적으로 찾아보더라도 없었다. 나니까 다행이다.


그 이후로 퇴원까지 일주일, 우린 매 끼 밥을 먹고 하루 종일 손을 잡고 세브란스 구석구석을 걸어 다녔다. 아무리 인간이래도 이렇게 과하게 직립보행을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걸어 다녔다. 사람 몸에서 가장 강한 부위 중 하나가 고관절 이리라.  


이 시간이 참 좋았다. 우린 지난 결혼 10년 동안 나눴던 것보다 더 많은 대화를 나눴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마음은 이내 평온함을 되찾았고, 우린 걷고 또 걸었다. 밤에는 스테로이드나 진통제의 힘인지 잠까지 오지 않아서, 새벽에도 좀비처럼 일어나서 혼자 걷기도 했다.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느꼈던 감정들, 기도의 힘, 가족의 소중함, 앞으로의 파이팅, 이런 것들은 나보다 훨씬 잘 표현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소소한 즐거움을 찾고, 나만의 언어와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 내가 남들보다 조금 더 잘할 수 있는 영역이라 생각이 들었다. 이제 그런 시간을 가지려 한다.


앞으로의 치료 계획을 간략이 이야기하면, 우선 수술 때 제거하지 못한 몹쓸 놈들과의 일전부터 시작한다. 국내 뇌종양 수술의 60%를 담당하고 계신다는 교수님마저 별로 본 적이 없는 희귀종이라고 하셨다. 아, 이 죽일놈의 스토리. 그래서 8월 중순부터 신촌 세브란스에서 6주간 방사선 치료를 진행한다. 이 녀석들은 내가 누군지 잘 모른다. 내가 평온한 얼굴로 럭셔리한 자본시장을 일터로 삼아 일하고 있어서 헷갈리겠지만, 난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의 아들이자 자랑스러운 연세 복서 초대 주장 출신이다. 우리 제대로 한 번 붙어보자.


나의 4막은 완전 다른 그림으로 펼쳐지게 되었지만 마음이 참 편해졌다. 이 순간을 감사할 뿐이다. 이렇게 안부를 남길 수 있고, 오늘도 지영이와 웃고 이야기 나눌 수 있고, 아빠 머리 흉터 하나도 흉하지 않다고 응원해주는 아이들 웃음소리 듣고 있음에 충분히 감사한다. 자, 한 번 가보자.



조금은 장황하게 2018년 7월을 기록한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우선, 우리의 치열했던 7월을 최대한 자세히 기억하고 싶었다.

두 번째, 고마운 사람들이 정말 많다. 어설픈 표현으로 이 마음을 전달하는 건, 가슴을 울리는 장문의 문자 메시지에 'ㅇㅋ'라 짧게 답하는 것만큼 격에 맞지 않지만, 급한 대로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다. 그리고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당부도 드리고 싶었다. 손창우가 그렇게 싸가지가 없는 아이가 아닌데, 너무 연락이 없다고 서운해 할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들었다. 사실 그게 유일한 스트레스였다. 걱정해주시고 응원 보내주신 분들에게 답을 해드려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으니.


이제 장기레이스 시작이다. 지금은 여전히 몸이 푹푹 꺼지고, 눈도 피로하고, 말도 아끼고, 밥 잘 먹었다고 칭찬받고 트림하고 똥 잘 눴다고 칭찬받으며 지내고 있다. 그러니 아주 긴 호흡으로 저와 지영이와 함께 해주실 분들은 주변에서 응원과 기도하며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연락을 개별적으로 드리는 것이 다음주가 될 수도, 몇 달 후가 될 수도 있지만, 적어도 똥 잘 눴다고 칭찬받는 단계는 빨리 넘기며 정상 컨디션을 찾겠습니다. 그리고 수시로 글을 통해 근황은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은 다시 한번 지영이에 대한 편지다. 앞으로 나의 모든 글들은 지영이를 위함이다. 원래 4막은 그럴 계획이었으니 바뀐 것 없구나. 나도 인간인지라 장기 레이스를 하다 보면 때론 지치고 힘들고 짜증나는 순간들이 찾아오겠지만, 지영아 남편 생각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니 전혀 걱정하지 말고. 완쾌뿐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의 재미와 의미까지 다 찾아서 큰 선물을 안겨줄테니 같이 손잡고 나가보자. 너만 있으면 충분하다.



2018. 8. 1. 남편이.


놀랍다, 이렇게 띄어쓰기가 잘되다니. 수술은 진짜 잘됐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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