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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우 Jul 03. 2018

월간 김창우 : 2018년 6월

Sports


나도 한 때 스포츠 오타쿠였다. 스포츠서울로 이건 '최' 이건 '동' 이건 '원' 하면서 한글을 깨친 후, 하루 일과의 시작은 무조건 스포츠서울로 시작했다. 음독, 묵독으로 시작해서 오랜 정독 기간을 거쳐 내공이 쌓인 후엔 발췌독만으로 신문 한 부를 머릿속에 탈탈 털어 넣었다. 그래서 종목 불문 스포츠에 관해선 꽤나 박식한 편이었다. 당시 장래희망도 IOC 위원이었으니.


대학 와서는 촌놈이 TV 없는 자취 생활을 오래 하면서 잠시 스포츠와 멀어졌다. 특별한 취미도 없이, 아무 맛 안나는 평양냉면 같던 시절이었다. 원래도 재미없던 전공과목들은 복학하고 나니 영어 원서로 수업을 하는 세상으로 바뀌어 있었다. 영어로 배우는 재무관리, 이 무슨 막돼먹은 조합이란 말인가. 게다가 원서를 읽으며 "이 문장은 5형식이네. 이 문장은 관계대명사 that이 생략된 문장이네"하며 안드로메다로 빠지기 일쑤였다. 마지막 보루인 삶은 달걀마저 빼버린 평양냉면 같은 시기였다.


그러다 4학년을 앞두고 도서관에서 베개로도 불편한 하드커버 원서 책을 깔고 엎드려 자고 일어났을 때, 지금 뭐하는 짓인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서 마포 라이온 복싱체육관에서 다시 운동을 시작하였고, 복싱 동아리를 만들었다. 다시 스포츠 세계로 들어오니 너무 행복했다. 내가 좋아하던 게 이런 건데. 그렇게 난 대학교 4학년 때 머리 밀고 염색하고 연세복서 후드티와 추리닝을 입고 학교를 누볐다. 당시엔 스스로 개간지라 생각했다.


그리고 삼성전자에 입사해서 정신없는 사원 생활을 하느라 또 스포츠를 떠났다. 물론 복싱은 계속했으나 스포츠가 내 삶의 중심은 아니었다. 대신 난 원치 않던 엑셀 장인이 되어버렸다. 그리하여 난 하루 수백 통이 오가는 <긴급>이란 제목을 단 메일들에 CC로 포함시키기 참 쉬운 사람이 되어버렸는데, CC 된 사람들의 이름을 쭈욱 보며 결국 이건 내가 해야 하는 일이란 걸 깨닫고 "왓더!"를 육성으로 뿜으며 혼자 빡쳐하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실적 분석을 하다가 몇 개의 sheet에 복잡하게 맞물려 있던 if, vlookup 함수들을 참다못해 PC가 뻗어버린 순간, 또 이게 뭐하는 짓인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검색을 시작했다. 뜨자, 진짜 뜨자,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나의 레이더에 포착된 곳이 평창올림픽 준비위원회였다. 당시 2014년 평창올림픽 유치를 위해 막바지 활동으로 바쁜 곳이었다. 난 원래 콜드콜을 잘했다.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녀 결국 사무총장님과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전 세계 IOC 위원들의 사진들이 가득 붙어져 있는 꿈의 사무실에서 난 두 시간 정도를 사무총장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당시의 대화가 생생하게 기억이 날 정도로 인상적인 시간이었다. 결론은 정말 스포츠 산업에 크게 이바지하고 싶으면, 어설프게 들어와서 올라갈 생각 하지 말고 내 커리어에서 성공한 후 스포츠 산업에 영향력이 큰 사람으로 들어와서 봉사하라고. 그럼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나에게, 그럼 차라리 지금 다니는 삼성전자에서 스포츠 마케팅 관련 부서로 옮기는 것도 고려해보라고 하셨다. 삼성 조직을 아는 사람들은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안다. 그래도 난 부딪치는 건 잘하는 아이였다.


난 회사로 돌아와 삼성전자 조직도를 켜고 스포츠 마케팅을 하는 부서를 찾았다. 그리고 조직도 위로 위로 올라갔다. 제일 꼭대기까지 올라가니 그 유명한 VIP와 JY가 나오길래, 이건 과하다 싶어 다시 2단계 정도 후퇴하여 타겟을 정했다. 그리고 겁대가리 없이 메일을 한 통 보냈다. 삼성 스포츠 관련 업무를 총괄하시는 전무님이었다. 나의 성장과정, 취미, 스포츠와 나, 그리고 내가 왜 그 부서에서 일을 해야 하는지 등. 혼을 담아서 썼으니 명문이었으리라.


놀랍게도 그 메일에 대한 답장은 바로 도착했다. CC로 삼성그룹 인사팀 상무를 넣고, "xxx 상무, 아래 메일 한 번 읽어보세요. 그리고 손창우 씨를 빠른 시간 안에 한 번 만나보세요." Yes~! 회사 생활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이 정도 답장은 상당히 파워풀한 지시로 볼 수 있다. 면접은 이글거리는 눈빛 좀 쏘아드리면 되겠지.  


그런데 답장을 받은 며칠 후, 삼성을 뒤집어 놓았던 김용철 변호사 사태가 터졌다. 온 그룹이 비상이 걸렸다. 당연히 답장은 오지 않았다. 안면 몰수하고 추가로 메일을 보내봤지만 내 메일 따위는 스팸함에 처박혔을 테다.


그 후로 난 스포츠를 잊어갔다. 운동하는 시간도 줄어들었고, 스포츠 뉴스를 보는 시간도 점점 줄어갔다.


며칠 전, 2018 러시아 월드컵 개막전에 맞춰 '스포츠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나가게 되었다. 스포츠 필드 감은 많이 잃었지만 나름 스포츠 분야엔 뒤처지지 않을 데이터들이 깡통에 많이 쌓여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내가 동네 조기축구회 백업 윙백 정도라고 하면, 거기 모인 분들은 호날두며 메시였다. 한 명 한 명이 스포츠 위키피디아였다.


저녁 7시부터 12시까지 오직 스포츠 이야기만 나눴다. 이름도 잘 기억이 안 나고, 서로의 나이, 직업, 출신 학교 등은 물어보지 않았다. 자기소개는 좋아하는 스포츠, 좋아하는 선수, 싫어하는 팀 등으로 오갔다. 누군가를 만나기 전 그 사람의 학력, 경력, 성격, 백그라운드, 심지어 재산상황까지 까버리는 수많은 비즈니스 만남들에 지쳐갈 때, 다시 내가 좋아하던 곳에서 좋아하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래, 난 스포츠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친구


부산에서 밤 10시에 친구를 불렀더니,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났다.
오랜만에 봤는데 하이바를 주더니, "타라" 한 마디만 했다.

나한텐 앞유리가 없는 하이바 줘놓고 터널을 지날 때 지혼자 하이바 뚜껑을 닫길래
뒤에서 이 녀석 하이바를 심하게 때린 후, 이 녀석의 뚜껑도 열어버렸다.
의리없는 쉐이.

한참을 달려 대청공원에 가서 담배 한 대와 콜라 한 캔씩 마시고 내려왔다.
그 정돈 집 앞에서도 가능했는데.

#부산 #친구 #질주 #맞바람 #충혈된 눈깔




여름


날파리의 계절이 돌아왔다.

이 녀석들 덕분에 음식물 쓰레기를 매일 버려야 한다. 상당히 귀찮은 일이다.

분리수거장에 들어가면 시큼한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코를 찌른다. 왓더!

그 주위엔 날파리들이 득실득실하다. 이 녀석들은 왜 이따위 냄새를 좋아할까.


그런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날파리들도 이 시큼한 음식물 쓰레기 냄새를 사실 싫어하는 거라면.

그들도 신선하고 잘 차려진 음식을 먹고 싶은데,

아무도 본인들에게 그런 음식은 허락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코를 막고 쓰레기 통을 뒤지고 있는 거라면.

날파리들의 인생이 참 가엽다는 생각.




처음엔 서울생활이란 글을 썼다. 개인적으론 가장 애정 하는 글이다.

그 후로 하와이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자비출판으로 책을 만들었다.

Aloha Hawaii 2016, 두 번째 하와이, 세 번째 하와이.

각 10부씩 만들어서 가족들에게 선물했다.

모두 너무 좋아하셨다.

그리고 세 권의 내용을 모아서 '세 번의 하와이'라는 책 한 권으로 만들었다.

이 내용을 이야기나무 출판사와 함께 요약, 정리하여 '하와이 패밀리'라는 진짜 책이 만들어졌다.


이렇게 '하와이 패밀리' 책이 탄생했다.


'하와이 패밀리'는 원본인 '세 번의 하와이'를 절반으로 줄였다.

하와이 여행과 관련이 없이 삼천포로 빠진 내용들을 모두 제거했다. 줄이는 것은 가슴 아픈 작업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구조조정당한 삼천포 부분들에 애정이 많기 때문에, 언젠가 어느 글에서건 세상의 빛을 보게 해주고 싶다.



감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에 감사한 일이 더 많아서,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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