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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우 Mar 03. 2018

월간 김창우 : 2018년 2월

마감


월간 김창우,

지난달에 이어 또다시 월말 마감을 넘겨 버렸다.


한 번은 실수지만, 두 번은 인간미다.



올림픽


평창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지금은 내 인생에서 스포츠가 차지하는 지분이 많이 줄었으나, 난 초등학교 생활기록부 장래희망란에 당당하게 'IOC 위원장'이라고 적어놓았던 스포츠 키드였다. 삼성전자를 다니던 30대 초반까지도 회사에서 눈과 손은 미친 듯이 엑셀을 돌려대며 SWOT을 분석했지만 나의 가슴속에서의 SWOT은 Sports, Worldcup, Olympic, TV였다. 결혼하고 첫 번째 여행을 IOC 본부에 가보고 싶어 스위스로 갈 정도였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꾸준히 대한체육회나 올림픽 준비위원회로의 이직을 꿈꿨다. 면접도 몇 번 봤다. 난 진짜 괜찮다는데 그들이 오히려 삼성전자를 왜 관두고 열악한 그곳으로 오려냐며 말리는 이상한 면접이다. 연봉은 중요하지 않다며 끝까지 우겼으나 스포츠 현장에선 날 받아주진 않았다. 그렇게 이직은 흐지부지되고 시간이 흘러 스포츠 관련 업종에서 일하겠다는 생각은 점차 사라져 갔다.


나에게 IOC위원장이란 장래희망을 안겨주었던 1988년에 이어 두 번째 올림픽이 드디어 열렸다. 마스코트도 비슷하여 장모님은 수호랑을 계속 호돌이라고 부르셨다. 우리나라 올림픽 개최에 대한 찬반을 떠나, 기왕 하게 된 올림픽이니 성공적으로 치러지기만 바랬다.


일 년 전 강원도에 갔을 때만 해도, 과연 이곳에서 올림픽은커녕 전국체전이라도 열릴 수 있을지 걱정이 들 정도였다. 2년 후 도쿄 하계올림픽은 지난 세 번의 소치, 리오, 평창 올림픽의 기저 효과로 평타만 쳐도 엄청난 대회가 될 것 같았다. 일본은 운도 좋지. 이미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평창은 밑 빠진 독이라 가볍게 얼굴만 비추고 2020 도쿄올림픽 후원을 위해 줄을 선다는 소식도 들렸다. 상당히 화나면서도 기업 입장에선 이해가 가는 움직임들이었다.


나 대신 스포츠에 관심이 1도 없는 와이프가 올림픽 파트너사에서 일하고 있다. 난 TV 로만 열광하는 후덜덜한 스포츠 스타들도 와이프는 어렵지 않게 만나곤 했다. 그리고 한 달짜리 평창올림픽 출장까지 떠났다. 10년 전 면접을 다닌 입장에서 상당히 부러웠다.


와이프가 강릉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있는 동안, 구정 연휴 기간에 아이들을 데리고 올림픽 현장을 찾았다. 일 년만에 다시 찾은 평창과 강릉은 완전히 다른 곳으로 변해 있었다. 2010 밴쿠버 올림픽 때도 그곳으로 여행을 갔었지만, 2018년 평창과 강릉에서도 밴쿠버가 느껴질 줄이야. 기대치가 너무 낮았던 걸까, 1년 전의 모습이 너무 황량해서일까, 소위 말하는 국뽕을 빼더라도 충분히 괜찮은 대회였다.


이번 올림픽의 득실은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그래도 기대보다 훌륭했던 올림픽이었다는 것모든 사람들이 인정할 것 같았다. 그 찬사의 90%는 자원봉사자들이 받아야 한다. 그들의 힘으로 올림픽을 치러냈다.


30년 후에 우리나라에서 한 번 더 올림픽이 열리면, 그땐 나도 VIP 목걸이를 걸고 있거나 안되면 자원봉사라도 하자. 생활기록부 IOC 위원장이 그 정돈해야지.


2008년 결혼 후 첫 휴가, 스위스 IOC 건물 앞



육아


2018년 2월, 육아에 눈을 떴다.


와이프가 한 달간 올림픽 출장을 떠난다고 했을 때, 우린 별로 걱정을 하지 않았다. 나와 두 아이들은 설마 진짜로 Seriously 엄마가 한 달간 집을 비울까 생각했다. 말이 안 되지, 중간중간 오겠지, 좀 더 일찍 오겠지, 한 달이 장난인가.


하지만 정말 한 번도 집에 오질 않았다.

올림픽은 장난이 아니었다. 와이프는 강릉 임시 사무실에서 주말도 없이 연일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우리 집 이사라도 늦게 갔어야 했다. 와이프는 이사한 다음 날 강원도로 출발했다. 이로써 새 집 정리, 아이들 아침저녁 케어는 오롯이 나의 몫이 되었다. 와이프가 떠난 자리는 새집에서 뿜어 나오는 각종 발암물질들이 날 몽롱하게 감싸주었다.


북유럽 직장인 생활시작했다. 늦게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기.


아침에 일어나면 아이들 입을 옷을 꺼내서 소파에 가지런히 올려두고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워낙 입이 짧은 두 아이들인지라 메뉴 하나만 해놓으면 굶기 식상이다. 그래서 예측할 수 없는 아이들의 당일 입맛 컨디션을 골고루 저격할 수 있도록 빵, 밥, 국, 장조림, 스팸, 수프, 시리얼, 과일 등다양하게 준비다.


국에 밥을 말아먹는 것이 가장 편한 그림이었지만 보통 그러질 않았다.


"밥이랑 국 싫어? 그럼 뭐 줄까? 빵에 잼 발라줄까? 스팸 구워줄까? 장조림 먹을래? 수프 끓여줄까? 우유에 시리얼 말아먹을래? 사과 깎아줘?" 모든 질문에 대답은 "응니오"였다. 이건 "응"도 아니고 "아니오"도 아니다. 대답을 애매하게 해서 결국 위에 것들이 대부분 준비되고 나면, 제일 먼저 준비했던 국에 밥을 말아먹었다. 아오~


옷을 입히는 것은 밥 먹이는 것보다 더 빡셌다. 첫째는 아무거나 잘 입는 편이지만, 유독 아침만 되면 세 살짜리 아기로 돌아가는 둘째는 옷에 민감했다. 다 입혀놓으면 거울 앞에 서서 한참을 째려본 후, 마음에 안 든다고 다른 옷을 입겠다고 떼를 썼다. 그래도 옷은 머리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도끼빗에 물을 적셔서 빗질을 한 다음 고무줄로 머리를 묶어주고 나면 다시 거울 앞으로 쪼르륵 달려간다. 본인도 안다. 엄마나 할머니가 묶어준 것보단 머리를 쓸어 올린 타이트함이 약했다. 머리 몇 가닥이 삐져나와있다. 그냥 지나칠 리가 없다. 다시 묶어 달라고 또 투정을 부렸다. 그럼 난 도끼빗에 다시 물을 적셨다.


그렇게 둘째 유치원까지 바래다주고 나면 9시 전후. 그제야 난 출근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9시 강변북로와 지하철은 화를 잔뜩 품고 있는 듯한 8시에 비해 평화로웠다.


2월 한 달간은 저녁 약속은 거의 잡질 않았다. 퇴근도 보통 때보다 빨리 했다. 5시 퇴근길도 7~8시에 비해 훨씬 차분했다. 퇴근하고 집에 가면 환시키시고 청소기, 세탁기, 걸레질, 저녁 먹고 설거지 하고, 애들 목욕시키고 잠옷 입히고 좀 놀아주다가 재우고 나면 10시 30분경이었다. 그제야 난 올림픽 하이라이트를 보고 반신욕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이렇게 한 달을 보내고 나서 알게 되었다. 의외로 내가 육아를 좋아하고 적성에 맞았다. 전혀 힘들지도 않았고 짜증 나지도 않았고, 청소기 먼지통에서 먼지들이 한 뭉텅이 나올 때나 바닥 물걸레질를 두 번 하고 나서 더 이상 먼지가 묻어 나오지 않을 땐, 마치 Deal을 클로징 했을 때처럼 짜릿했다.


특히 아이들이 내가 준비한 밥을 먹으며 엄지를 지켜 세워줄 땐, 회사의 그 어떤 임원이 일 잘한다고 칭찬해줬을 때보다 큰 보람을 느꼈다. 이마트 구석에서 발견한 태국 라면은 아이들의 최애템이 되어 밤마다 야식으로 두 개씩 끓여줬다.


와이프야, 이제 출장 마음 놓고 가라. 장기 출장도 괜찮아.

남편, 육아 포텐 터졌다.


아빠와 아이들의 연결고리, 인스턴트 조미료 맛 태국 라면




혼자만의 자유 시간이 주어지면 술도 마시고 할 법 한데, 난 정말 술을 즐기지 않았다.


냉장고에 맥주와 복분자를 사놓긴 했다. 안주로 사놓은 꾸이꾸이가 먹고 싶은데 꾸이꾸이만 먹을 명분이 없어서 복분자를 한 잔 따라놨을 뿐, 술을 일체 입에 대지 않았다.


하루는 애들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 냉장고를 열어 요구르트 세 개를 원샷하고 나니 회의감이 밀려왔다. 나도 어른이고 싶었다. 그래서 다음날 이마트 장 보러 갔을 때 와인을 한 병 입양해왔다. 내가 좋아하는 소믈리에 '박우리나라'가 와인은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대하라고 해서, 한 병을 사더라도 입양하는 경건한 마음으로 조심스레 가져왔다.


그리고 와인 옆에 꾸이꾸이는 마치 복싱체육관에 운동가면서 조던 농구화를 신고 가는 것처럼 어울리지 않아 과감히 버리고 초콜릿을 하나 깠다. 그리고 와인 코르크를 빼기 위해 오프너 스크류를 정성껏 돌렸다.


이런 젠장, 난 술과 관련된 모든 것이 또라이구나.


전동 오프너를 사야하나.


코르크를 반토막 낸 오프너를 쳐다보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 옛날 맥가이버칼엔 왜 와인 오프너가 달려 있었던 걸까.

물론 난 그 학창 시절 맥가이버칼을 항상 지니고 다니면서, 여러 툴들 중 와인 오프너를 가장 요긴하게 사용했다. 물론 손톱 밑에 낀 때를 제거할 때 주로 사용하긴 했지만.




생일


2월엔 내 생일과 둘째 지아의 생일이 있었다.


우선 내 생일, 지우에게 선물 뭐 사줄 건지 물어봤더니 대답은 시크하게 "편지는 써줄게" 마치 영화 신세계에서 이중구가 골드문을 장악하기 위해 이 사진들에게 내뱉은 명대사 "살려는 드릴게"가 연상되었다. 결국 지우는 아빠 목숨은 살려주는 기분으로 편지를 써줬고, 지아에게 아빠 생일은 그저 본인 생일 20일 전 하루일 뿐이었다.


그리고 20일 후의 지아 생일, 내가 뭐 사줄까 물어봤더니 뜻밖의 대답이 들려왔다. "장미꽃"

우리 딸, 여자여자하구나.


장미꽃다발, 삼성동 현대백화점에서 사서 집까지 가는 동안 아빠는 쪽팔리지 않았다.




살림을 하고 애들 밥을 먹이다가 느꼈다. 아줌마들은 살이 찔 수 밖에 없구나. 가족들이 100을 먹으면 150을 준비하게 된다. 조금 넘치는 것이 모자란 것보단 낫지. 그렇게 밥을 다 먹고 식탁 위에서 아이들이 쪼르륵 빠져나가고 나면, 남겨진 것은 적막감과 선택받지 못한 음식들 뿐.


내가 한 음식은 쉽게 버릴 수 없었다. 아이들이 잘 먹을 거라 상상하며 준비했던 음식들을 아이들이 아닌 음식물 쓰레기통이 먹어버리 현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남은 음식 종류별로 한 두 개씩 주워 먹다 보면 이내 위 캐파를 넘어가버렸다. 매일 밤 속이 더부룩했다.


그렇게 알게 되었다. 날씬한 아줌마들은 인간미가 없거나 살림을 직접 하지 않는 사람들이구나.


20년간 65~68kg를 유지하고 있는 내게 과식한 위장은 불편했다. 가뜩이나 새집증후군과 싸우고 있는데 과식까지 했으니 밤마다 컨디션이 별로였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움직이려고 한 밤 중에 탭볼을 했다.



탭볼


나이 40이 넘어 새로운 개인기를 연마 중이다.


원래는 올드하지만 턱걸이를 개인기 삼으려 했으나 어깨가 거부했다. 어깨는 중력 편이었다. 조금 많이 당겼다 싶으면, 땅에 잘 붙어 있는 몸뚱아리를 왜 억지로 끌어올리냐며 욱신거리며 화를 냈다. 그래서 아픈 어깨를 핑계 삼아 체육관에서 스트레칭만 하고 있었다. 스트레칭만으로도 땀이 나고 숨이 헉헉댈 수 있다는 초자연적인 체력 저질 현상을 경험하고 있었는데, 탭볼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 생각 없이 머리에 두르고 한 대 때렸더니, 순식간에 내 눈을 쳤다. 어쭈. 다시 강하게 치고 두 번 당할쏘냐 날렵하게 피했더니 이번엔 한 바퀴 돌아 내 뒤통수를 쳤다. 아주 건방진 녀석이다.


그 날 탭볼을 샀다.


탭볼 잘 치는 사람들의 영상을 찾아보았다. 간혹 고수들이 있긴 했는데 복싱 폼과는 거리가 멀었다. 팔로 툭툭 건드렸고 추가 스킬로 엘보우 치기, 턴해서 치기 정도만 보였다. 복싱인으로서 팔로만 칠 순 없지. 몸통 회전과 스텝을 활용하면서 이 녀석을 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그런 방법은 없었다.


그래서 난 이 가볍고 버릇없고 제멋대로인 녀석을 어떻게 하면 복싱 폼과 최대한 유사하게 치면서도 재미있게 칠 수 있을까 고민을 했다. 몇 가지 시도들을 해보고 있는데, 워낙 가벼운 볼이라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차츰 흥미를 잃어가고 있다. 탭볼이 컬링은 아니었다. 이제 새로운 개인기를 찾아야 할 것 같다.


https://youtu.be/VhGAELIFsEE 

탭볼 1주차

https://youtu.be/eTSEyVzqRuQ

탭볼 2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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