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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우 May 02. 2016

10년 전 유럽 여행 - #인터라켄

예전에 어머니께 여쭤봤다. 신혼여행은 어디로 갔어요? 그랬더니 경주, 설악산, 제주도가 아니라 뜻밖에도 서울로 가셨단다. 서울 어디에 갔었냐고 물으니, 남산타워도 올라가고, 명동에서 칼국수도 드셨다고 하셨다. 남산 밑 어느 호텔에서 묶었는데, 아버지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술판을 벌였다는 기억도 떠올리셨다.


지우 지아도 나중에 아빠 엄마의 결혼 전 모습이 궁금할까? 그랬으면 좋겠다. 그래서 애들이 태어나기 전, 지영이와 단둘이 갔었던 2007년 8월의 유럽여행을 다시 따라가 보고자 한다. 10년이 훌쩍 지난 여행, 비록 기억이 선명하진 않지만, 당시 사진들과 끄적거린 흔적들을 보면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


10년 전 사진들의 디테일을 끄집어내다보면, 잃어버린 기억들과 감정들이 살아나길 희망하며...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는 둘째 날 아침.


출국 전 모닝캄 라운지에서부터 시작된 폭식 퍼레이드는 호텔 조식에서도 예외는 없었다. 고등학교 때 피자헛에 가면 샐러드바가 리필 없이 1 접시만 허락되었는데 당시 한 접시에 누가누가 많이 담나 시합을 했었다. 샐러리와 오이를 뼈대 삼아 든든한 기초공사를 한 후, 샐러드 소스를 시멘트 삼아 엄청난 높이의 샐러드를 쌓고 나서, 마지막으로 건포도와 옥수수로 빈 공간들을 완벽하게 채우곤 했다. 성장판이 닫힌 이후, 그 정도까지 모양 빠지는 무리수를 두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격이 정해진 상태에서 음식을 먹는 공간에서는, 나중에 후회할지언정 일단 배가 찢어질 때까지 먹고 봤다. 이 날도 중국인인 척하면서 꽉 채운 세 접시를 먹고, 하루를 더부룩하게 시작했다.




이 호텔에서 며칠을 보낸 것 같은데, 사진으로 확인하니 1박만 하고 나왔구나. 우린 체크아웃하고 짐을 끌고 나와서 첫 공식일정으로 예약해놓은 렌터카를 픽업하러 갔다. 버스를 타야 했는데, 우린 동전이 없었고 마침 버스가 오길래 그냥 탔다. 다행히 돈 안 내고 버스 타기 어울리는 머리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다음번에 탈 때 두 배로 낼 생각이었는데, 그 뒤로 버스를 안 타서 우린 아직 유럽에 버스비를 빚지고 있다.


[개미와 베짱이]


렌터카 회사는 어렵지 않게 발견했다. 그냥 유럽 지형에 강한 지영이만 따라가면 된다. 마케팅 수업 시간에 사례로 자주 등장하던 AVIS. 'We try harder'로 유명했었는데, 그래! 더 열심히 해라.



렌터카의 인상은 강렬했다. 검은 알파로메오. 흰색 아반떼를 타고 다니던 신내동 부부에게 검은 유럽 세단은 묵직한 무게감으로 다가왔다. 핸들에 아령을 달아놨는지 엄청나게 뻑뻑했고, 스르르 감기는 파워핸들도 아니라 처음에는 운전이 어색했지만, 다니다 보니 굽은 산길이 많은 스위스 지형엔 이런 무거운 핸들링이 훨씬 어울렸다.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려 루체른 지역을 거쳐 인터라켄로 가는 길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날 정도로 압도적인 풍경이었다. 장거리 운전을 할 때, 흡연가들은 담배가 땡길 때 차를 한 번씩 세우고, 디스크 있는 사람들은 허리를 펴주기 위해 50분에 한 번씩 차를 세우는데, 우리는 예쁜 호수나 마을이 나오면 차를 세웠다. 문제는 방금 사진을 찍고 난리를 친 후 차를 타면 5분 후 더 멋진 풍경들이 계속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여전하겠지? 취리히에서 루체른을 거쳐 인터라켄 가던 이 길은 꼭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







인터라켄에 거의 도착할 때쯤, 한 무리의 오토바이들이 몰려가는 곳이 있어서 따라가 보니, 벼룩시장이었다. 주차할 공간이 보이지 않아, 길가에 정말 대충 세워놓고 벼룩시장을 향해 뛰어갔었다. 이것저것 흥미로운 물건들이 많았는데, 막상 사려면 2%씩 모자란 느낌이었다. 이 때도 여전히 구매의사결정 장애였다. 지영이는 30년쯤 소장한 듯 보이는 CD들 틈에서, 어린 시절 많이 들었다는 Ace of Base CD를 발견하고 엄청 좋아했었는데 고민하다가 사진 않았다. 결국 우린 스위스 국기 문양의 머그컵 하나와 효도르처럼 생긴 아저씨가 팔던 냉장고에 붙이는 기념품 두 개를 샀다. 폭스바겐 비틀과 코카콜라 classic 그림이었는데, 자석이 약해서 냉장고에서 자주 떨어지다가 지금은 자취를 감췄다.




[효도르 닮은 아저씨가 파는 기념품과 1천 원짜리 머그컵 득템]



벼룩시장 앞, 전형적인 독일 분위기의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난 자신 있게 콜라 두 개까지 시켜놓고, 음식 주문은 당연히 지영이의 몫이었다. 음식은 참 맛있게 생겼고 파리들이 엄청 꼬였는데, 파리들은 맛있었는지 몰라도 우린 별로였다. 물론 맛은 아침 폭식으로 인한 영향도 있었겠지만, 가격도 비쌌고 종업원도 불친절했던 기억이다.  




그리고 드디어 도착한 인터라켄 숙소.


처제를 통해 예약한 5성급 호텔이 아니라 유일하게 인터넷 뒤져가며 발견한 숲 속의 산장 같은 숙소였는데, 공동 화장실을 사용해야 했던 것만 제외하면 100년 전통을 가진 모텔답게 고풍스러운 외관과 인테리어들... 여기가 유럽이구나!


[100년 전통의 모텔, 검색해보니 아직 있다. 110년 되었구나]

[다시 봐도 이쁜 실내]

[호텔방에서의 풍경]


아직 둘째 날이 반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10년 전 여행 복기는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소모시킨다. 오후 융프라우 등반은 내일 추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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